자잘한 이야기 37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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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좌에서 만나 알게 된 지인이 '시간 있으면 수강해보라', 면서 강좌 하나를 내게 추천해줬다.

이 지인과는 강의실에서 앉는 자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말을 나눠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강좌 뒤풀이에서 잠깐 말을 섞어본 것이 전부인 사람인지라 약간 데면데면했다. 그 데면데면한 자리에서 준 정보였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시간이 허락되었기에 그 강좌를 수강하기로 했다.

비 오는 화요일, 동대문 도서관에서 지인과 나는 나란히 앉아서 강좌를 들었다. 강좌는 내용이 괜찮았다.

잘 듣고 수업이 끝나자, 우리는 우산을 받쳐 쓰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인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나는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고, 지인도 그다지 말을 많이 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았다. 침묵이 자리 잡기 전에 나는 지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른 수업을 듣는 것이 있어요? 다른 취미가 있어요? 저번에 스케치북 사러 가신다던데 그림 수업도 들어요? 카톡 프로필의 그림은 직접 그린 건가요? 미대 나왔어요? 이과를 나왔다고요? 나도 이과를 나왔는데, 그럼 무슨 과를 나왔어요? 정말요? 별 보며 꿈꾸는 소녀 같다는, 아까 내가 한 말이 딱 맞네요? 그 과를 나오면 연구직 이외에 다른 직업을 얻기 힘들지 않은가요? 와, 연구직을 했어요? 체력이 약하면 얼마나 약해요?


수십 개의 질문 끝에 나는 지인이 매우 재미있는 구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말 수가 없을 것 같으면서도 질문에 대해서는 꼬박꼬박 답을 잘 해줘서 의외로 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체력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해서 처음엔 걱정했는데 그게 듣다 보니 재미있더라.


예를 들면, 지하철을 타기 전부터, 타고 앉을 때까지, 지인은 "이 시간에는 여기서 앉아갈 수가 있더라고요."라는 류의 말을 세 번을 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앉아가는 게 중요한 가보다',라고 생각하면서 "체력이 안 좋은데, 앉아서 가면 좀 낫겠어요."라고 했다. '그렇죠. 이 시간에 지하철이 안 붐벼서 좋아요.'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앉아있으면 또.. 허리가 아파요..."라고 대답한다.

거기서 나는 빵 웃음이 터졌다. '정말 체력이 약하다는 건 저런 것인가 보다' 하는 깨달음을 줬달까.


나는 타고난 체력은 좋은 편인데 운동을 안 해서 힘이 드는 것이고, 지인은 체력이 약해서 편한 상황이 와도 다시 약한 체력 때문에 또 다른 힘겨움을 겪는 모양이다. 곱씹어 생각하면 안 됐으면서도 어찌 저리 약할까 싶어서 웃음이 나온다. 지인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집에 와서도 한참을 웃었다.





2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일단 시작은 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계단을 못 올라서 집에도 못 들어갈 수 있겠다.

지하철 계단, 집 계단을 숨차지 않게 오를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꾸준히 할지 안 할지, 나도 모르겠다.

일단 시작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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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유베날리스(로마의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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