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유유자적 보내고 있다. 비 오는 저녁에는 과자 한 봉지를 안주 삼아 시원한 캔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날이 더운 날엔 냉면의 얼음육수를 마시며 골이 시려움을 느끼고 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나서 몸을 말릴 때의 그 시원함은 너무 좋고, 젖은 머리를 말리느라 선풍기 앞에 바람을 쐬고 있자면 평화로움마저 느껴진다.
이렇게 좋은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나는 왜 이리 헛헛한지 모르겠다.
거의 '병'이다. 하루 이틀 된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마음이 헛헛해왔기에 그리 칭한다.
[알쓸신잡]을 보고 있자면 출연진들의 입담에 놀라곤 한다.
내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자부하지는 않지만 상식은 꽤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쓸신잡]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그분들의 상식과 지식 앞에서 나의 지식들은 먼지 나부랭이 밖에 되지 않는구나 싶다.
대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그 많은 상식과 지식과 견해가 나올 수 있는 것일까?
느끼는 바가 있어서 이제 오락방송들은 그만 보고 독서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날도 덥고 외출해봤자 카페에 틀어앉아 잡답을 나누는 정도의 활동을 할 뿐이다.
이럴 바엔 독하게 마음먹고 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두 손이 마주쳐야 박수소리도 난다고, 한 명이 썰을 풀을 때 그 썰을 받아주고 이어갈 수 있는 또 한 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만약 출연진의 입담이 그와 같지 않았다면 뚝뚝 끊기는 혼잣말들만 촬영되었을 것이다.
하늘 간 친구가 생각난다. 그녀가 살아있었으면 나눌 말이 참 많았을 것이다. 우리는 나영석 피디님이 연출한 방송들, 사소하고 일상적이고 잡담이 난무하는 그런 방송을 좋아했다. [신혼일기]에서부터 [윤식당]을 거쳐 [알쓸신잡]까지... 그녀와 나눌 이야기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는 방송의 장소와 요리와 잡담과 상황에 대해 시시콜콜한 것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고 그 속에서 발언한 내 견해와 지식과 감흥을, 내민 내 손바닥을 마주쳐줬을 것이다, 그녀는.
소중한 수다 벗을 잃은 지가 벌써 햇수로 3년 째이다. 내 가슴속 이야기들을 풀어놓지 못한 것도 3년이 된 것 같다. 어디에서 다시 수다 벗을 만날 수 있을까?
좋은 벗을 만나려면 스스로 좋은 벗이 되라고 하던데.... 나는 좋은 벗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싫고 그냥 떡하니 좋은 벗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도둑놈 심보일까?
바깥 활동을 많이 할수록 지인은 늘어난다. 폰에 저장하는 번호는 늘어나고 있는데 편하게 수다를 떨 지인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마음이 더 헛헛한 것 같다.
일단 지금은 수다 떨 대상이 없으니 백지 위에 주절주절 써대고 있다.
외롭기는 한데 글을 많이 쓰게 되니 그건 긍정적이다. 더 많이 쓰고 싶은데... 그럼 친구들과 다 의절해서 처절하게 고독해져볼까? 안돼, 나는 그렇게는 못 살겠다. 차라리 참새 똥구멍을 꿰매라! 무슨 뜻이냐고? 나한테 해가 오는 건 싫으니까 애꿎은 참새를 갖다 댄 것일 뿐, 별 의미는 없다.
날이 덥다. 시원한 커피 한 잔을 가져왔다.
컴 본체의 전자식 온도계는 34도를 표시하고 있다.
날이 더 더워지면 컴을 켜놓는 것도 자제하게 될 것 같다.
비가 내리고 있는 이 아침이 시원한 편이라 감사하다.
창밖에서 참새가 울어댄다. 내 글을 본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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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고르는데는 천천히, 친구를 바꾸는 데는 더 천천히.
(Be slow in choosing a friend, slower in changing.)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