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반기에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느라 정신없었다.
하반기에는 조금 여유 있게 지내기로 마음먹고 일정을 많이 계획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잘 한 것 같다.
어제는 외출했다가 등짝을 심하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햇볕이 어찌나 강렬하고 세던지 등이 따끔따끔했다. 이 더위에 외출 일정이 많으면야 살은 좀 빠지겠다만 잘못하면 일사병이나 열사병에 걸리기 쉽겠더라.
2
어릴 적엔 더위 먹는 일이 없었다. 날이 아무리 더워도 약간 지치기는 했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한창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하던 어느 여름날, 하루 종일 붙잡고 있었는데 도무지 작업에 진전이 없었다. 몸에 기운이 없고 특별히 아픈데도 없는데 앓듯이 시름시름 힘들었다. 그렇게 시들어가고 있었더니, 어머니가 나를 보고는 대번에 "더위 먹었구먼."하시더니 이 더위에 선풍기를 안 켜면 어쩌냐는 말씀과 함께 스위치를 켜주시면서 얼음물 한 잔을 가져다주셨었다. 얼음 물을 마시고 선풍기 바람을 맞은 지 딱 5분 만에 머리가 맑아지고 기운이 솟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더위 먹었음을 깨달았다.
당시 나는 자연스럽게 사는 게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선풍기 바람맞는 것을 꺼려했고 얼음물 마시는 것도 저어했다. 선풍기는 진짜 땀이 나도록 더우면 한 5분 잠깐 쐬는 것으로, 그렇게 사용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젯밤 너무 더워서 선풍기를 켰다. 그리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줄기차게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를 봤다. 타이머 설정도 안 해놓고 잤었나 보다. 최소 6시간 이상을 돌고 있었을 선풍기가 나를 째려보며 말하는 것 같았다.
'휴식시간도 없는 6시간 연속 야간 근무에 대한 수당을 주셔야죠?'
야간 근무 수당? 수당은 주마. 하지만 아직 근무가 끝나지 않았으니 계속 돌고 있거라.
'저도 쉬어야 한단 말입니다. 스위치 꺼주십시오!'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계속 돌아야 한다.
'언제까지요?'
좀만 더 돌면 돼. 두서너 달만 기다리면 가을이 오니까.
'가을까지요? 지금 저를 무생물로 아십니까?'
어. 그럼, 파이팅~!
3
그리하여 내 방 선풍기는 지금도 계속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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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은 그 사람의 운명이다.
- 헤라클레이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