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한 마음

시즌5-014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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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니께서 인삼 한 상자를 주문하셨다.

저녁 7시 반쯤 어두컴컴할 때에 택배가 도착했다.

어머니는 나를 불러내셨다. 택배가 도착하기 전부터 인삼을 씻어서 흙을 걷어내야 한다고 준비하셨던 터이다. 나는 싸늘한 날씨를 견디기 좋도록 겉옷을 걸치고 만반의 준비를 하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 수돗가에서 씻을 것이었기 때문에 속으로 15kg이나 되는 인삼 상자를 옥상으로 들고 올라가야 하나, 힘을 좀 써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막상 어머니는 바삐 움직이시면서 나보고는 "거기 멈춰 서있으며 움직여라."라고 하셨다.

나는 멍해졌다. 인삼을 들어다 옮겨서 씻는 게 아니고?


옥상에는 어둠이 깔려있었다. 절대적으로 빛이 필요한 상황인데 안타깝게도 옥상에는 전등이 없었다. 다만 옥상으로 통하는 문쪽에 센서 전등이 있어서 어머니는 그 등의 불빛에 의지하여 작업을 하시는 것이었다.

나의 임무는 인삼을 들어다 씻고 물을 받는 등의 일이 아니라 그 센서 등이 꺼지지 않게, 계속하여 센서를 자극할 수 있도록... 제자리에서 움직이는 거였다.


나는, 안녕~ 하듯이 손을 흔들기도 하고, 괜스레 있지도 않은 공을 차는 시늉을 하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듯 서성였다. 뭔가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는 세 번 물을 받아서 세척하시기를 끝내고 허리를 펴셨다.

"들어가!"

일이 끝나신 어머니는 이제 빛이 필요 없었고 나도 필요 없었다. 그러니 집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이셨다. 내가 도울 일이 끝났다는 뜻이었지만 왠지 하찮게 쓰이고 내쳐진 느낌이었다.

일손이 아니라 전등 스위치로 있다가 돌아왔달까.

완전무장하고 간첩 잡으러 나갔는데 애꿎은 개미만 밟고 돌아왔달까.

우리 어머니는 하여간 당신이 일하셔야 후련하신가 보다. 나 좀 시키시지.

옥상에 올라가며 단단히 먹었던 마음이 무색해져서 민망했다.







2


날이 서늘하다. 코감기에 걸렸다.

한밤중에 약도 없고 으슬으슬한 기운에 시달리다가 겨우 잠들었다.

일어나자마자 병원 갔다 오고 약기운이 돌자 몸이 좀 편안해졌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아프면 정말 개고생이다.

건강관리 잘해야 할 계절이다.

사실, 건강관리 잘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운동은 하나도 안 하고 있다.

번지르르한 말뿐이어서 스스로 무색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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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랜마 모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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