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이 떠지는 기적
2022년 여름! 연신 화제를 불러 모았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Autism Spectrum Disorder: ASD)을 가진 변호사 이야기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장애 때문에 무작정 당하기만 했던 과거 이야기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신박한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이 사진 찍듯이 기억하는 '사진기억력(photographic memory)'으로 다른 '보통'의 변호사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법 조항을 줄줄이 읊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감탄했다. 또한 이 특별한 능력에 힘입어 소송에서 이기는 장면을 보면서 함께 기뻐했다. 매 에피소드의 기대감은 매주 갱신되어 최고 17.5%로 종영한 높은 시청률로 증명되었으며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까지 드라마는 대화의 주제가 될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높았다. 심지어 미국에 사는 나의 미국 친구들까지도 이야기를 꺼낼 만큼 이 드라마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 드라마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입 밖에는 '자폐',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자주 흘러나왔다. 대중의 관심만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등 논란의 여지도 있었지만,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가 흔한 드라마 소재가 아닌 만큼 이 드라마의 인기는 우리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킨 거 같다. 적어도 우리가 그동안 쉽게 지나쳤던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었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데 작은 힘을 보탰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장애인에게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하고도 필연적 만남을 계기로 장애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내 주변에서 많은 장애인들을 만났다. 수도 없이 걸어 다녔던 집 앞 거리, 좋아했던 떡볶이 집, 백화점 등 나름 '나의 구역'이라 여겼던 친숙한 동네에서 그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아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갔을 많은 장애인들과 마주쳤다. 드디어 장애인들을 인식하는 '마음의 눈'이 떠진 것이다.
1998년 대학 졸업 후, 바로 유치원 교사가 되었다. 첫 근무지였던 유치원에서 나는 공교롭게도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만났다. 만 4세 또래에 비해 유난히 체구가 왜소하고 바가지 머리가 꽤 잘 어울렸던 아이로 기억된다.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짧은 한 단어를 말하거나 원하는 것을 직접 손으로 가리켰다. 가령, 물이 먹고 싶으면 작게 "물"이라고 이야기하거나 컵을 손으로 가리켜서 물을 마시고 싶은 것을 표현하곤 했다. 가끔 교실에서 없어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놀이를 하면서 배우는 '자유선택활동' 시간에 갑자기 없어져서 찾아보면, 혼자 구석에 있는 책상 밑에 들어가 누워있기 일쑤였다.
온 힘을 다해 떼를 쓰며 책상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할 때는 혼이 쏙 빠질 정도였다. 경력도 없는 초임교사가 보조교사 없이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을 혼자 가르쳐야 했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은 사실 너무 힘들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여 자료 찾기가 수월한 것도 아니었고 기껏 할 수 있는 노력이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관련된 책을 찾아보는 것이 최선이었던 시절이었다. 주말마다 발품을 팔아 도서관과 서점을 찾아다니며 발달장애에 대한 지식들을 찾았다. 그리고 아이를 잘 이해하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관찰'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것도 아주 '잘' 관찰하는 것임을.
먼저 큰 노트를 샀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배가 고플 땐 어떻게 하는지,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땐 어떤 표정을 짓는지 등 아이에 대한 기록들을 종이에 꼼꼼히 적어나갔다. 노트가 관찰 기록으로 채워질수록 나는 아이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그리고 드디어 반년이 되어갈 무렵에 나는 아이의 '눈'을 바라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고 우리는 서로 눈으로 대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아이가 교사인 나와 친밀감이 생기니 같은 반 또래에게도 조금씩 다가가서 노는 친구들도 생겼다. 그렇게 일 년을 같이 보내고 그 아이의 가족은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다. 그 후에 어떻게 성장했을지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 그 아이의 눈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아이와의 만남이 훗날 내가 특수교육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게 만든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장애인들과 함께 의사소통을 하고 어울리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무척 낯설고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다. 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내 어릴 적만 해도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도시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특수학교에 가서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다. 너무 일찍부터 우리 사회에서 분리가 되어 지내다 보니 어른이 되어서 어쩌다 장애인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2022년, 지금은 그때와 비교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니 나아지고 있길 바라보지만, 아직도 장애인과의 만남이 무척이나 낯설어 보인다. 최근 '우영우'의 여파로 사람들이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잠시 보이고 잊혀가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길 바란다. 우리 각 사람이 자신의 주변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서로 좋은 친구와 이웃이 되는 '마음의 눈'이 떠지는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