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M.O.N.I.

하모니가 뭐지?

by 자주

"장애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선 먼저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합니다."


대학원 첫 수업을 가르치셨던 베글린 교수님(Dr. Baglin)의 말씀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장애를 언어와 문화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신기하기도 했고 다소 충격적이어서 지금도 나는 가끔 그때의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2003년 가을, 미국 동부 메릴랜드 주에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Johns Hopkins University)에서 유아특수교육 석사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낯선 환경, 언어, 문화 그리고 낯선 사람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용기를 낸 내 삶의 새로운 여정이었지만, 쉽지만은 않은 고된 이방인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유아특수교육의 개관에 대해 배웠던 첫 수업일, 나는 아직도 그때의 긴장감과 떨림을 기억한다.


12명의 석사과정 학생들이 있었는데, 나만 빼고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돌아왔다. '한국말로 하는 소개도 떨리는 판에 영어로 자기소개라니...',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다.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서니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저는 한국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싶어 왔습니다. 오늘이 대학원 첫 수업이라서 무척이나 긴장이 됩니다."


떨리는 작은 목소리로 소개를 시작했다. 그 뒤에 무언가를 더 말한 것 같은데, 솔직히 지금 잘 기억이 안 난다. 소개를 대충 마치고 나니 자리에 있던 학생들과 교수님이 동시에 "오우~~~~" 하는 탄성과 함께 격려의 박수를 쳐주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반응에 약간은 당황했지만, 나쁘지 않았던 환대였다.


쉬는 시간에는 나에게 와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알려달라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주고 간 친구들도 있었다. 언어의 장벽으로 그들이 했던 이야기를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슴으로 전해왔던 그때의 따뜻함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따뜻함을 원료 삼아서 나는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좋은 친구들과 이웃들 덕분에 낯선 환경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장애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 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내가 좋은 친구와 이웃 덕분에 낯선 미국 땅에서 더불어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우리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한 방울의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좋은 친구와 이웃이 되었을 때 더불어 사는 삶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들과 좋은 친구와 이웃이 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미국에서의 첫 수업 시간에 닥터 베글린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먼저 장애인들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 '하모니(H.A.R.M.O.N.I)'가 장애인들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작은 팁(Tip)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미국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교육현장에서 배웠던 지식과 경험들 그리고 주변에서 많은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고민했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참고로, 우리가 흔히 아는 HARMON'Y'의 오타(Typo)

로 HARMON'I'가 된 것이 아니다. 아래에서는 먼저 '하모니'에 대한 개요를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이야기에 나오는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1. Hear them(들어주기)

먼저, 장애인들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들을 잘 들어 보자!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어눌하여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한다. 말과 눈빛과 표정으로 이야기를 한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는 몸짓이나 행동 또는 그들만의 고유한 방법을 쓰기도 한다. 이럴 땐 왜 그런 태도를 보이는지 이유를 이해하려고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을 전혀 하지 못했던 (non-verbal) 존(John).

이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는 법을 배웠는지 그 이야기를 기대해 보아도 좋다.


2. Allow time(기다리기)

충분히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장애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나의 속도에 맞추지 말고 장애인들이 반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성격이 급한 사람과 느긋한 사람이 반응하는 것이 서로 다르듯이 장애인들에게는 반응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때가 있음을 기억하자. 닦달하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충분히 반응하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적 장애를 가졌던 아이 메리(Mary). 만 5살이 되도록 대소변 훈련이 되지 않아 항상 기저귀를 찼던 아이의 '3년 기저귀 떼기 프로젝트' 이야기가 전해질 것이다.


3. Respect them(존중하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자기만의 '장애'를 가진 연약한 존재이다. 단지 장애가 겉으로 잘 드러난다고 해서 장애인들을 나보다 '낮은 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언어의 습관도 의식적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우선언어 (People First Language)"를 사용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장애인을 칭할 때 장애를 강조하는 속어인 "병신(He is retarded)"이라는 단어 대신 장애를 "가졌다(He HAS disabilities)"라는 표현을 쓰도록 한다. 한국어로는 사실 차이점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장애인을 지칭하는 언어가 아닌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면 어떨까? 바른 언어 사용은 서로를 존중하는 첫걸음이다.


4. Motivate them(격려하기)

장애인들이 혼자 스스로의 힘으로 설 수 있도록 응원해 주어야 한다. 장애인들이 독립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해서 성취감을 갖도록 격려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밥을 먹을 때 조금 흘리더라도 혼자 먹을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간혹 도움이 필요할 때는 먼저 시범을 보여 줌으로써 하고 혼자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또한 잘했을 때는 칭찬도 해주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용기를 팍팍 불어넣어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중증 복합 장애를 가진 7살 폴(Paul)이 혼자 자립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감동의 이야기가 전해질 것이다.


5. Open minds(마음열기)

마음을 활짝 여는 것이 중요하다. 말랑말랑한 융통성이 있는 상태인지 나의 마음을 수시로 점검하자!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은 버리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앞을 전혀 보지 못했던 브라이언(Brian)과의 만남은 특별했다. 자각하지도 못한 채 맹인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내 자만함을 한순간에 날려 버리게 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6. Note interests(관심갖기)

장애인들이 어떤 것들에 흥미를 느끼는지 잘 관찰하자! 어떤 음식, 놀이, 색깔 등을 좋아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발견하고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유독 빨간색을 좋아해서 모든 것을 빨간색으로 해야만 집중할 수 있었던 윌리엄(William)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7. Instill trust(신뢰쌓기)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장애인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도 신뢰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굳건한 관계로 지속될 수 있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만 7살의 나이에 무려 5번이나 위탁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던 아이 로버트(Robert). 버림받은 상처로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공격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했던 아이가 어떻게 사람들을 신뢰하기 시작했는지 그 감동의 이야기가 전해질 것이다.


하모니(H.A.R.M.O.N.I.)를 통해 장애인들과 좋은 친구와 이웃이 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랑이 넘치는 사회로 나아가는 작은 밑거름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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