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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콩 Nov 15. 2021

경관님, 저는 백신 안 맞아도 되잖아요

처음으로 국경에서 입국 거절당한 날

"백신 접종 증명서가 없으면 입국시킬 수 없어요. 돌아가세요."


경관의 저 말로 인해 우리 일정은 3시간이나 지체되었다.


지난 목요일 나는 멕시코에서 일할 때 필요한 임시 비자를 받기 위해 국경 근처 Laredo라는 미국 도시로 입국을 시도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 나를 가로막았다. 하나는 비자, 다른 하나는 백신 접종증명서


보통 비자의 경우 항공으로 미국에 관광을 하러 넘어갈 때는 ESTA 비자를 받고, 육로로 입국을 하는 경우에는 I-94라는 출입국 기록서만 작성을 한다. 


'설마 ESTA 요구하겠어'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 씨가 될 줄은 몰랐다.


현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으로 인하여 11월 8일부터 항공으로 입국 시 코로나 음성 확인서에 추가로 '백신 접종증명서'를 제시해야 하고, 육로로 입국 시 '백신 접종증명서'가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특정한) 목적으로 육로 입국 시 '백신 접종증명서' 제시가 면제된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몰랐다. 설마 백신으로 입국 거절당할 줄은..


나는 이번 일정에 회사 변호사 동행했고 약 출발 4시간 뒤 Border2에 도착했다. 보통 Laredo 국경을 지나간다고 한다면, 저 국경을 통해서 간다고 보면 된다. 


국경이 폐쇄되었다가 열려서인지 국경심사 전 중간마다 서있던 경찰들에게 잡혀 서류를 2번이나 체크당했다.


그리고 대망의 국경 심사에 다다라서 우리가 질문받은 것은 

1) 왜 왔는지 2) 백신은 맞았는지 3) 비자는 있는지 였다.


첫 번째 목적은 명확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고, 두 번째는 공식적인 목적이 있음을 설명하며 PCR 음성 확인서를 제출했다. 


문제는 세 번째였다. "ESTA비자가 없으면 통과 못 시켜요" 이 말을 듣자마자 우리는 부랴부랴 상황을 설명하고 I-94를 보여줬지만 경관은 끄떡없었다. 그 대신 안에 들어가서 빨리 비자가 신청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배려를 해주었다.


여기까지는 비자가 빨리 나오면 30분 정도만 지연될 수 있었는데, 갑자기 또 다른 경관이 다가왔다.


"너네 백신 맞았어?"


동료 曰  "나는 2차까지 다 맞았고, 이 친구는 비자받으러 가는 거여서 증명서 필요 없다는 걸로 알고 있어"


경관 曰 "무슨 소리야, 비자 없으면 입국 못 시켜"


곧바로 나는 캡처해둔 백신 정책 뉴스를 보여줬다.


"경관님 여기에 보면 특정한 목적이 있을 시에는 백신을 맞지 않아도 된다고 나와있어요" 


잠시만 기다리라며 내 핸드폰과 서류들을 가져가서 동료들과 의논을 하더니 2-3분이 지나 돌아와서 하는 말


"너네 백신 접종증명서 없으니까 입국 못 시켜, 저기 나가는 길 열어줄 테니까 저기로 나가"


청천벽력 같은 순간이었지만, "나가서 ESTA 나오는 거 기다리고 다른 국경으로 시도해보자"라는 동료 변호사의 차분한 말에 조금 안심이 됐다.


다행히 30분 뒤 ESTA비자가 나왔고, 프린트하기 위해 멕시코 이민 사무소(?)에 갔는데 두장 프린트가 한화로 13000원 저세상 물가... 유럽에 있을 때도 저런 사기적인 가격으로 프린트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프린트를 했고 동료가 하는 말 "멕시코라서 저런 가격이 가능한 거야"


그렇게 겨우 비자를 받고 향한 국경은 그다음 가장 가까이 있었던 Border3, 가는 길에 차도 없고 화물차만 있어서 순조롭게 통과할 수 있나 했더니, 여기는 일반 차량은 못 지나가는 곳이란다.


그래서 다시 25분 정도 운전해서 간 곳은 처음 국경과 차로 40분 정도 떨어져 있는 Border Colombia. 

여기는 처음 입국 거절당했던 국경이랑 큰 차이가 있을 정도로 한산했다. 


국경 바로 직전에 경찰차가 서있으면서 불시로 차량을 검문하고 있었는데. 우리 차가 또 걸렸다. 저 날 3개 경찰차를 만나서 모두 다 걸렸다...


드디어 시작된 두 번째 입국심사


외각에 위치한 국경이라 그런가 그 주 월요일부터 실시된 백신 여부에 대해서는 일체 물어보지 않았고, 방문 목적과 비자만 체크하고 차량 수색만 진행한 뒤 통과시켜줬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긴장이 풀렸는지 급격한 피로가 밀려왔다. 


코로나 이전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유럽 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때는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는데. 


'설마 거절당하겠어'라는 생각이 현실이 되고 보니, 그동안 공항 입국심사에서 애를 먹던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하며 '그 사람들도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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