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신념은 모든 윤리적 질서를 파괴시킨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by 단상
이것은 범죄의 심리적인 보고서입니다. 이 소설은 현대, 그것도 올 해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대학에서 제적당한 도시 출신의 아주 가난한 청년입니다. 생각이 모자라고 분별력이 없어 마음이 흔들려 지금 유행하고 있는 기괴하고 미완성인 사상에 물들어있는 그는 자신의 구차스런 처지에서 단숨에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런 그는 9등관의 아내로 고리대금업을 하는 한 노파를 살해하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두렵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는 아주 우연히 자신의 계획을 재빠르고 순조롭게 실행합니다. 그 후 파국이 닥쳐오기 전까지 1개월 가까운 시간이 지납니다. 그에겐 아무런 혐의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범죄의 심리적 과정은 하나하나 전개됩니다. 그러는 중에 살인자 앞에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가로막아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뜻밖의 감정이 그의 마음을 괴롭히게 됩니다. 신의 진리와 지상의 규칙이 승리를 거둠으로써 그는 마침내 자수하기에 이릅니다. 감옥에서 인생을 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에게 동류의식을 갖기위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른 직후부터 느끼기 시작한 고독감과 인류와의 단절감으로 괴로워합니다. 범죄자는 자신의 저지른 범죄를 속죄하기 위해 스스로 괴로움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 편지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구상한 줄거리를 요약해 잡지사 편집장에게 보낸 것이다.


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책을 팔아야 돈을 마련할 수 있었으므로 편집장에게 자신이 집필중인 소설의 줄거리를 들려주면서 책 출판을 약속해주지않을까 하는 기대로 보낸 것이다.


출간 전 일부라도 돈을 받을 수 있다면.. 하는 희망과 함께.


<죄와 벌>을 집필할 당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상황은 비참함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아내와 형의 죽음을 연이어 맞이해야했고 설상가상 작가로서 돈을 받던 잡지사가 폐간해 생계도 막막해졌다.


이상적 사회주의를 꿈꿨던 그는 사상범으로 몰려 총살형을 당할 뻔 했지만 형 집행을 앞두고 극적으로 감옥형으로 감형되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마 그러한 극적 과정이 사상적 살인범에서 죄를 뉘우치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를 탄생시킨 게 아닐까?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죄와 벌>은 종교적이다.


어떤 면에서는 구도자의 이야기인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사상적 살인과 참회라는 무거운 주제의식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 문장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르니느 칠월 초순의 어느 날 저녁 무렵 한 청년이 S골목 뒤에 있는, 아파트 거주자로부터 다시 세 들어 있는 자기 방에서 큰 거리로 나와 느릿느릿 망설이는 발걸음으로 K다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평론가들이 최고라 꼽는 <죄와 벌>의 첫 문장이다.


첫 문장치고는 다소 긴 듯하지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이미지가 느껴진다.


목적지까진 그리 멀지 않았다. 자기 아파트 문에서 몇 걸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꼭 칠백 삼심 보였다. 언젠가 공상을 할때 세어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무렵에는 아직 그 자신도 그 공상의 실현을 믿고 있지 않았다. 단지 그와 같은 추악하지만 매력 넘치는 대담한 생각으로 자신을 자극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는 예기치 않았던 이 제2의 살인을 한 다음에는 점점 심한 공포에 빠져들어갔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이 순간에 좀 더 정확히 사물을 본다든지 판단할 수 있었다면 아니 만일 자신이 처한 곤경과 절망 상태, 자기의 추악하고 어리석은 짓 등을 모두 생각함과 동시에 이곳에서 탈출하여 집에 도착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곤란을 극복해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나 많은 나쁜 짓을 더 하지 않으면 안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면 그는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곧 바로 자수했을지도 모른다.


잘못된 신념은 모든 윤리적 질서를 파괴시킨다



가난한 지식인이었던 주인공 라스콜리코프는가령 나폴레옹처럼 목적만 훌륭하다면 한번쯤의 악행은 용서받을 수 있으니 그 윤리적 경계를 뛰어넘어야만 범인에서 비범인, 뛰어난 인물이 된다고 믿었다.


더러운 방, 비참한 옷, 그리고 오빠때문에 돈을 보고 결혼해야하는 여동생을 보며 단지 3천루불만 있으면 출세도 명예와 부도 거머쥘 수 있는 자신이 단지 윤리적 문제로 고민하고 주저하는것이 싫었고 범인이 아니라 비범인이 되고 싶었기에 결국 누구나 죽어도 싸다고 말할 수 있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는 범인처럼 남루하게 살면 안되는 비범한 인물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기위해 소위"사상적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는 살인을 통해 비범인임을 증명한 것일까?


글쎄....


세상에는 대다수의 범인과 적은 수의 비범인이 있다. 대다수의 범인은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하고 비범인의 특별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종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그의 얕은 학문적 깊이로 비범인에게 복종하는 것이 그냥 굴욕으로 느껴진 것이다.


"사상적 살인" 얼마나 소름끼치는 단어인가!


잘못된 신념은 모든 윤리적 질서를 파괴시킨다.


나폴레옹 3세와 니힐리즘


그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빼앗자는거야. 단 그것은 그 돈을 이용하여 전 인류와 공공사업에 대한 봉사에 몸을 바친다는 것이 목적이긴 하지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하나의 조그만 범죄로 수천 가지의 훌륭한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해도 그 부패와 타락으로부터 구원받는다. 한개의 죽음과 백개의 생의 교환이다. 이것은 산수처럼 아주 명확하지 않은가!

나폴레옹 3세는 파업권과 단결권을 부여하여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려 노력했고, 여성들에게도 교육 기회를 확대했다. 사회 개혁과 경제 발전을 통해 민심을 얻고자 했지만,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구축하여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야당의 활동을 제한하는 등 독재적인 방식으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나폴레옹 3세의 정치체제는 당시 러시아 사회를 자극했다.


러시아는 19세기 중반까지 농노제가 유지되어 사회 불평등과 불안의 주요 원인이었는데 나폴레옹 3세의 정책과 집권 방식은 러시아 지식인들에게 자극을 준 것이다.


'한개의 죽음과 백개의 생(生)의 교환'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희생은 필요하다..


이 미완성의 사상이 사상적 살인이라는 엉성한 명분을 정당화시키려 한 것이다.


니힐리즘.


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적 살인에는 이 니힐리즘이 깔려있다.


기존의 도덕적 규범을 부정하고, 자신의 행동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전통적인 가치관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니힐리즘의 한계는 명백하다.


니힐리즘은 진리 자체를 부정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진리라는 개념에 의존한다. 즉, "진리는 없다"라는 명제 자체가 진리임을 전제해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도 마찬가지. 신이 죽었다는 것은 결국 신의 존재가 있음을 역설적으로 인정하는 말이다.


그는 새생활이란 것이 결코 무상으로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며, 그것을 사들이기 위해선 아직도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그 대가로서 앞으로 큰 일을 이루지 않으면 안되는 것까지 잊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이미 시작하려고 하는 새로운 이야기, 한 인간이 점차 갱생해가는 이야기,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점차 옮겨가는 도중에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현실을 알가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그것은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한 편의 새로운 이야기의 테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이 이야기는 일단 이것으로 끝난다 .


<죄와 벌>의 마지막 문장은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무거운 돌을 매일 산 정상까지 옮겨야 해 죽지도 못하는 시지프스.


그러나 그 형벌의 고단함만을 생각하지 않고 매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에서 또다른 삶의 기쁨을 찾는다.


<죄와 벌>은 니힐리즘의 한계를 넘어, 인간의 본성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카뮈의 <이방인><시지프스의 신화>와 비슷한 메시지를 주는 책.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억과 윤리를 소재로 한 심리 스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