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가 예정된 전쟁에서 필승전략이라는게 있을까?
프로이센 왕국의 군인이자 군사학자였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이라는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전장을 지배하려면 특별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군사적 천재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무기만으로 이길 수 없다.
세계최대 군사대국 미국이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처럼.
400년 뒤면 삼체인으로부터 지구는 공격당한다.
이길 가능성은 없다.
문명적으로 앞선 삼체인이 우주함대 출발에 앞서 지구에 미리 보낸 '지자'세계최강 군사대국 미국이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처럼..400년이라는 전쟁을 준비할 시간은 마련되어있지만, 지자가 지구의 과학기술 발전을 방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구 문명을 뛰어넘은 삼체인의 공격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삼체인이 본격적인 지구 정복을 위해 우주함대를 출발시키기 전 미리 보낸 지자는 지구인이 준비하는 모든 전쟁 시나리오를 파악할 수 있고 파악한 전략을 파괴할 수 있는 대비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면벽자 프로젝트는 그래서 태어났다.
삼체인의 의식과 언어에 대한 이해 구조는 생각하는 것이 곧 말하는 것이기에 지구인의 '거짓말'은 파악하기 어렵고, 지구인의 머릿속에 담겨있는 생각까지 읽어낼 수 없다.
삼체인과의 앞으로 닥쳐올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은 면벽자 4인이 해야 할 임무이다.
면벽자로 선정된 사람은 모두 4명이다.
프레드릭 타일러 - 전 미 국방부장관 : 기술의 약진은 소국을 강하게 만든다는 이론의 저자이다.
마누엘 레이디아즈 - 베네수엘라 대통령 : 프레드릭 타일러의 이론을 실현한 인물이다.
빌 하인즈 : 영국 뇌과학자이자 전 EU 집행위원장 - 과학자이면서 정치가 활동을 한 이력이 면벽자 선정의 배경이 되었다.
뤄지 (넷플릭스에서는 '사울') - 예원제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죽은 딸의 친구로, 우주사회학을 전공했다.
뤄지를 제외한 면벽자 3인에 대해 삼체인은 파벽자를 내세워 면벽 프로젝트를 저지시키고자 한다.
뤄지는 자신이 곧 파벽자이다.
파벽자의 역할은 면벽자가 하는 모든 일을 감시하여 면벽자의 숨은 계획을 찾아내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뤄지를 제외한 세 명의 면벽자는 파벽자에 의해서 모두 계획이 밝혀진다.
책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점은 왜 뤄지가 면벽자이자 동시에 파벽자의 역할이 맡겨졌냐이다.
책에서는 뤄지가 면벽자로 선택된 이유에 대해 삼체인이 유일하게 죽이려하기 때문이라고 적혀있는데, 잘 설명은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예원제가 자신의 딸과 친구인 뤄지를 죽기 전 만나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아인슈타인 이야기를 뤄지와 나눈 것에서 삼체인은 알 수 없는 숨은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예원제의 권유에 따라 우주사회학을 전공하게 된 점이 삼체인에게 위협이 된 듯하다.
어찌됐든 삼체 2부에서 전개되는 <면벽 프로젝트>는 상상력과 놀라움이 연속이다.
흡인력이 대단하다.
단 뤄지는 제외한, 세 면벽자의 면벽 시나리오는 담보되지않은 지구의 승리를 위해 윤리와 도덕은 내팽겨쳤다.
<면벽 프로젝트> 하나씩 살펴보자.
삼체 2부 P274
파벽자가 허리를 굽혀 얼굴을 타일러의 귓가에 바짝 가져다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 선생의 실제 전략에서는 상황이 조금 달라집니다. 정말로 우주 가미카제나 우주 알카에다가 창설된다면 그들은 선생의 구전함대에 배치되지않고 지구 주력 함대의 일부가 될 겁니다. 물론 선생은 그들이 일부가 아닌 전부가 될 수 있기를 바라겠죠."
--중략--
"선생의 구전함대에는 그런 전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함대의 최종 공격목표는 삼체 함대가 아니니까요. 그 함대의 공격 목표는 바로 지구 주력 함대입니다."
--중략--
" ........ 거시적 양자상태(Macrosopic Quantum State)의 지구함대. 좀 더 쉬운 말로 하면 지구 우주군을 궤멸시켜서 그들의 양자유령(작가의 2004년 작품인 '구상섬전'에 나오는 가상개념으로, 구전같은 양자무기로 공격당한 인간이 양자상태의 확률운이 되어 유령처럼 퍼지는 것을 말한다.)으로삼체 함대에 저항하겠다는 것이 선생의 계힉입니다. 양자유령은 절대 질 수 없습니다. 이미 궤멸당한 함대는 다시 궤멸당할 수 없으니까요. 한번 죽은 사람이 다시 죽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중략--
"그러니까 선생이 찾던 자아 희생정신은 주(삼체인)와의 전쟁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주군들이 동족에게 죽음을 당해 양자 유령이 된 뒤에도 지구 문명 구원이라는 임무를 계속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죠. ...."
삼체인이 지구를 공격하기 전에 태양계를 날려버리겠다는 거다.
표면적으로는 항성형 수소폭탄으로 삼체인의 공격에 대응하겠다는 것이지만, 숨겨진 계획은 수성이 하나의 거대한 수소폭탄이 되어 폭발하면서 태양계 자체를 연쇄적으로 폭발시키는 것이다.
이 전략을 빌미로 삼체 세계를 위협하면 삼체인이 더이상 지구를 공격할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는 가정이다.
니가 나를 죽이겠다면 이판사판 내가 죽어버리겠다 이런 느낌?
그러나 이러한 전략을 '전략'이라고 PDC(Planetary Defense Council) 회의, 행성방위워원회에서 자금까지 주면서 지원해줄 리가 없다.
결국 레이디아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멘털 스탬프는 특정 자극을 통해 뇌에 암시를 심어 특정 신념을 갖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하지만 표면적인 전략과 달리 빌하인즈는 '멘탈스탬프'는 인류가 패배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피하려는 사람들의 사상을 확산시키기 위함이다.
멘털 스탬프를 통해 인류는 패배주의에 빠져, 일부는 지구를 버리고 도피하거나 삼체에게 협력하는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3부에서 직접 삼체인의 공격에 대항하던 지구군 중 일부가 도피해버리는 것도 이 하인스의 멘털스탬프로 주입된 군인들때문이다.
하인스의 면벽 프로젝트를 간파한 파벽자는 다름아닌 하인스의 아내 게이코 야마스기다.
P462
"당신의 진정한 전략은 인간의 지능 향상이 아니야. 우리가 내다볼 수 있는 미래에는 결코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없다는 걸 당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당신이 대뇌 양자 메커니즘을 발견했기 때문에 사고에 대한 연구가 양자 차원으로 이동하게 될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지. 기초 물리학이 지자에게 봉쇄당한 상황에서 이 연구가 성공하는 건 불가능해. 멘털 스템프는 사고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어진게 아니야. 당신은 처음부터 그걸 만들려고 했던거야. 그게 연구의 최종목표야."
p466
".... 당신은 패배주의와 도피주의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어. 면벽자가 되기 전에든 후든 당신의 유일한 목표는 인류의 도피였어. 다른 면벽자들과 달리 당신의 목적은 전략을 기만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진정한 세계관을 감추고 위장하는 거였어. "
인류를 구할 것이라고 믿었던 남편의 배신을 알아차리게 된 아내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뤄지의 면벽프로젝트는 하이라이트다. 이건 스포이니까 비밀로 하겠다.
2부에 이어 3부까지 이어지는 뤄지의 전략.
그리고 상상을 넘어서는 결말.
넷플릭스에서 속편이 제작중이라고 하는데 이 면벽 프로젝트를 어떻게 그려낼지, 그리고 소설의 결말 부분은 어떻게 풀어갈지 너무나 궁금하다.
11차원의 세계.
하..
다시 생각해도 감정이 벅차오른다.
이 결말을 생각해내고 그려낸 류츠신이 무서우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