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애스쿠스_질문하는 인간_다섯 번째
"저, 질문 있어요!"거의 모든 사람이 어린 시절에는 이 말을 자주 했습니다. 하늘이 왜 푸른지, 밤하늘의 별은 왜 밝게 빛나는지가 궁금했으니까요.
질문은 호기심을 가진, 생각하며 살아가는, 성장을 원하는 인간에게 내재된 삶의 태도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 삶, 그리고 세계를 질문합니다. 질문을 통해 인간은 이해하고 방향을 정하고 선택하며, 행위하고 경험합니다. 즉, 인간은 질문하는 인간입니다. 호모 애스 쿠스(Homo Askus)!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사람은 질문을 잃어버립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실용적 필요가 모든 것에 앞서기 때문이죠.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어디에 살까? 더 많이 얻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삶의 영역이 정해지면서 변화보다는 안락함을 추구하는 탓이기도 합니다. 실용성을 넘어서는 질문은 점차 삶의 도구함에서 사라집니다. 삶의 경이로움과 가능성, 미래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필요가 아니라 확실한 앎을 얻기 위해,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해결하는 발견을 위해, 삶의 의미와 나를 넘어서는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질문을 합니다.
저는 가능한 한 넓고 깊게 다양한 차원에서 삶을 경험하는 과정이 행복한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곧 충만한 삶 말이지요. 이를 위해 인간은 질문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왜 우주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일까?"를 질문했습니다. 이 질문은 우주가 작용하는 법칙에 대한 기존 설명을 뛰어넘는 가장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법칙의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충만한 삶을 위해 인간으로서 물어야 하는 질문을 찾아봅니다. 질문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이끄는 힘이기 때문이죠.
호모 애스쿠스 질문하는 인간입니다.
당신이 주최한 파티에서 술에 취한 손님이 작별 인사를 하고서는 그가 타고 온 차를 운전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그가 운전하지 못하도록 막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가 운전을 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로 그를 막으려고 할 것인가?
(출처: Gregory Stock, 'The Book of Questions: Business, Politics, Ethics', 1991, Workman Publishing Company.
'윤리적이지 못한 제국에게 ‘영원’이란 없다'라는 말을 한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영국의 정치인입니다. 18세기에 태어나 19세기 초엽까지 생을 살았습니다.
18세기 말 세계 최고의 해군력과 상선을 갖고 있던 영국은 아프리카 흑인을 데려다 북미 대륙으로 실어 나르는 노예무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항해 도중 25%가 넘는 흑인이 사망할 정도로 살인적인 노예 수송이 이루어졌지만, 경제적 이익이라는 이유 하나로 노예무역은 묵과되었습니다. 영국은 150년 동안 약 200만 명에 달하는 노예를 수송했는데요, 이 무역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국가 수입원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하원의원인 윌버포스는 국가이익, 어쩌면 국민들의 이익을 거역하면서 노예무역 폐지를 주장합니다. 다른 정치가들은 국익을 이유로 그를 극렬하게 반대했고요. 또한 노예무역 폐지로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을 농장주들은 윌버포스를 중상모략하고 비방했으며 두 번이나 암살 위협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윌버포스는 포기하지 않고 1787년부터 1833년까지 무려 46년간 150번이나 의회 논쟁을 통해 결국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성공시킵니다. 그리고 법안이 통과된 지 3일 만에 윌버포스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국이 진정으로 위대한 나라가 되고자 한다면 악행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노예무역과 같은 악행을 저지르고 오래 살아남은 제국은 역사상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의회는 정의의 원리에 무감각한 단체가 돼서는 안 됩니다. 참된 경제적 원리에 근거한 무역 관계를 수립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직한 행위로 무역을 하면 무역의 이득 역시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윌버포스는 부유한 상류층의 자제로 태어나, 당시 공공연히 이루어졌던 관행을 이용해서 8천만 파운드나 되는 엄청난 돈을 선거자금에 쏟으며 21살의 나이로 국회의원 진출에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최고 상류층이었습니다. 청소년기에는 오락과 유흥을 아낌없이 즐겼으며 대학에서는 열심히 공부하기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 열심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는 어느 날 강한 양심의 힘을 느끼고 회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1787년 10월 28일, 28세의 영국의 젊은 하원의원 윌리엄 윌버포스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내 앞에 두 가지의 큰 목표를 두셨다.
하나는 노예무역을 폐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습을 개혁하는 것이다.”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내가 믿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진정으로 당신이 믿고 지지하는 신념을 묻습니다. 가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삶의 원칙이자 지향점입니다. 인간은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가치가 없이 사는 삶은 방향이 없는 방랑자의 삶과 같습니다. 당신이 시간을 들여 땀 흘리고, 그것을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할 수 있는 그것, 그것이 가치입니다.
이 가치를 묻는 질문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주인으로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치를 모를 수는 있어도 가치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저 시간이 주어져서, 그저 태어났기에 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당신은 삶의 의미를 느끼고 싶고 또 느껴야 합니다. 가치는 그 의미의 바탕을 이루는 영혼 깊은 곳에 있는 보석과도 같습니다. 만일 가치가 없다면, 혹은 가치를 모른다면 당신 삶의 주인은 당신이 아니고 타인과 외부 상황일 것입니다. 가치는 삶의 주인으로서 자유인으로서 당신의 정체성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가치는 당신이 진정으로 믿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이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습니다. 빈 서판과 초고 이론이죠. 빈 서판 이론은 인간은 미리 정해진 감정과 인식 없이 빈 채로 태어난다는 주장입니다. 빈 서판은 경험 속에서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집니다.
초고 이론은 인간에게는 공통적인 감정과 인식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불쌍한 사람을 보게 되면 자연스러운 동정 혹은 연민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새겨져 있다는 것이죠.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타고난 본성도 작용하고, 경험을 통해 얻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실로 중요한 점은 가치는 스스로 인식하고 스스로가 명료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타인의 간섭을 구속과 억압으로 민감하게 느낍니다. 그는 자신이 자유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생활과 행동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는 새장이 아니라 세상을 원하고 행동합니다.
세 번째 의미는 당신은 가치대로 살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가치는 나에게 절대적인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은 가치가 아니라 선호도일 뿐입니다. 당신은 가치대로 살고 있나요? 이것은 삶의 전 영역에서 가치를 충분하게 구현하고 정직하게 가치대로 행동하는 삶을 묻는 것입니다. 가치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정체성의 분리이자 삶의 단절을 뜻합니다.
회사에서는 경우에 따라 정직과 성실을 내팽기치면서 집에서는 정직한 가장이 되는 것은 분리이자 단절입니다. 분리와 단절은 가장 먼저 내 영혼의 파수꾼이 알아챕니다. 분리와 단절된 삶이란 영속되기 어렵습니다.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내가 믿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묻습니다. 당신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삶의 준칙으로서 추구하는 의미를 묻습니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낯설면서도 익숙한 양가적 감정을 느꼈습니다. 먼저, 살아오면서 열심히 추구하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익숙했습니다. 행복함을 느끼는 것, 넓게 사람들과 관계를 나누기, 성장이 저의 가치였죠. 그런데, 정말로 진지하게 나의 가치를 생각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낯섦이 느껴진 것이죠.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내가 가치라고 생각한 것들은 진정으로 내가 믿는 것인가? 그리고, 제가 생각했던 가치 중에는 타인에게 배운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받아들였지만,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들. 그래서 진정한 가치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습니다. 내게 진정으로 소중한 무엇, 상황이 달라지더라도 삶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무엇 말이죠.
개인생활, 직장생활, 가정 등 살아가는 영역은 다르더라도 한 사람의 존재로서 내가 추구하는 그 무엇 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야기
매우 오래전에 살았던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에서는 성자로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철학에서는 초기 기독교 사상을 정립한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지만, 방탕아에서 성인으로 극적인 전환을 한 역동적인 인물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시절 성욕의 화신이었다고 그가 쓴 <고백록>에서 고백합니다. 어머니의 절절한 기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욕을 채우기 위해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설득에 기독교로 귀의하고서도 이 욕망을 극복하지 못했죠. 그런 그가 기독교를 받아 들이는 것은 치열한 내적 투쟁을 거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성찰하고 비로소 자신의 믿음을 세우게 됩니다.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내가 얼마나 보기 흉하고, 비뚤어지고, 더럽고, 얽었고, 종기투성이인지 보게 하셨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보기 싫어서 나를 피해 어디로 가고 싶었으나 갈 곳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세상의 낙을 끊어 버리지 못하여 지혜를 탐구하는 일을 미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너무 빨리 내 소원을 들어주시면 꺼지기보다는 충족되기를 원했던 내 정욕의 병으로부터 내가 너무 빨리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신성모독의 미신을 좇아 사악한 길(마니교)을 헤매며 돌아다녔습니다. 내 영혼은 습관의 흐름이 저지당하는 것을 죽음처럼 두려워하였으나 사실은 바로 그 습관 때문에 영혼은 죽음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중에서>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또한 인간은 자신을 해하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가치는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삶을 이끌어 가는 등대와도 같습니다.
가치 탐색은 한 번에 끝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이해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만, 허영, 질투, 자기만족, 정욕 등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여러 욕망과 유혹을 추구했고, 그것을 이겨내면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이렇게 힘든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믿는다는 것은 말을 넘어 행동으로 구현하는 것입니다. 결코 쉽게 발견되지는 않는 것이죠. 그래서 가치에 대한 탐색은 너그러워야 합니다. 지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뚜렷하지 않더라도 결코 잘못이 아닌 것이죠. 다만,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계속 찾는 노력이 진정으로 필요합니다.
가치를 발견하는 몇 가지 방법을 조언합니다.
미덕 탐색을 통해서:
52가지 미덕을 소개합니다. 이것은 가치를 내용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꼭 당신의 가치가 이것으로 한정되지는 않습니다.
<52가지 미덕: 한국 버츄프로젝트(전 세계의 민담, 신화, 설화 등을 통해 뽑은 아름다운 가치 52개)>
- 먼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덕목을 다섯 개 고릅니다.
- 고른 것들 중에서 세 가지를 선택합니다.
- 선택한 세 가지의 가치 덕목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자기 질문을 통한 탐색:
가치는 나의 마음이 주의를 기울이고, 감정에 긴밀한 영향을 미치는 어떤 경험에 숨겨 있기도 합니다. 다음 질문을 해 보세요. 그리고 대답에 대해 진지하게 왜 이것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내가 신경 쓰는 대의명분이나 나의 창의적인 기운을 북돋우는 것
나를 당황스럽게 하거나 내 피를 끓게 만드는 것
나를 슬프게 하고 눈물 나게 하거나 분노하게 하는 것
내가 친구들과 항상 이야기하는 이슈거리
내가 존경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 그가 대변하는 어떤 것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내가 믿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들어 보세요.
자신을 새롭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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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애스쿠스 #006
나의 강점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