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시작한지 가장 보람된 순간 중 하나가 되리라 예상한다. 고등학교 때 같은 기숙사에 있었기 때문에 더 친한 친구인 D의 이야기다.
D는 내과 의사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6년간 공부를 더 하고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 생활을 경험하고 나서야 전문의가 된다. 그 자체로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D도 그렇다. 그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이 있는 가장이다.
2020년에, 한 3년만에 D를 포함한 친구 셋이 합정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술을 좀 마셨다. 카카오톡이나 통화로 종종 연락은 주고 받았는데 만난 건 오랜만이었다. 고등학교 추억팔이 잡담을 나누는 데 D의 발음이 약간 어눌함을 느꼈다. 근데 뭐 목소리나 톤이 고등학교 때와 비슷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D는 조금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갔는데, 걸음걸이가 자연스럽지 않았다. 순간 난
‘자식, 술도 안 마셨는데 왜 취한 사람처럼 걷지?’ 했다가
‘D, 다리가 아픈가?’ 정도로 생각했다.
그 때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야, 아는 척은 하지 말고 알고만 있어. D, 지금 몸이 안 좋아. 소뇌위축증이래”
쿵!
내가 알고 있는 그 희귀질환? 원인도 모르고 수술도 못하고 약도 없고 환자도 별로 없는 그 소뇌위축증?
소뇌위축증은 말 그대로 소뇌가 점점 작아져, 소뇌가 담당하던 몸의 운동 기능이 제 역할을 못하는 병이다. 걷는 것, 말하는 것 등이 자연스럽지 않다가 병이 더 악화되면 나중엔 혼자 음식을 먹기 힘들 정도로 움직이기 어렵다.
그런데 D로부터 만나자고 전화가 왔다. 보통 주변 사람들이 아프면 조언을 구하려고 내가 전화를 걸었는데 먼저 연락이 왔다.
“오~ D, 웬일이야, 먼저 연락을 하고!”
“야, 내일 점심이나 저녁에 시간 되냐? 네 조언이 필요하다.”
“내가?”
“어, 우리 첫째가 이번 2월에 졸업인데 졸업 선물로 그동안 쓴 일기나 편지 등을 모아 출간해서 주려고.”
아~! 아… … 그 내일이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