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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o Oct 26. 2023

퇴사했습니다.

개요

약 3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개발자로서 서울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전혀 몰랐다. 운 좋게 알게 된 서울의 어느 한 소규모 보안업체에 취직하면서 서울로 상경한 뒤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보안 취약점 진단을 수행하는 업무를 하다 보니 그 당시는 이에 관련된 직종에서 꾸준히 일을 하는 미래를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개발자를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출장을 가기 싫다” 에서였다.


지방으로 출장을 가 장기간 체류하는 것은 몸과 마음이 피곤할뿐더러 “IT인”으로서 발전이 없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내 적성에 맞고 골몰히 할 수 있는 일은 “개발자”가 아닐까라는 기대심으로 면접을 보러 다닌 결과 오게 된 회사가 퇴사를 하게 된 현시점의 회사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직장생활이었으며 많은 일들을 겪었고 또한 여러 가지를 배운 회사였다.


넷플릭스에서는 “부검메일”이라는 제도가 존재한다. 퇴사하는 직원에게 퇴사의 이유, 퇴사자가 느낀 아쉬운 점들을 분석하는 메일을 작성하게 하는 것이다. 퇴사를 하는 현 회사에서는 이러한 문화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회사에 대해 회고한다”라는 관점에서 이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왜 떠나는가?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월급이 밀린다는 게 주요 골자이다.


처음 월급이 밀렸을 때는 위기감이 없었다. 소규모 기업에 재직한다는 것은 월급이 밀릴 수도 있겠다는 잠재적인 위험을 감수해 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달, 3달이 밀리기도 하고 작금에 와서는 4달가량 밀려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했다.


월급이 밀리면서도 회사를 계속 다녀야지라고 생각한 건 첫 직장에서의 성공을 이루고 싶다는 기대심리였다. 마치 첫사랑과 결혼까지 가는 낭만과도 같았다. 


그러나 4달 가까이 급여가 밀리니 상황을 보다 현실적으로 바라봤고 견문을 넓히고 싶었다.



회사에서 배운 것


회사에 재직하는 동안 배웠던 제일 중요한 3가지 포인트를 짚어보자면 “오너쉽”, “삽질자제”, “질문하기”이다.


첫 번째로 “직원으로서의 오너쉽”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나에게 “일”을 한다는 건 “안 잘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의 수동적인 인간이었다. 한 6~7개월가량 이런 마인드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생산성이 잘 나오질 않았고 기대한 결과가 아니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한 마디로 일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하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특정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느 날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못 버티면 앞으로의 서울살이는 힘들겠구나”

서울에서 생존하기 위한 일념은 있었으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일을 더 주체적으로 처리하고자 노력했다. 일거리를 받으면 혼자 골몰한다기보다는 이해가 안 되는 건 물어보러 다녔다. 어떤 이유로 일이 생겨났는지를 알 수 있었으며 모르는 게 있으면 10분 20분 고민하다 사수에게 질문을 통해 해결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회사를 통해 배운 “오너쉽”이라는 키워드는 “유기적인 소통을 통해 문제를 공감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이 되었다.


두 번째, 삽질자제

개발자로서 일을 하다 보니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었다. 내가 모르는 지식이나 삽질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상황들이 그러하다. 그럴 때마다 항상 고민에 빠진다. “빨리 물어봐서 해결해야 하는가?” 아니면 “스스로의 답을 찾아야 하는가?”인데 결론은 어느 한쪽을 취한다기보다는 양쪽을 적당히 취해야 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답을 찾기까지 많은 시간을 쏟아서는 안되며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빠르게 인정할 줄 알아야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할 수 있었다. 결국 직장에서 너무 깊은 삽질은 자제해야 한다. 개발자이기 전에 사원이며 사원으로서 해결해야 하는 건 맡은 바 일을 완수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리소스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잘 파악하고 그것들을 활용하여 문제를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 번째, 질문하기


한 번은 문서에 등장한 용어가 대중적이고 일반적으로 구현되는 예제들도 있었기에 별생각 없이 구현했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의도했던 결과물이 아니었고 왜 그렇게 처리했는지를 스스로 짚어보니 “알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를 들어 “목록조회 기능을 개발해 주세요”와 같은 요구를 받게 되면 보편화된 목록조회를 떠올리면서 개발하게 된다. 하지만 요청을 한 사람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목록조회는 무엇입니까”와 같은 질문을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질문을 했을 때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선명하게 알 수 있으며 거기에 더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회사에 아쉬운 점

급여 때문에 퇴사를 결심했지만 그 외로 한 가지를 더 꼽아보자면 성과 측정에 대한 아쉬움이다. B2B 위주의 사업과 매번 사업이 변하다 보니 프로젝트를 exit 한다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시작과 끝점을 알지 못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회사 성장에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지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를 확실히 하는 것이 어려웠다.


결국 돌아보면 내가 이 프로젝트에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정성”적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결과만 남아버렸다. 이 부분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수치”로 임팩트를 주는 세상과 비교해 보자면 많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미 갈 곳은 정해놨다. “의료”를 기반으로 산업 하는 신생기업이다. 개발자로서 두 번째 커리어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개발자”를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개발은 재밌고 앞으로 지속하고 싶지만 내가 설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경기불황과 신기술의 등장으로 고용한파가 오는 것도 있겠지만 어떻게든 이겨낸다 치더라도 한계가 있을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여기서 못 버티면 앞으로의 서울살이는 힘들겠구나”라는 마인드를 가졌던 때처럼 앞으로 버티기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마치며

급여가 밀리는 것 때문에 퇴사를 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못내 아쉽다. 그만큼 나에겐 좋은 회사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수님”을 통해서 배우고 얻게 된 “일의 태도”와 “개발 철학”은 앞으로 어디서 “개발자”를 해도 지켜야 할 원칙처럼 자리 잡았다.


신입 개발자로서 입사해 3년 차가 될 때까지 잘 일러주신 사수님이 있기에 다음 커리어도 1도 고민 없이 “개발자”를 택할 수 있었다. 때로는 멘토였고 때로는 인생 선배이기도 하셨던 사수님에게 이 글을 빌려 감사함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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