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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Jul 04. 2021

꿈은 없지만 호기심이 있으니까

철없던 20대의 터널을 지나 오로지 호기심을 따라서


“너 나중에 뭐 되고 싶어?”

“몰라. 그런 거 없는데? SKY 나온 다음에 대기업 취직해서 목걸이 명찰 걸고 다니면 폼날 거 같긴 해. 근데 그게 내 성적에 가능하겠냐.”


고등학교 시절, 잠실 야구장에서 야간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학교 도서실에서 뛰쳐나와 야구장 라이트가 환히 비치는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대부분 시시껄렁한 주제였지만, 그 대화만큼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지금도 회사 명찰을 목에 건 채 점심을 먹으러 나온 넥타이 부대를 보면 그때 그 대화가 생각난다. 그렇게 틈만 나면 미래의 우리를 상상하면서 낄낄댔지만, 거기에는 꿈도 계획도 없었다. 돌이켜 보면 난 공부를 썩 잘하는 모범생도 아니었고, 성실하지도 않았으며 뚜렷한 꿈도 없었던, 그렇다고 대단한 반항을 해본 적도 없는, 학교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생활기록부의 장래 희망란에 ‘선생님’이라고 쓰긴 했지만, 정말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딱히 없었다. 


학과를 결정할 때도 막연하게나마 호기심이 있었던 심리학과나 사학과는 취업률이 낮다는 주위의 만류에 바로 접었고 별생각 없이 부모님이 권유해주신 중문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 걸까. 대학 입학을 앞둔 1월, 뭐라도 좀 배우고 가야 할 것 같아 찾아간 중국어학원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태어나 단 한 번도 공부가 재미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중국어는 달랐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공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첫날 첫 수업부터 중국어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대학 4년 내내 중국어 덕후로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꿈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중국어가 재미있었고 중국어를 더 잘하고 싶다는 의욕만 있었다. 운 좋게도 우연히 선택한 중국어가 적성에 딱 맞긴 했으나 그것이 꿈을 가져다주진 않았다.


대학 졸업 후, 공부를 계속해보면 어떻겠냐는 부모님의 권유로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2년 동안 어학연수를 하며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베이징에서의 유학 생활은 즐거웠고 중국어도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여전히 꿈은 없었다. 박사과정까지 모두 끝내려면 최소 6~7년은 걸릴 텐데, 그때까지 유학생으로 지낼 생각을 하면 지루하고 답답할 것만 같았다. 대학원 진학을 결정해야 할 무렵, 대학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홍콩의 한 회사에서 중국어가 능통한 한국인 직원을 뽑는데, 혹시 생각이 있으면 추천을 해주겠단다. 세상에, 홍콩이라니.... 호기심의 촉수가 바짝 올라왔다. 느와르 영화에서 보았던 그 홍콩이라고? 분명 내 진로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었는데, 난 조금의 고민도 없이 바로 승낙을 해버렸다. 단 5분 만에 대학원 진학 대신 홍콩에서의 취업을 선택한 것이었다. 오로지 '홍콩'이라는 곳에 대한 호기심으로 말이다. 


홍콩에서의 회사 생활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낯선 도시, 그것도 화려한 홍콩에서 내가 번 돈으로 생활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었다. 유학생의 신분이었던 베이징에서의 생활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하루하루가 다채로웠다. 

그렇게 2년쯤 홍콩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어느 날 문득 홍콩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이유는 단 하나, 홍콩에서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한 친한 언니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언니들은 평생 홍콩에서 살 게 아니라면 3년을 넘기지 말고 한국으로 돌아가라 권해주었다. 자타공인 얇은 귀의 소유자답게 난 또다시 새로운 직업을 찾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번에도 오래 고민하지도 않고 덥석 귀국을 결정해버렸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홍콩계 다국적 기업에서 1년 가까이 일했을 무렵, 어느 날 친구 R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던 R은 회사를 그만두고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노량진에 가보겠다는 친구 얘기에 문득 어릴 적 생활기록부 장래 희망란에 '선생님'이라고 썼던 게 생각이 났다. 

'아하, 학교 선생님도 재미있겠는걸!! 임용시험 준비하는 게 힘들려나?'

그렇게 오로지 호기심으로 친구를 따라나선 노량진의 고시 학원가에서 나의 새로운 인생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나이 서른 살에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마다 난 꿈이나 계획, 전망보다는 호기심이 선택의 기준이 되곤 했다. 충분히 고민하고 전망도 가늠해보는 과정이 필요함에도 나는 번번이 그 순간 마음이 끌리는 대로 손쉽게 결정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선택 앞에서조차 그리 신중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고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비록 꿈은 없었지만, 호기심이 나를 견인해주었고 그 못 말리는 호기심 덕분에 남들보다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누군가는 꿈을 꾸고 자신의 인생을 잘 계획하여 차근차근 구체화해가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결국 멋진 성취를 이루기도 할 것이다. 나 역시도 만약 뚜렷한 꿈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대단한 성취는 이루지 못했지만, 조금 성급해도 호기심으로 걸어온 인생이니 이만하면 꽤 스펙타클하고 재미있었다 토닥여주고 싶다. 

그러니 꿈이 아닌 호기심으로 사는 인생도 그리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다. 

사실 꿈이란 건 마음 먹는다고, 노력한다고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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