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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Sep 03. 2023

이상한 N잡러


“이거 딱 너 얘기인데?”

친구가 인터넷에서 어느 인터뷰 기사를 보여주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유튜버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 어느 N잡러의 인터뷰였다. 


요즘은 N잡러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N잡러도 많고 N잡러를 꿈꾸는 사람도 많다. 굳이 사전적 의미로 구분을 해보자면 나도 하는 일이 여러 가지라는 점에서는 N잡러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그 분류가 경제적 수익을 기준으로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마디로 난 그저 하는 일만 여러 개이고 부가 수익은 거의 없는 이상한 N잡러라고 할 수 있다.


‘이상한’에 방점을 찍자고 들면 제일 이상한 건 현재 나의 주 직업이 공무원이라는 사실이다. 어렸을 때부터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떠올리면 융통성 없음, 고리타분함, 지루함 따위의 단어가 먼저 연상되었다. 누군가 공무원이 꿈이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왜?”라는 질문이 먼저 나오곤 했다. 

그런 내가 뒤늦게 임용시험을 보고 교사가 되었다. 

교사도 공무원이긴 하지만, 그나마 일반적인 의미의 공무원과는 조금 결이 다른 공무원이었기에 나의 아이덴티티는 줄곧 교사였을 뿐 공무원은 아니었다. 그러니 교사가 되고 난 뒤, 교사보다 더 공무원스러운(?) 장학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적당한 나이에 퇴직하여 쓰고 싶은 책을 쓰고, 블로그를 하고, 교육 상담 전공의 박사 학위와 청소년상담사 자격증으로 작은 센터를 운영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노후를 꿈꿔왔다. 

그러다 엉겁결에 장학사가 되었다.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길에 갑자기 들어서게 된 것이다. 회사원이 싫어서 교사가 되었는데,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렇게 난 계획 없이 교사에서 장학사로 전직을 했다. 나이 오십에 직업을 바꾸고 다시 신입사원이 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교사도 공무원이긴 하지만, 그래도 학교는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조직인지라 마음 편하게 지내왔는데, 교육청은 학교에 비하면 훨씬 엄격한 분위기였다. 조직의 틀이 좀 더 분명하고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의전도 중요한 편이며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많아졌다.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실없는 농담도 하면서 틈틈이 마음을 내려놓는 여유도 있지만, 교육청에서는 온종일 긴장해서 컴퓨터만 들여다보니 피로도가 훨씬 크게 느껴졌다. 일단 절대적인 업무량과 업무 부담 자체도 훨씬 높으니 그럴 수밖에.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할 업무인 민원 응대 또한 쉽지 않으며 공문 하나 쓰는 것도 학교에서보다 훨씬 더 긴장하게 되었다. 여기에 공직사회가 주는 심리적 강도나 긴장감까지 더해지니 이래저래 더더욱 회사의 신입사원이 된 기분이었다. 지금도 일하다가 문득 '내가 어쩌다 장학사가 되었을까?' 싶은 낯선 느낌에 마치 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만약 내 삶에 이 직업 하나만 있었다면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진작에 사표를 던지고 새로운 삶을 모색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나에겐 다른 페르소나가 두세 개쯤 더 있다. 10년 넘도록 퇴근 후에는 블로그를, 주말에는 책을 쓰는 삶을 이어왔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일까. 호기심천국 열정러 ESTP답게 상담심리에 관심이 생겨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고, 10년 가까이 걸려 꾸역꾸역 박사 논문까지 끝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소년상담사 1급 자격증 시험에 합격함으로써 교육심리 공부는 어느 정도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지금껏 살면서 운 좋게도 도전했던 일은 대부분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난 그 어떤 분야에서도 천재적 재능은 갖고 있지 않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전문가로서의 역량도 애매하게 부족하다. 단지 호기심천국 열정러 ESTP의 사방으로 뻗어있는 안테나가 겨우 닿을 수 있을 만큼의 어중간한 재능과 적당한 운을 가진 덕분에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남보다 특출나게 뛰어난 분야도 없고 대단한 재능도 없지만, 호기심 하나로 무모하게 도전한 결과, 어중간한 재능을 최대치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껏 인생을 롤러코스터 타듯 유영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못 말리는 호기심과 얇은 귀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페르소나의 다양성으로는 나를 N잡러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난 그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열정러일 뿐이다. 

블로그는 대가성 리뷰를 하지 않고 취미로만 운영하기에 따로 수입이 없고, 책 집필 역시 약간의 인세 외에 실질적 수입원이 되지 못한다. 물론 책이 초대박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박사 학위 역시 내가 유료 상담을 하거나 상담 센터를 운영하지 않는 한 수입은 따로 발생하지 않는다. 

현재의 난 중국어 교사 출신의 장학사이고 상담을 전공한 교육학자이며 여행작가이고 동시에 블로거이지만, 수입은 월급과 약간의 인세뿐이다. 즉,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나는 좀 이상한 N잡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만약 수입까지 더해진 진짜 N잡러가 되고 싶다면 공무원을 포기해야 하니 결국 나는 경제적 수입보다는 여러 페르소나가 공존하며 주는 에너지와 직업의 안정성을 택한 셈이다. 비록 번외 수입 없는 이상한 N잡러이긴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내 삶은 풍요로워졌고 늘 ‘지금 이 순간’이 지루할 틈 없이 신나고 설렐 수 있었다. 


최근에는 갑자기 계획에도 없던 장학사가 되는 바람에 나의 인생에 예상치 못한 버그가 발생했다.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워라밸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고 업무 환경은 달라졌으며 퇴직 후의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얇은 귀와 호기심 때문에 계획에도 없는 찐 공무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다행히 막상 장학사의 업무를 시작해보니 내가 걱정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방학이 없어진 건 못내 아쉽지만, 학교와는 다른 즐거움도 있고 결이 조금 다른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진중한 고민 없이 대충 되는대로 결정해서 여기까지 오긴 했으나,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치밀하고 성실하게 사는 건 인생의 중요한 숙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염려는 여전히 존재한다. 힘들여 받은 박사 학위가 언젠가 쓸모를 발휘할 수는 있을지, 블로그와 브런치를 꾸준히 운영해나갈 수 있을지,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낼 수 있을지, 지금처럼 이상한 N잡러의 삶을 잘 유지할 수 있을지 말이다. 

나이 오십의 뒤늦은 고군분투 인생 모험기는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것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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