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베드 버그는 없었지만...
다행히 베드 버그는 없었다.
하지만 시장통에서 사람들 떠드는 소리, 새벽을 깨우는 아잔 소리, 언제 빨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지저분한 담요를 덮어야 하는 불쾌함, 벌레에 물리면 어쩌나 하는 긴장감 등 셀 수 없이 많은 방해 요소들 때문에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심란한 첫날 밤을 보내고 나니 벌레에 물리지 않은 건 감사하지만 페스에 대한 호감과 기대감은 급감했다. 지금껏 여행 다니면서 호화로운 숙소를 고집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방은 정말 처음이었다.
사실 냉정히 분석해보면 숙소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페스의 구시가지인 메디나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저분했고 숙소까지 걸어오면서 골목 곳곳에 질펀했던 똥과 코를 찌르는 냄새 때문에 이미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디 그뿐인가. 모로코의 전통문화를 체험해보겠다고 나름 야심차게 예약한 리야드(모로코식 전통 가옥) 호텔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낡고 음습했다. 실제로 리야드에서 벌레를 목격한 적은 없었지만, 그 음습함 때문인지 아니면 메디나 바닥의 똥을 너무 많이 봐서인지 몰라도 내 몸 어딘가에 벌레가 기어다니고 있는 것 같은 심리적 가려움증 때문에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나마 꽤 비싼 금액을 주고 예약한 숙소였는데, 이런 줄 알았으면 괜한 호기를 부리지 않고 그냥 메디나 밖 신시가지에 있는 호텔을 예약할 걸 후회가 밀려왔다.
아무래도 난 진정한 노마드 여행자는 될 수 없나보다. 앞으로 여기서 이틀을 더 묵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등이 근질근질.
우리는 찌뿌둥한 몸을 추슬러 숙소에서 나와 페스 메디나의 상징인 Bab Bou Jeloud로 향했다. '블루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Bab Bou Jeloud는 메디나로 통하는 대표적인 입구 중 하나로, 안쪽은 초록색, 바깥쪽은 파란색 타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문이다. 초록색은 이슬람을, 파란색은 페스 Fes를 상징한다고.
페스의 메디나는 워낙 미로처럼 복잡해서 가이드 없이는 다니기 힘들다는 얘기를 수없이 많이 들었지만, 우리는 일단 가이드 없이 다녀보기로 했다. 수크는 그냥 목적 없이 여기저기 다녀도 괜찮지만, 페스의 하이라이트인 가죽 염색장 '테너리 Tenneries'는 가이드 없이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던데 과연 우리는 가이드 없이 스스로 '테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괜한 고집 피우다가 결국 찾지도 못하고 지치는 건 아닐지 살짝 염려도 되었지만, 괜히 알 수 없는 오기가 발동헸다.
그래, 우리끼리 찾아보는 거야!!!
여기저기 쉽게 눈에 띄는 서양인 단체 관광객 그룹 중 하나를 따라 일단 수크 안으로 들어갔다.
한때 모로코 왕국의 수도였던 페스는 카사블랑카, 마라케시에 이어 모로코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가장 지성적인 도시로 손꼽힌다. 세계 최초의 대학이 있던 도시라는 사실 때문인지 페스 사람들의 자부심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이슬람에서 가장 예술적인 감성이 발달한 곳이라는 자부심 말이다.
어젯밤에 잠깐 보았던 첫인상 그대로 페스의 수크는 놀랍게도 1,200년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메디나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이곳 메디나는 완전히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놓고는 구불구불 끊길 듯 이어진 좁은 골목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걷다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천 년 전 과거로 돌아온 것처럼 머리 속이 아득해지는 느낌이다.
삼각 꼬깔모자가 달린 젤라바 Djellaba를 입고 납작한 가죽신을 신은 아저씨들, 히잡 Hijab을 둘러쓴 채 종종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가는 아주머니들, 수크의 유일한 운송 수단인 노새의 지친 발굽 소리와 노새몰이꾼 할아버지의 힘찬 고함소리, '테너리'를 되풀이하며 우리의 옷깃을 쉴새 없이 잡아끄는 짝퉁 가이드들의 집요한 속삭임, 가공하지 않은 가죽 냄새와 각종 음식물 냄새, 고양이와 당나귀들이 아무렇게나 버려놓은 배설물 냄새 등이 뒤엉킨, 표현하기 힘든 코의 자극들.
마라케시의 수크가 철저하게 여행자들을 향해 눈높이를 맞춘, 지극히 상업적인 유쾌만발 시장이라면 이곳 페스의 수크는 돈벌이의 수단이 아닌 천년 고도의 삶의 현장이자 있는 그대로의 생생한 날 것, 그 자체였다. 미로처럼 뒤엉킨 수크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렇게 나를 이방인으로 밀어낸 채 삶의 강한 역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나는 컬러 화면이고 수크는 흑백 화면인 것처럼, 내가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정지된 화면 속을 걷는 것처럼,
페스의 수크는 그렇게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는, 말이나 글로도 표현하기 힘든 천년 세월을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는 론리 플래닛의 지도를 따라 꼼꼼하게 수크의 좁은 골목을 짚어갔다.
15분쯤 그렇게 걸었을까. 문득 뭔가 기분 좋은 예감이 코끝을 스치면서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난 표지판.
'Tannerie Chouara'. 와우, 테너리다!!!
두둥~ 결국 단 한 번의 시행착오도 없이 우린 너무나 쉽게 테너리를 찾아낸 것이다. 뿌듯뿌듯.
사하라 사막과 더불어 모로코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인 테너리 Tennery는 천년 고도 古都 페스의 가죽 염색 공장을 일컫는 말로서 수백년 전의 야생적인(?) 방법 그대로 가죽을 염색하는 거대한 야외 공장이다. 가죽을 15일 동안 말리는 작업부터 시작하여 비둘기 똥을 이용한 탈색 과정을 거쳐 염료가 담긴 구덩이에 가죽을 넣어 염색하는 작업까지 그야말로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쉬지 않고 진행되는, 진정한 노가다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관광객들이 이 지독한 악취를 견딜 수 있도록 입구에서 박하잎을 나눠주었지만, 사람의 인체란 너무도 신비하여 처음엔 난생 처음 겪어보는 악취에 경악을 금치 못하다가도 5분쯤 지나자 코에 아무런 감각이 없어지면서 충분히 견딜만한 수준이 되었다는.
거대한 테너리는 1층 마당에 위치해 있고, 우리는 2층의 테라스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입장료는 따로 없고 그냥 원하는 만큼 내는 자유 지불 형태랄까. 물론 돈을 내지 않고 그냥 나간다 해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다.
테너리는 사진에서 본 그대로 정말 대단했다.
강렬한 색채감만큼이나 강렬한 삶의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할까.
그러나 그 에너지는 결코 역동적이거나 의욕이 넘치는 강렬함이 아니라 짙은 가난이 묻어나는 절박한 삶의 그늘이었다. 여름에는 4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더위에도 그들은 염료가 들어찬 구덩이에 들어가 가죽 색깔이 물들 때까지 치열하게 삶과의 전쟁을 벌인다. 평생 그렇게 뜨거운 염료 구덩이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짙은 가난이 테너리 전체에 깊이 침잠해있는 것 같아 문득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런 절박한 삶의 모습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그들의 강렬한 색채감이 주는 포스에 감탄하는 (나를 포함한) 관광객들.
문득 그들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게 부끄러워졌다. 그들은 평생 벗어날 수 없는 끔찍한 가난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나는 박하잎을 코에 갖다댄 채 카메라를 그들에게 향하고 멋지다 멋지다 감탄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광경이라니...
나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나고 그들은 모로코 페스의 테너리 가난한 인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로 그들은 테너리를 자신의 숙명처럼 받아들인 채 묵묵히 평생을 염료 구덩이에 몸을 담그고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다리 전체가 염료의 빛깔로 물들어가는 세월만큼이나 오랫동안 벗어나기 힘든 가난의 굴레가 악취 가득한 테너리에 깊이 번져가고 있었다.
나는 그날 그렇게 지구 반대편의 그곳 테너리에서 멋진 사진과 더불어 곤고한 삶의 한 조각을 마음에 담아두어야 했다. 그건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부채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장면, 그 순간은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 깊은 곳에 각인되어 그날의 복잡한 마음을 문득문득 떠올리게 해주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여행이 나에게 주는 진정한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말로 명쾌하게 표현하긴 힘들지만 찰나의 순간으로 이미지처럼 기억되는 통찰 비슷한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