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의 여행을 간절히 기다리며
2020년 2월, 치앙마이와 방콕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공항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공항 안에 머무는 것도 무서워서 체크인 카운터 오픈 시간 전까지 공항 밖 버스 정류장에 땀을 뻘뻘 흘리며 서있었더랬다. 당시엔 KF 마스크를 쓰면 안전하다는 확신조차 없었기에 그저 코로나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런 공포 속에서도 예전의 사스나 메르스처럼 몇 달만 이렇게 고생하면 약도 나오고 다시 일상을 되찾을 줄 알았다.
그해 여름, 늦어도 겨울에는 다시 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2020년 여름은커녕 겨울에도 그런 일상은 돌아오지 않았고 한 해가 꼬박 지나 코로나 2년 차인 2021년 가을에도 여전히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간혹 지인 찬스나 트래블 버블 등으로 하와이, 사이판, 괌 등에 다녀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의 신분으로는 여전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세상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
재난 영화 같은 이런 낯선 일상이 이토록 오래 이어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코로나 이전에는 여행 가고 싶은 나라가 정말 많았다.
2019년 여름에 스위스를 다녀와서는 오랜만에 다시 간 유럽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다음엔 이탈리아 돌로미티를 가자 결심했고, 돌로미티에 간 김에 이탈리아도 다시 한 번 여행할 생각에 설렜다. 유럽 여행 갔을 때 일정이 부족해 빼야 했던 영국에 일주일쯤 다녀와도 좋겠다 싶었고, 발트 3국도 빨리 가보고 싶었으며 꽃보다 누나로 유명해진 크로아티아도, 사람들이 좋다는 조지아도 가고 싶었다. 어디 그뿐인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도 보러 가고 싶었고 남미 여행에서 시간이 부족해 못 갔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도 궁금했다. 더 나이 들면 럭셔리하게 가자고 아껴두었던 북유럽도 슬슬 계획을 세워보려 했고, 짧은 휴가에는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도 후루룩 다녀오고 싶었다.
그러다가 코로나19가 시작되었고 세계적인 재난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더 길어지면서 이젠 자유롭게 여행을 다녔던 시절이 마치 오래 전 꿈을 꾼 것처럼 아득해졌다. 이러다 여행 자체가 '라떼는 말이야'가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될 정도다.
그런데 신기한 건 코로나19의 끝이 멀어질수록, 여행을 갈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여행 가고 싶은 곳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이젠 더 이상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도 궁금하지 않고 돌로미티도, 크로아티아도, 아르헨티나도, 러시아도 가고 싶단 생각이 딱히 들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코로나가 끝나자마자 바로 달려가고 싶은 여행지는 나의 위시 리스트에 있던 여행지들이 아닌, 그동안 오래 머물렀던 익숙한 곳들이었다. 나의 20대 후반을 보냈던 홍콩, 코로나 직전 마지막 여행이 되었던 치앙마이, 청량함의 끝판왕이었던 스위스,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캐나다 온타리오주..... 이런 익숙한 곳들을 다시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 코로나가 끝나면 무조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여행지는 오직 딱 하나, 바로 내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익숙한 그곳, 대만 Taiwan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그리운 건 거창하고 유명한 관광명소가 아닌 1년에도 몇 번씩 일상 여행자로 만났던 타이베이의 소소한 동네 풍경들이다.
집 앞 동네처럼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매일 걸었던 작은 골목길, 아침을 먹었던 허름한 국수집, 복잡하지만 질서정연한 타이베이의 MRT 역, 시끄럽고 매연 가득할 것 같지만 의외로 조용한 오토바이의 행렬, 코로나 이전에도 마스크 사용이 일상화되어있던 친절한 타이완 사람들.... 이 모든 일상 속 풍경들이 그립다.
어디 그뿐일까. 대만에 사는 지인들이 SNS에 무심코 올리는 타이베이 사진 속 희미한 배경으로 보이는 간판이나 익숙한 거리 풍경만 봐도 문득 울컥해진다. 낡고 복잡하고 정신없는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 역 뒷골목을 걸으면서 여기가 좋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SNS에서 우연히 만난 그 뒷골목 풍경마저도 너무 그리웠다. 낡은 건물에 작은 상점들이 다닥다닥 이어진 좁은 골목에 차와 오토바이가 끊임없이 오가고 사람들로 가득한 그 복잡한 풍경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그러고 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누군가에겐 격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마중물이 된다는 게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다.
너무나 그리운 타이베이, 그곳은 지금 안녕한지,
내가 좋아하던 맛집들은 아직 잘 버티고 있는지,
내가 늘 걸었던 그 골목은 지금은 누가 걷고 있는지,
내가 자주 가던 서점은 오늘도 여전히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히고 있는지,
내가 사랑하는 음식들은 아직도 그 맛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따다오청과 딴수이의 일몰은 지금도 가슴 먹먹하게 아름다운지,
동네 공원의 울창한 숲들은 여전히 깊은 숲내음으로 푸르른지,
왁자지껄 즐겁고 흥겨웠던 야시장들은 힘든 중에도 잘 견디고 있는지.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그리워하듯 그렇게 타이베이의 골목이 그립다.
아무리 멋지다고 해도 가본 적 없는 여행지보다는 마치 집 앞 우리 동네처럼 익숙한 타이베이의 골목이, 대만의 분위기와 느낌이, 그곳의 사람들이 가장 그리운 걸 보면 나에게 여행이란 새로운 경험보다는 쉼과 머무름의 의미가 더 컸던 걸까 싶기도 하다. 혹 이전에는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코로나가 나에게 여행의 의미를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디 올겨울, 늦어도 내년에는 다시 일상 여행자로 타이베이의 골목을 유유자적 걸으며 그곳의 안녕을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간절함이 꼭 이루어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