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렬하고도 뜨거운 첫 만남. 칠레 아타카마

여행의 찰나, 먹먹하게 그리운 순간에 대하여

by 신서희


한 달 전부터 기다려왔던 전라도 여행이 취소된 몇 주 전 주말, 우두커니 집에 있는데 문득 몇 년 전 다녀온 남미 여행의 한 순간이 생각났다. 왜 갑자기 그 순간이 떠올랐는지 알 수 없지만, 마치 여행 취소로 허전해진 내 마음을 달래주려는 여행의 위로 같은 기분이었다.




남미여행의 첫 도시였던 산티아고에서의 3박 4일 일정을 마치고 아침 7시 10분 비행기로 두 번째 도시인 아타카마 San Pedro Atacama로 향했다. 꽤 이른 시간인데도 공항은 이미 사람들로 바글바글. 비행기는 마치 출근 시간 버스처럼 양복 차림의 아저씨들로 가득했다.

약 2시간의 비행 후, 산티아고에서 2시간 떨어진 깔라마 공항에 도착했다. 호텔에 미리 픽업 서비스를 신청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미니버스 예약을 대행해준 것이었다. 다행히 대행 수수료는 받지 않고 그냥 원래 미니버스 가격인 10,000페소.

깔라마 공항에서 아타카마로 가는 길은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황량하고 신비로웠다. 길 저편에서 공룡이 나타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풍경이다.



숙소에서 다운타운까지 걸어가는 길


그렇게 두 시간을 꼬박 달려 드디어 아타카마에 도착했다. 버스는 우리가 예약한 숙소인 Hostal Quinta Adela 문 앞까지 딱 데려다준다. 음, 서비스 굿!!

우리의 숙소는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사막 속 오아시스 흙집이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B&B였는데, 영어를 전혀 못 하는 종업원은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더러 잠시 기다리란다.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호세 미구엘 아저씨 사장님이 1시간쯤 후에 돌아오니 그때 체크인 수속을 해주겠단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사막의 뜨거운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숙소 마당의 야외 벤치에 앉아 호세 미구엘 아저씨를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기가 무료해서 휴대폰의 음악을 틀었는데, 오오~ 이런~ 김동률의 노래가 나온다!!!




우리 눈 앞에 보였던 숙소 앞마당 풍경


여행을 하다 보면 희한하게 아무것도 아닌 어떤 찰나의 순간이 아주 오래도록 기억될 때가 있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뭔가 특별히 감동적인 어떤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님에도, 신기하게 어떤 찰나가 마치 필름처럼 각인될 때가 있는데, 바로 호세 미구엘 아저씨를 기다리며 숙소 앞마당에서 사막의 뜨거운 햇빛을 온몸으로 받았던 그 시간이 딱 그런 순간이었다.


평소 같으면 기미 생긴다며 질색하면서 그늘로 피신했을 텐데, 어찌된 일인지 그때는 온몸으로 오롯이 햇빛을 받으며 장장 세 시간을 그림처럼 앉아있었다. 숙소 마당엔 김동률과 성시경의 노래들이 울려퍼졌고 그렇게 지구 반대편 한국의 노래와 아타카마 사막의 뜨거운 햇살이 강렬한 첫 만남을 가졌더랬다. 그때의 그 뜨거운 햇살, 눈부시게 파란 하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마당에 나지막히 울려퍼지던 김동률의 노래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문득 먹먹해진다.


그렇게 시간은 멈춘 듯 가는 듯 하염없이 지났고 어느새 우리는 사막의 강렬한 햇살을 이기지 못한 채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버렸다.

과연 '호세 미구엘'이 사람 이름이 맞긴 한 걸까? 우리가 제대로 알아듣긴 한 걸까? 의심이 가기 시작할 무렵, 거짓말처럼 호세 미구엘 아저씨가 등장했다. 다시 급 현실로 돌아와 부랴부랴 체크 인을 하고는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아타카마의 다운 타운으로 나섰다.





다운타운의 흙집 건물들


늦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의 명성에 어울리게 햇살은 더없이 강렬하다. 덕분에 우리는 모두 IS 복면으로 무장하고 다운타운으로.

아타카마에서 할 예정인 '달의 계곡 투어 Valle de la Luna'와 '간헐천 투어 Geysers el Tatio', 그리고 '2박 3일 우유니 투어'까지 모두 일사천리로 예약을 끝내고 나니 갑자기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시원한 커피 한 잔이 강렬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투어를 예약한 Layana Tour 여행사에 물어보니 아타카마 다운타운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단연 Merley Coffee란다.




늘 여행자들로 북적였던 Merley Coffee


여행사에 맛난 커피를 물어본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우리가 '커피' 맛있는 곳을 묻자마자 여행사의 직원은 급 흥분해서 꼭 여길 가라고 추천해주었던 것.

그가 흥분해서 추천해주었던 대로 칠레와 볼리비아를 통틀어 가장 맛있었던 커피는 바로 이곳 아타카마의 다운타운에 있는 Merley Coffee 카페였다. 덕분에 우리는 아타카마에 도착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3일 동안 매일 이곳에 출근 도장을 찍었고, 커피뿐 아니라 식사까지 매일 이곳에서 해결했다.

오가닉 샐러드와 화덕 피자가 주를 이루었던 식사 또한 가격 대비 매우 훌륭했던 기억이다. 첫날 마셨던 아이스 커피에 감동한 우리는 급기야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무릅쓰고 아이스가 아닌 뜨거운 에스프레소에 도전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리 크지 않은 다운타운에서 우리를 매일 행복하게 해주었던 Merley Coffee에서의 커피 한 잔은 그렇게 아타카마를 빛나게 해준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타카마의 골목길


많은 사람들은 아타카마를 그저 거쳐 가는 경유지로만 선택하지만, 우리에게 아타카마는 다시 가도 좋을 것 같은, 찰나와 같은 추억이 참 많은 특별한 곳이 되었다. 음악과 함께 숙소 마당에 그림처럼 앉아있었던 세 시간의 뜨거움도, 다운타운까지 걸어갔던 건조한 사막의 골목길도, 생각할수록 매력적이었던 독특한 숙소도, 태어나 처음 만나는 생경한 풍경을 보여준 두 번의 투어도, 그리고 뜨거운 사막에서 만난 Merley Coffee의 뜨거운 커피도 모두 더없이 그립기만 하다.

이제 김동률의 노래를 들으면 아타카마에 도착했던 그 날, 그 찰나와 같은 뜨거운 시간이 제일 먼저 생각날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친구들과 함께 아타카마의 그 뜨거운 골목길을 한 번만 더 천천히 걷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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