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그곳에 전하는 굿바이 인사. 중국 홍콩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 같은 코스모폴리탄의 도시

by 신서희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대만 Taiwan이라고 대답하겠지만, 나에게 가장 특별한 곳을 묻는다면 그건 아마도 홍콩 Hongkong일 것이다.

내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곳도 홍콩이었고, 나에게 첫 책 출간의 감격을 경험하게 해준 것도 홍콩 덕분이었다.


그렇게 나에게 홍콩은 내 20대와 30대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다.



간판으로 뒤덮인 홍콩의 골목
눈부신 홍콩의 야경
스타페리 터미널의 낭만


내가 처음 홍콩에 간 건 오래 전, 1997년 겨울이었다.

이제 막 학생 티를 벗은 내가 어리버리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 바로 홍콩이었다.

처음 만난 홍콩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어릴 적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 보았던 그 골목을 직접 만나니 마치 영화 속으로 걸어들어온 기분이었다. 홍콩의 야경은 또 어찌나 화려하던지 매일 밤 스타페리 터미널로 나가 눈부신 홍콩의 일루미네이션에 빠져들곤 했다.

그렇게 홍콩에서 지낸 2년 동안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홍콩을 헤집고 다니면서 그곳이 주는 특별한 느낌을 사랑했다.


직장인으로 처음 만난 홍콩은 한마디로 멋졌다.

도시의 시스템은 더없이 선진적이었고 사람들은 세련미가 넘쳤다.

당시 우리나라는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나 대중교통 줄 서기 등의 소소한 시민의식이 채 정착되기 전이었으나 홍콩은 이미 높은 시민의식을 자랑하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다들 예외 없이 한 줄 서기를 지켰고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는 그 누구도 음식을 먹거나 음료를 마시지 않았다. 20대의 내 눈에는 가벼운 재채기에도 "Excuse me" 인사를 잊지 않는 홍콩의 젠틀함이 마냥 멋있어보였다.

도시의 그런 세련됨이 참 좋았다.



설명이 필요없는 홍콩의 일루미네이션
럭셔리함의 끝판왕, 침사추이 1881 헤리티지
코즈웨이 베이. 타임스 스퀘어


난 홍콩의 겨울도 사랑했다.

적절한 습도에 따뜻한 바람으로 생기를 불어넣는 멋진 날씨, 반소매에 미니스커트와 두꺼운 오리털 자켓이 공존할 수 있는 자유로움, 도시 전체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화려한 일루미네이션으로 장식된 쇼핑몰들, 그리고 명품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매력적인 빅세일까지. 홍콩의 겨울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홍콩에는 사람을 들뜨게 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개성 넘치는 빌딩들. 예컨대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홍콩은행 빌딩, 치즈 덩어리를 닮은 자딘하우스, 울퉁불퉁 리포 센터가 존재하는 신세계, 그리고 빌딩 사이로 영화 속을 걸어가는 것만 같은 거리가 펼쳐지면 나는 어느새 ‘중경삼림’ 속 ‘아비 阿飛가 되었다.




눈과 입이 모두 즐거워지는 딤섬
죽의 재발견
쫄깃쫄깃 완탕면


홍콩의 풍요로움은 음식에서 극대화되었다.

속살이 보이는 투명함 속에 여유와 멋이 살아있는 딤섬, 왁자지껄 모여 먹는 핫폿, 샥스핀과 제비집으로 대표되는 우아한 차오저우 요리,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는 수만 가지 종류의 디저트, 그리고 미슐랭이 선정한 세계적인 레스토랑들까지 하루에 세 끼밖에 먹지 못함이 안타까운 곳이었다.


거기에 홍콩의 아름다운 자연도 빼놓을 수 없었다.

미국의 <타임>지가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로 선정한 드래곤스 백을 비롯하여 홍콩 곳곳에 조성된 수많은 트레킹 코스는 홍콩의 매력을 배가시켜 주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깊은 초록빛 숲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홍콩의 트레킹 코스 덕분에 홍콩에서의 생활이 더욱 행복할 수 있었다. 도시의 빌딩 숲이 답답해지면 친구와 함께 주말 트레킹을 훌쩍 다녀올 수 있을 만큼 초록빛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




드래곤스 백 트레킹 코스
익청 빌딩, 홍콩


하지만, 그중에서도 홍콩을 가장 빛나게 해주었던 건 바로 사람들이었다.

홍콩에서 만난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은 홍콩에 혼자 와서 지내는 나를 위해 매일 도시락을 싸다 주었고 내가 홍콩을 떠날 때는 진심으로 슬퍼했다. 홍콩을 떠난 후에도 지금까지 매년 한두 번씩 내가 홍콩을 찾을 때마다 그들은 만사 제쳐두고 휴가까지 내서 나를 만나러 오곤 했다. 코로나19가 심각해졌을 때 제일 먼저 안부를 물어온 것도 그들이었다.

개인의 성향과 선택을 존중해주는 개인주의와 사람을 우선시하고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인본주의가 공존하는 그곳에서 나는 신뢰와 의리를 배울 수 있었다.


홍콩에서 살았던 2년의 시간.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하게 뒤덮여있는 센트럴의 빌딩 숲 사이를 바삐 뛰어다니던 월요일 오후.

퇴근 후, 친구와 카페에 앉아 버블티를 마시며 밤늦도록 수다를 떨다가 스타페리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수요일 밤.

직장 동료들과 우르르 몰려가서 테이블 가득 딤섬을 쌓아놓고 왁자지껄 먹었던 금요일 점심시간.

친구와 함께 퍼시픽 플레이스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홍콩 공원에 앉아 중국은행 빌딩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토요일 저녁.

느지막히 일어나 카오룽 공원의 수영장에 들러 수영을 하고, 나른한 피곤함에 천천히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갔던 일요일 한낮.

이미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오랜 추억이 되어버렸음에도 그곳에 가면 마치 어제 일처럼 그 느낌, 그 바람이 생생하게 다가오곤 했다.



빅토리아 피크에서 내려다 본 홍콩
코즈웨이 베이의 거리
올드 타운 센트럴


그러나 이제 홍콩은 달라졌다.

1998년 중국 반환 이후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한 홍콩은 중국에서 온 사람들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그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도시의 겉모습은 예전 그대로였지만, 그 속살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는 무너졌고 지하철과 버스에서는 객차 안에서 음식을 먹는 중국 사람들과 끊임없이 다툼이 일어나곤 했으며 중국 사람들의 사재기 열풍으로 상점마다 몸살을 앓았다.


급기야 2014년 우산 시위와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가 실패로 끝난 뒤, 중국 정부는 끝내 국가보안법을 발표했고 홍콩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이제 홍콩은 더이상 예전의 그 홍콩이 아닌, 부인할 수 없는 중국 홍콩특별행정구가 된 것이다.



매일 타고 다녔던 트램
매일 보았던 홍콩의 풍경
늘 앉아있던 그곳


물론 눈부시게 화려한 빌딩 숲은 예전 그대로이고 올드타운 센트럴의 멋스러움도 그대로이며 홍콩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카오룽 반도의 뒷골목도 여전하다. 미슐랭 스타에 빛나는 레스토랑도 여전히 건재하고 끝도 없이 이어진 쇼핑몰도 변함없이 성업 중이다. 심지어 지금도 새로운 핫 플레이스가 속속 생겨나고 있으니 관광 도시로서의 홍콩은 앞으로도 한동안 변함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세련되고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던 그 홍콩, B급 골목 감성 속에서도 빛나는 도시의 멋이 있었던 그 홍콩, 아시아와 유럽의 느낌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루었던 그 홍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언젠가 다시 홍콩에 간다고 해도 예전의 그 애틋함과 반가움은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더이상 홍콩이 내가 그리워하는 그 홍콩이 아니니 말이다.


너무 안타깝지만, 이제 내가 사랑했던 그 시절의 홍콩에게는 굿바이 인사를 고할 수밖에.

keyword
이전 10화여기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