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에 대하여
학교에서 중학교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자유학기 수업으로 "맛있는 글쓰기"라는 주제의 수업을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수업 이름 그대로 글쓰기를 배우고 훈련하는 시간이었다. 열네 살 아이들에게는 글을 쓰는 시간이 다소 괴롭고 힘들었겠지만, 나에게는 아이들의 글을 읽고 그 글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열네 살 중학생의 생각과 마음을 배워가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했다.
수업 첫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글의 주제 목록을 정하기 때문에 기수마다 쓰는 글의 주제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모든 기수마다 예외 없이 꼭 쓰는 주제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나의 스무 살”이다. 즉, 스무 살의 어느 날, 무엇을 하고 있으면 내 마음이 행복할까 상상하면서 스무 살 미래 일기를 써보는 수업이었다. 어른에게 6년 뒤는 그리 머지않은 미래이겠지만, 아마도 열네 살 아이들에게 6년 뒤 스무 살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아주 먼 미래일 것이다. 그렇게 먼 미래를 상상해보면서 글을 쓰고 그 글을 다른 친구들 앞에서 읽음으로써 오늘의 꿈을 갖도록 도와주고 지지해주고 싶어서 내준 주제였다. 아이들이 쓴 글을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때론 웃음이 나기도 하고 때론 안타깝기도 하면서 나 역시도 열네 살의 마음을 조금씩 배워갈 수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아이들에게는 스무 살을 꿈꾸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난 과연 나의 미래를, 60세와 70세, 그 이후를 얼마나 준비하고 있나 하는 생각 말이다.
늘 아이들에게 던졌던 질문인 "스무 살 오늘, 뭘 하고 있으면 행복할 거 같아? 그때로 가서 나의 스무 살을 관찰해볼까?" 이 질문은 나에게도 필요한 게 아닐까 싶었다.
궁금함에 먼저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그 질문을 던져보았다.
"60세의 오늘, 뭘 하고 있으면 행복할 거 같아?”
제일 먼저 물었던 대상은 몇 년 전, 유방암 투병을 했던 친구였다. 지금은 완치되어 나보다 건강한데도 재발에 대한 걱정을 아직 떨치지 못한 듯 조심스레 대답했다.
"60세에 살아만 있으면 좋겠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그 옆에 있던 친구는 오히려 "뭘 꼭 하고 싶어야 해? 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데? 그냥 가만히 있어도 하루가 얼마나 빨리 가는데.”라고 되물었다.
반면 어떤 동료는 "60세에도 교사이면 좋겠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담담하나 단호한 태도가 멋졌다.
어떤 이는 "지금 생각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기도 하지만, 막상 그때가 되어서 아무것도 안 하면 너무 무기력해질 거 같아요. 뭐라도 소일거리를 할 수 있든지, 아니면 작은 카페를 하나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했다.
돈 많이 벌어서 맨날 여행 다니고 골프 치러 다니고 문화센터에서 배우고 싶은 거 배우면서 살고 싶다는, 백배 공감되는 대답을 내놓은 친구도 있었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지금부터 준비를 하긴 해야겠네요. 막상 60세가 되어서 그때부터 뭘 할까 고민하면 늦을 테니까요”라고 말한 동료도 있었다.
사실 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인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몇몇 사람들의 대답에는 조금 놀라기도 했다. 솔직히 이 질문을 하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대답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대답이 나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업무가 과다하고 일상이 피곤하여 지금 당장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생각할 순 있어도 먼 미래를 상상하면서까지‘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서 5단계는 자아실현의 욕구이니 모든 인간에게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었다.
나처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사람이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 틀린 건 없으며 단지 다를 뿐이었다. 다른 사람도 다 나와 같을 거라고 여기는 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게 얼마나 위험하고 좁은 사고인지 반성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으며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는 걸 그렇게 또 한 번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어쨌거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문제인 나는 건강만 허락한다면 60세에도, 적어도 70세까지는 많든 적든 밥벌이의 기쁨을 경험하고 싶다. 정년까지 학교에 남아있어도 괜찮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작은 심리상담센터나 학습코칭센터를 운영해도 좋을 것 같다. 그때도 지금처럼 책을 쓰고 있으면 더없이 좋겠고, 친구들과 여행도 자주 다니면서 블로그나 브런치 같은 SNS를 통해 온라인에서의 소통도 이어가고 싶다.
얼마 전 응시했던 청소년상담사 1급 자격증 시험도 이런 노후를 위한 작은 준비 중 하나였다. 물론 누군가의 말처럼 돈이 아주 많아서 늘 여행 다니고 문화센터에서 배우고 싶은 거 배우고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일단 난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며 또 설령 그렇다 해도 밥벌이는 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어영부영하다가 얼떨결에 60세를 맞이하고 싶진 않으니 지금부터 야무지게 미래를 준비해나가고 싶다.
그리하여 60세의 어느 날에도 70세와 80세의 어느 날 뭘 하고 있으면 행복할까를 꿈꾸면서 건강하고 에너지 200% 충전된 날들을 살고 싶다. 건강은 내 소관이 아니니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되 언젠가 아프게 되면 씩씩하게 잘 극복해보는 수밖에. 부디 큰 병은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의 시기를 놓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열네 살 중학생들에게 늘 얘기하듯 오늘의 시간을 촘촘히 아껴서 살고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기대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60세에도, 70세에도 오늘과 같은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