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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May 09. 2022

여행이 주는 해방감에 대하여

여행의 마법


샌드위치 데이 하루 휴가를 내서 친구와 2박 3일 부산여행을 다녀왔다.

호텔 체크 인 수속을 마치고 난 뒤, 일단 바다부터 보자 싶어 해운대로 나갔다. 바다를 보며 커피 한 잔 하려고 카페를 찾다가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득 "커피 말고 맥주 한 잔 할까?" 마음이 훅 올라왔다.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 좌석에 앉아 시원한 맥주가 혀끝에 닿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격과 행복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눈앞에 보이는 바다와 순백색 모래사장, 딱 기분좋을 만큼 불어오는 봄바람, 눈부신 햇살, 그리고 좋은 친구와 마시는 한가로운 맥주 한 잔까지.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너무 좋아서 가슴이 뛰었다.  

그건 분명 해방감이었다. 그것도 심장이 터질듯이 벅찬 해방감.

지금껏 수도 없이 여행을 다녔지만, 이토록 격한 해방감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지난 일상의 분주함과 긴장이 그만큼 높았던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맥주를 마시며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나이들어 퇴직를 하고 나면 원 없이 여행을 다닐 수 있겠지만, 그때의 여행은 아마도 지금만큼 감격스럽고 행복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물론 그때도 나에겐 여행이 가장 큰 취미이자 힐링이고 휴식이겠으나, 또 마음만 먹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지만, 해방감이나 감격은 지금보다 한결 덜할 듯하다. 그땐 아마도 일상의 긴장과 분주함이랄 게 없을 테니까. 여행이 끝나도 계속 여행처럼 릴랙스한,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한 시간들이 이어질 테니까. 

여행이란 돌아갈 일상이 있을 때 비로소 감격스러울 수 있으며, 그 일상의 긴장도가 높을수록 여행이 주는 해방감도 덩달아 커지기 마련이다. 여행이 시작되었을 때의 벅찬 해방감, 그리고 여행이 끝나갈 때의 아쉬움, 곧 다시 시작될 밥벌이의 일상에 대한 부담감으로 심장이 쫄리는 것 같은 기분은 마치 수학 공식처럼 모든 여행마다 반복되곤 했다.

그러고 보면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새로운 업무가 주는 압박감과 여행 뒤에 기다리고 있는 업무에 대한 부담감 덕분에 부산 바닷가에서의 한가로운 낮맥 타임이 이토록 감격스럽게 행복할 수 있었으니 분주한 일상에 오히려 감사해야 하려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과 여행의 마법은 단지 분주한 일상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컴퓨터도 주기적으로 포맷을 하고 휴대폰도 가끔씩 리셋을 해주어야 속도가 느려지지 않고 수명도 길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뇌도 정기적으로 리셋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뇌구조 리셋의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 바로 여행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해운대를 보며 낮맥의 해방감을 만끽하는 동안 나의 뇌구조는 완벽하게 리셋되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일상을 완벽하게 잊을 수 있었다.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업무도, 직장생활이 주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도,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소소한 근심들도, 나를 신경쓰게 만드는 복잡한 인간관계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대신 맥주를 다 마시고 나면 어디로 갈까, 오늘 저녁엔 뭘 먹을까, 내일은 어딜 갈까, 이런 생각들이 뇌구조를 새롭게 지배했다.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 전혀 새로운 생각과 완벽히 다른 일상이 펼쳐지면서 나의 뇌는 300% 리셋된 것이다.  

이런 뇌구조 리셋은 오로지 여행만이 지닌 놀라운 마법이니 나의 마음 건강을 위해서라도 정기적으로 여행을 떠날 수밖에.


덕분에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월요일 아침, 여행에서 가슴 먹먹하게 누린 해방감과 깨끗하게 리셋된 뇌구조로 배터리 풀충전하여 다시 씩씩하게 일상에 도전장을 내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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