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서희 Oct 20. 2023

아니면 어때, 일단 해보면 되지


“동화작가는 어떨까?”


왜 갑자기 동화작가라는 직업이 궁금해졌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는 여러 직업 중 동화작가가 좀 쉬워 보였던 걸까, 아니면 동화책에 대한 환상 같은 게 문득 생겼던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느 날 문득 동화작가에 관한 관심이 생겼고, 그 관심과 호기심 하나로 덜컥 강좌를 등록해버렸다. 무려 4개월간의 아동문학 작가학교 수업이었다. 주 1회 저녁 시간을 내야 했고 매주 한 편의 동화를 써서 합평에 참여해야 했다. 막연한 호기심으로 듣기엔 꽤 벅찬 커리큘럼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조건 덤볐던 동화작가 수업은 다행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즐거웠고 처음 참여해보는 합평 시간도 유익했다. 매주 한편의 동화를 쓰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허접하게나마 숙제를 해내긴 했다. 

그렇게 4개월의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고, 수업을 같이 들은 사람들의 작품을 모아 한 편의 문집까지 손에 넣었다.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 비해 내가 쓴 동화는 부끄러운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결과물이 생겼다는 건 꽤 근사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뿌듯한 기분과는 별개로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동화작가는 내 길이 아니며 이렇게 호기심만으로 함부로 덤빌 만큼 쉬운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비록 적지 않은 수강료를 내고 나서야 이 길이 내 길이 아님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배워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의 사교육은 아무것도 모르는 7살 꼬맹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무려 7살부터 미술학원에 다녔단다. 그 이후에도 피아노, 서예, 주산(지금 세대는 주산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겠지만), 컴퓨터, 수영 등 그 당시 유행하던 사교육은 종류별로 죄다 섭렵했다. 지금이야 영어 유치원이다 뭐다 해서 온 세상에 사교육 열풍이 제대로 불고 있지만, 당시엔 사교육이 보편화되지도 않았었는데 부모님의 교육열이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다. 

물론 그토록 다양한 사교육을 받았음에도 그 중 뭐 하나 뛰어나게 잘하는 것 없이 다 대충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수준에 그친 게 안타깝긴 하다. 하긴 성실하게 다닌 학원이 거의 없으니 뛰어나게 잘하는 게 없는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의 세뇌(?)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타고난 성향 탓인지 어른이 된 이후에도 나의 사교육 사랑은 계속되었다. 대학교 때는 중국어에 빠져서 4년 내내 중국어 학원을 들락거렸고, 홍콩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영국 문화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영어와 광동어 수업을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배우는 분야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이것저것 배우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노후에 할 수 있는 분야를 좀 더 실질적으로 고민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책 집필을 위해 사진을 배우고,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스토리텔링이나 글쓰기 수업을 듣는 등, 다행히 현실성을 조금 가미하게 되었다. 


문제는 지금도 배우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일단 어렸을 때 배우다가 말았던 피아노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어릴 땐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게 너무 싫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학원을 빼먹기 일쑤였는데, 지금 와서는 그때 좀 더 열심히 배울 걸 뒤늦게 후회가 된다. 어디 그뿐일까. 사진도 좀 더 깊이 배우고 싶고, 스토리텔링 심화 과정도 듣고 싶고, 드럼도 배워보고 싶고, 인문학 강좌도 꾸준히 듣고 싶고, 인지치료, 사진치료 등 상담심리 관련 공부도 더 하고 싶고, 요즘 한창 유행인 코딩 교육도 받고 싶고... 그야말로 해보고 싶고 배워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걱정이다. 

사실 뭔가를 배운다고 해서 내 인생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행복 지수가 갑자기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이쯤 되면 사교육 중독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뭔가를 배우고 있지 않으면 괜히 허전하고 심심하다가 강좌 등록을 하는 순간 갑자기 에너지가 솟아나는 게 나 스스로도 신기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직업을 바꿀 만큼 거창한 분야가 아닌 다음에는 혼자서 공부해도 될 텐데 왜 난 늘 뭐든 돈 주고 배워야 안심이 되는지 의문이긴 하다. 운동도 수강료를 내야 겨우 하고, 공부도 굳이 돈을 내고 해야 의욕이 생기니 말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

이런 고민을 토로하는 친구에게 늘 말해주는 조언이 있다. 


“고민하지 말고 일단 뭐든 배워봐. 그럼 길이 생길 거야.”


오랫동안 사교육 중독자(?)로 살아오면서 돈도 시간도 참 많이 썼지만, 그래도 후회되진 않는다. 

일단 배워봤기 때문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고, 내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며, 이 길이 내 길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머릿속으로 아무리 고민하고 시나리오를 백번 그려봐도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확신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가장 빠르고 명쾌한 방법은 기꺼이 돈과 시간을 써서 일단 배워보는 것일 테다. 

설령 지금 당장은 괜히 배웠다 싶은 것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이 다 쌓여서 나중에 어떻게 쓰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배움이란 없다고 믿는다. 

물론 굳이 돈을 써서 배우지 않고 스스로 공부함의 기쁨을 터득하면 더 좋겠지만, 나 같은 의지박약자에게는 출석과 숙제의 압박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테니까. 

그러므로 만약 딱히 좋아하는 게 없어서 고민이라면 좁쌀만큼의 관심만이라도 찾아서 일단 배워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이 길이든 저 길이든 길이 보일 것이다.

이전 03화 서른 한 살, 다시 기차를 갈아탔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