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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람이 Jun 08. 2021

이것은 빵인가, 쿠키인가?

스콘 만들기


"하나만, 안 되겠지? 참아야 하느니라~"


당뇨 초기, 빵집을 지나올 때마다 나하고의 싸움은 치열했습니다. 스스로 '빵순이'라 할 정도로 빵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이었는데, 그 빵이 당뇨의 블랙리스트였습니다.


서글프다 정말. 먹고 싶을 때 먹는 것도 낙인데... 무슨 대단한 사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남편도 너무나 안쓰러워했습니다. 내가 툴툴거리며,


“어휴! 진짜! 하나만 먹고 운동할게요. ~”


 고르고 골라서 들고 온 빵을, 세상 다 얻은 듯이 먹어치웠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남편도 마음이 저리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먹고 난 후의 혈당은 금방 후회를 몰고 왔습니다. 혈당 스파이크가 심했습니다. 대책을 세워야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집에서 빵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빵집에서 파는 것보다는 덜 단 걸로, 설탕 덩어리에 글루텐 덩어리 빵이 아닌, 당뇨환자에게 특화된 적당한 걸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빵이라고는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씽크대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 오븐을 안 쓰는 그릇장으로 생각했던 우리는, 어떤 종류의 빵을 만들지 의논했습니다. 제일 먼저 식빵과 카스텔라를 시도했습니다. 주말마다 시도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했습니다. 너무 심심한 건강빵은 몇 번 만들어 보다가 흐지부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프리랜서(프로그래머)로 일하던 남편은 끈질겼습니다. 전형적인 공대생 스타일의 남편은 언제든지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에 중점을 두고 계속 도전해보았습니다.


‘빵과 과자를 하나로! 그러면 스콘이 답이다!’

 

그때부터 스콘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빵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가? 효모는 무슨 역할을 하는 거지? 일반 빵이랑 뭐가 달라? 오븐은 또 어떻게 쓰는 건데? 시도할 때마다 새로운 재료를 넣은 다른 스콘이 되었습니다. 구글형님을 동원하고, 유튜브를 뒤지고...

 처음은 충실히 레시피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니맛도 내맛도 없는 이상한 맛이 났습니다. 딱 거친 남자의 손맛 그대로. 문제는 설탕 조절이었습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적당한 단맛의 비율을 찾았습니다. 제가 감동하며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했습니다. 겉바속촉은 위에 발라준 계란물과 오븐이 알아서 해결해주었는데,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단호박가루나 아몬드가루를 주문했습니다. 처음에는 밀가루와 아몬드가루를 반반으로 하고, 계란은 잘못하면 비린내를 유발하니 과감히 빼는 걸로 결정! 적당한 힘으로 압박하면서 반죽을 만들고, 열 받은 반죽을 냉장고에 넣고 식혀주면서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드디어 자신감 있게 배합한 베이커리 냄새가 풍겼습니다. 남편은 조금 긴장하며 어서 먹어보라고 내밀었습니다. 우리는 동시에 한 입 베어 먹었습니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나와 딸, 아들 동시에, '엄지 척'을  했습니다.


“합격이라구! 에고 좋다. 딱 합격이라는 거지?”


바삭바삭하면서 고소한 맛을 커피나 두유와 함께 먹었습니다. 하다가 그만두겠지 했는데 끝까지 가족들이 좋아하는 맛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스콘을 먹을 때마다 저절로 한 마디씩 했습니다.

"시중 스콘의 단맛이 없어졌는데 어떻게 이렇게 맛있지? 신기한데 이거? "

 그러자 남편은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했습니다. 얼굴이 환해지면서 손가락 하트를 쏘았습니다. 기분이 좋다면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사업실패에 쓰라렸던 가족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하다며 앞으로는 스콘을 일주일에 한 번씩 할 거라고 선언했습니다. 남편의 어깨에 힘이 살짝 들어가는 순간,


“아빠, 뭐 좀 씹히는 맛이 있는 걸 넣어주면 더 좋겠는데~”라고 딸이 한마디 보탰습니다.


나는 '견과류!'를 외쳤고, 딸은 '초콜릿!'을 외쳤습니다.

다시 구글링링링~남편은 건강한 식재료를 검색했습니다. 래서 찾은 것이 바로, 카카오닙스 였습니다. 카카오닙스는 초콜릿을 만드는 원료인 카카오콩의 껍질을 제거하고 건조한 것입니다. 초콜릿의 알싸한 맛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식이섬유, 항산화 성분이 다량 있어, 딸내미 변비에도 도움이 되고, 심혈관질환 예방에도 도움이 되니, 그야말로 딱이었습니다. 이전의 레시피에 카카오닙스를 드문드문 적당량 보일 정도로 섞어서 반죽을 하고, 오븐에서 20분이 흐르자 버터와 아몬드의 고소한 냄새와 초콜릿의 향이 퍼졌습니다. 모두 같이 맛본 '건강한 카카오닙스 스콘'의 최종 평가는,


“심봤다!”였습니다.


'질리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단맛, 겉바속촉 완성, 아몬드 가루로 고소한 맛은 배가되고, 카카오닙스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만세!~~~~'

이리하여, 우리 가족 간식이 탄생했습니다. 되돌아보면 스콘과 함께 한 시간들은 다복했습니다. 남편은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카카오닙스 스콘'을 굽고 있습니다. 학교 기숙사에 있다가 온 딸이 집에 오는 주말에 맞춰 스콘을 굽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냄새가 온 집에 퍼졌다며,

“오~스콘” 하며 집에 돌아오는 기분을 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스콘 비슷한 냄새가 나면 아빠가 생각난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딸은 친구들에게 선물로 건네고, 기숙사 룸메와 나눠 먹고, 그 룸메의 어머님이 레시피를 알려 달래서 널리 전파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빵집을 지나오면서도 전처럼,  빵 타령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해준 스콘이 집에 있으니까!” 스콘을 생각하면 빵에 대한 허기진 구석이 채워졌습니다. 냉동실에 두었다가 에어프라이어에 바삭하게 데워서 안주로도 먹었습니다. 샤워하고 마시는 와인이나 맥주의 안주가 되기도 했습니다.

 

음식은 위안과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상처가 되는 순간일 때,

‘일단 먹고 보자. 맛있는 것을’이  주는 힘은 든든했습니다.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과 긍정적 기운을 불어넣기도 했습니다. 혼자 있기 싫을 때면, 지인들과 함께 시끄러운 식탁과 위트를 즐기고 나면 넉넉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밥 한 번 먹자'의 다정한 말을 자주 건네게 됩니다.

 재료를 준비하면서부터 함께 할 사람들을 공유하는 일상은 넉넉합니다. 그래서 딸, 아들이 힘들어 보일 때면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보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아빠를 기억하게 해 준 스콘이라는 간식은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딸은 친구들 선물을 사고 나서 ‘홈 메이드 푸드’인 스콘을 따로 포장을 했습니다.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만든 것이라 지인들이 더 특별하게 여긴다 했습니다. 선후배들이나 친구들이 좋아한다며 선물할 때마다 스콘을 꼭 추가했습니다.

스콘은 우리 가족에게 충분히 달콤한 간식이었습니다. 당뇨병 아내를 위한 큰 위로의 맛, 공부하는 아들의 먹거리, 간식 좋아하는 딸에게 시간을 절약해서 먹는 ‘우리 아빠의 맛’이었습니다. 저희 집의 특색 있는 ‘카카오 닙스 스콘’ 맛을 보고, 비법이 뭐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남편은 꼭 엄지 검지 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사랑 한 꼬집, 솔솔 뿌려줍니다. 하하하~”라고  말해줍니다.

그러면 저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남편의 넉살을 좀 봐주십사~~'의 표정을 짓습니다. 이 퇴로도 없는 낯간지러움을 남편의 유우머는 잘도 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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