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이사 올 당시, 이 아파트는 드넓은 광야에 덩그러니 서 있는 듯했다. 황무지 같았던 기획 도시의 바람결. 연거푸 공사 투성이었던 곳곳의 건설 소음. 끙끙 속앓이를 아무에게도 내색하고 싶지 않았던 피폐한 마음. 피곤하게 일이 끝나서 눈을 감고 있는데도 잠들 수 없었던 불면증. 이물스러운 절망의 그림자. 입술을 깨물며 삼킨 외침들이 치받아 욱하는 목청의 헛기침들. 귀에서 삑삑 대는 이명과 어지럼증. 극심하게 건강이 나빠져 앓게 된 당뇨병. 그런 것들이 떠올랐다. 결핍된 것이 너무 힘겹게 여겨져 걷잡을 수 없는 감정몰이에 매몰되었다. 남편의 거듭된 사업 실패로 사업장은 빨간딱지 투성이었다. 집은 넘어가고 빚만 가지고 이 집에 이사를 왔다. 눈 떠서 밤늦은 시간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매달렸다. 이 아파트를 학원으로 썼다.이 집은 온전한 내 집이 아니었다. 숭고한 사업장이었다.
11년이 지난 2022년, 새 아파트로 입주를 하게 되었다.
며칠 전에 새 아파트 점검을 갔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올림픽 메달 딴 선수마냥 흥몰이를 하며 다녔다. 식탁 서랍을 열어보면서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입이 벙긋해졌다. 거실 창가에는 아들이 군대 월급을 모아 선물해준 안마의자를 놓기로 했다. 안마의자에 앉아 있는 남편을 상상하니 그 공간에 온기가 느껴졌다. 구석구석 새 공간을 대할 때마다 그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한 모습들을 떠올렸다. 주책이 심해서 남편하고 연속 하이 파이브를 하며 돌아다녔다. 하이 파이브가 끝나면 닮은꼴 웃음소리도 주고 받았다.
새해 들어와 이사 준비로 바빴다. 이사 업체들의 견적을 받고 계약을 했다. 입주할 청소도 했다. 정수기 해지, 모든 금융 주소 변경, 폐가구, 폐가전 정리, 당근마켓에 책 내놓기. 그리고 짠순이 근성으로 아끼고 아꼈던 물건들을 미련 없이 버렸다. 버리려고 작정을 해서인지 한도 끝도없이 버릴 것들이 나왔다.(핑계로 브런치 글쓰기가 차일피일 밀렸다)
구석구석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니 파헤쳐지는 과거 시간들의 유물들이 나왔다. 그동안 얼마나 바빴는지, 잊어 먹었던 물건들이 구석구석에 파묻혀 있었다. 학원으로 개조하면서 창고에 박아 두었던 많은 상자 속에는 추억의 물건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대부분 버릴 것들이 되어버렸지만, 끝내 버리지 못한 것들은 우리 냠냠이들 흔적들이었다. 그런 숨어 있던 물건들이 과거의 어느 시간으로 나를 훅 데려갔다. 지독하게 많은 사진 앨범들을 며칠 동안 새 앨범에 정리했다. 그런 물건들을 보물 박스로 만들어 차곡차곡 먼지를 닦아 매만지며 과거 속으로 타임머신을 탔다. 묵은 먼지들을 털어내는 일은 짜릿했다. 하루 안에 과거와 현재를 들랑날랑했다.
(5년 전, 창 밖으로 보이는 정원의 모습)
학원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쓸쓸하게 흔들리며 허둥지둥 일을 하고 있었다. 학원을 차린 후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기출 문제지를 밤새워 프린팅하고 익혀야했다.학년마다 기출 문제를 풀어보고 핵심요약을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꼴깍 밤을 세웠다.
다음날, 프린팅한 기출문제집 테스트를 시작했다. 학생들 스스로가 약한 부분을 파악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학생들이 시험지 풀이를 하는 동안 나는 여유가 생겼다. 늘상 칠판 앞에서 학생들과 눈을 맞추었는데 시험감독을 하는 동안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시간에 쫓겨서 학생들신경쓰느라 미처 알 지 못한 존재를 만난 것은 그때였다.
문득,고개를 창밖으로 향하니 2층 높이의 나무들이 있었다. 빼꼼히 나를 엿보는 듯싶었다. 초록 나무들과의 눈 맞춤.진땀 솟던 나를 식혀주는 기분이었다. 밤새워서 피곤하고 흐물거리던 나를 풋풋하게 세워 주는 초록이었다. 너무 열중했던 들뜬 열기를 진정시켜 주었다.
창문을 열었다.
가파른 마음에 초록의 싱그러움은시원했다.답답한 마음이 확 풀어졌다. 나는 알지 못했지만 나무들은 늘 거기 있었다. 평평한 땅에 세세한 돌봄이 없이도, 나무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거기 있었다. 스스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영양분을 만들어가며 비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마음이 씻겨지는 기분을 느꼈다. <마지막 잎새> 주인공의 마음이 어땠을지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창밖 정원은 메마르고 팍팍한 일상을 초록 향기로 감싸 주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큰 숨을 내쉬며 일상에서의 탈출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후로 뭔가의 힘든 일로 갈팡질팡 하면 아파트 나무들과 눈 맞춤을 했다. 내다보면서 커피를 마시며 평상심을 북돋았다. 아파트 정원의 첫 모습은 나하고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성근 가지들, 엉성하고 작은 나무들. 서로가 서먹서먹하고 어울림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낯설고 어수룩했다. 어딘지 불편하고, 아직 성글어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모양새. 쭈글쭈글해진 일상의 피로감. 말썽 피우는 아이들로 인해 목이 아픈 하루 속에 피곤해서 털썩털썩 의자에 주저 앉던 일상. 부족한 능력 때문인지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럴 때 정원의 나무들은 초록 기운을 뿜어 올려 힐링을 주었다. 지친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사를 간다. 그동안 함께 했던 나의 정원과의 시간들이 더듬거려졌다.
10년이 넘게 내가 지녀왔던 모든 감성이 아파트 정원에 깃들어 갔다. 그렇게 시간의 주름이 차곡차곡 정원의 초록에 드리워졌다. 외롭지만 의연하게 고투를 하던 나의 수업을 묵묵히 지켜보아 주던 정원의나무들을 되돌아보았다.
늘 같아 보이는 정원이었지만, 사실 다른 모습이었다. 봄에는 연두빛 싹을 틔워 윤슬의 햇볕 옷을 입고 초록의 윤기를 돋았다. 물빛 하늘을 배경으로 무심이 떠가는 구름 조각을 걸쳐 놓은 나무는 그늘과 쉼을 보여 주었다. 가을이 되면 매력적인 단풍이 들었다. 겨울이 되면 하얗게 입김을 불어넣은 듯한 새하얀 세상으로 변신했다. 달빛 부서지는 정원의 하얀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들숨 날숨도 새하얘졌다.
나무의 그림자는 햇볕을 제대로 받았다는 흔적이었다.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나무들은 그림자마저 없었다. 생각해보니 나의 생활의 그림자 역시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남편과 냠냠이들의 넘치는 사랑을 감당하면서 생기는 인생의 굴곡이었다. 나무들과 상대적으로 나는 가진 것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햇볕 드는 곳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신발이 없다고 탓하고 있을 때, 발이 없는 존재를 만난 격이었다. 그렇게 나의 정원은 나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확 걷어내주었다.
지키고 싶은 가치관에 맞게 시간의 균형을 잡으려던 즈음에 아파트 정원은 아름답게 자리를 잡아갔다. 낯 붉히는 뜨거운 햇살에서 푸르름으로 돋아나는 쫑긋한 잎들은 새날이 오고 있다는 은밀한 흐름 이었다. 쓸쓸하게 바람에 흔들리다가도 의연하게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무성해졌다. 가을 되면 빨갛게, 노랗게 채색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의 섭리를 따르는 유순함을 색깔로 보여주었다.
한 번씩 흔들리고 있을 때면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응시했다. 나보다 더 바람을 맞으며 견디고 있는 녹색의 기상을 꿰뚫어 보았다. 움직일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뿌리에 순응하며 자신을 견디고 있는 나무들. 유연한 가지를 뻗으며 만남을 향유하기도 하고, 한여름에는 그늘을 나누는 법을 보여주는 나무였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도 '순간을 사는 일'은 무언과와 교감하는 일이었다. 햇볕과의 공감을 멈추지 않는 나무처럼 나를 아는 사람들과 공감하는 일에 더욱더 애틋해졌다.
초록 잎사귀 다 떨궈낸 빈 가지 위에 바람이 스치다가도 어느 순간, 새하얀 눈을 소보록 얹으며 하얗게 빛을 내었다. 그 하얀 눈들이 밤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며 눈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리고 눈이 얼어붙을 만큼 추운 날을 견디면, 그 나무 주위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아파트 정원은 빙판을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을 품었다.
눈을 한 뭉치 뭉텅거려 던지기도 하고, 낮은 언덕 빙판길에서 눈썰매도 탔다. 한참이나 내다보았다. 흰 눈 위에 빨간 플라스틱 눈썰매 미끄럼 보드를 몇 번이고 타고 내려오면서 아이들은 웃음소리를 내곤 했다. 그런 것들을 내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꽉 차 올랐다. 웃는 아이들을 품고 있는 정원은 그렇게 환했다. 초록의 싱그러움을 어느새 흰 눈으로 바꾸고 아이들의 웃음꽃을 피우게 하는나의 정원은 한없이 순했다.
바싹 거리는 나뭇잎들을 조용히 떨궈 내고 헛헛한 빈 가지들만 남은 겨울나무들. 더 높이 뻗고 싶은 나무는 그만큼 더 뿌리 깊게 내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뿌리 끝 영양분을 끌어 모으며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봄을 위해 스스로 비우고 차오르기를 당차게 견뎌 냈다. 그렇게 언젠가는 봄이 되었다. 그것이 큰 위로였다. 일하다가 문득문득 외로움에 마음이 비틀어지다가도 울끈불끈 한낮의 태양을 견뎌내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일을 계획할 때면 나무들을 타임랩스 시키며 바라보기도 했다. 카메라 촬영 속도를 고속으로 재현하여 나무의 변화를 다이내믹하게 재현하는 상상을 했다.
아파트를 학원으로 개조해서 아이들과 행복을 교감하던 그 모든 순간에 정원이 함께 했다. 일이 힘들면 힘들수록 나무들의 성장을 눈여겨보던 시간들은 깊어졌다. 깊어가는 주름만큼 포개어진 시간들의 나이테. 공간도 시간도 온전히 제 몸으로 살려 내는 나무들. 꾸역꾸역 밀려오는 하루를 위태롭게 버티다, 허겁지겁 발버둥 치던 미숙함에서 유연하게 벗어나게 해 주었다.
실패의 확장을 통해 나는 점점 단단해졌다. 늘 새롭게 부딪히고 깨지면서 나도 모르게 내 한계를 밀어 올리기도 했다. 틈새의 가능성에서 꾸준한 시도는 어느덧 내 스타일로 차별화를 만들어 내었다. 그래서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 모든 기쁨에 기여한 가족의 사랑과 나의 정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을 품은 정원
새로 이사를 가는 내 삶의 설렌 계획들을 정원을 바라보며 독백했다.
좀 더 원대하게 10층(새 아파트)에서의 삶을 계획해 본다. 나의 정원을 내 마음에 품고 떠날 것이다. 그 정원을 마음속에 키워 볼 것이다. 내 마음속에 초록의 균형을 삶의 곳곳에 나누면서 살아보려 한다. 물론 실내 정원에 화분으로 초록을 가꿔 볼 것도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