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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같이 사는 사람은 재테크가 싫다고 한다.

다름의 차이

by 짜리짜리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경제 공부가 나만큼이나 안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와는 가치관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10년 동안 몰랐다. 전세 난민, 벼락 거지가 되기까지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지하 방에서 서울 살이를 시작했고 형제자매가 많았던 우리는 집을 구할 때마다 집주인의 눈치를 봐야 했다. 학교 다닐 때 조사했던 주거 유형을 묻는 질문, 그것도 친구들 앞에서 손을 들어야 했던 상황도 나에겐 큰 상처였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에게 잔인한 언어적 폭력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인데 말이다.


옮겨 다녀야 하는 불편함과 햇빛이 들지 않는 공간 등 나는 아늑한 집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그런데 처음 신혼집을 구할 때 나 자신도 이 부분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내가 집에 대한 열망이 엄청 크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마도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을 대출받아 사서 그랬던 것 같다. 은행이 안방을 차지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전세 난민이 되고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집값이 싸움의 불씨가 되어 남편과 이야기해보니 나와는 생각이 참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자가 즉 ‘소유’가 중요한 사람이고, 남편은 전세 집도 이사를 다녀도 상관없다는 사람이었다. 자가와 어느 정도의 돈을 나는 꿈 꾸지만 남편은 재테크에 관심 없고 전세라도 좋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을 못 먹는 것도 아니고 못 입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못 다니는 것도 아니고… 삶에 큰 불편함이나 불만이 없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자가에서 평범하게 자란 남편으로서는 저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 한편의 생각은 ‘집주인의 갑질을 겪어보지 못해서, 집 없는 서러움을 겪어보지 않아’ 저렇다는 생각도 들었다.


돈과 집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좁힐 수 있을까?


가치관이 같고 바라보는 목표가 갔다면 그 목적지에 우리는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르다. 나와 다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다. 각자를 인정해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머리로는 이해된다. 함께 사는 공간의 문제이니 몇 번의 의견 충돌을 통해 “집, 사면 되잖아”로 대화는 끝났다. 자산을 불리거나 재테크보다 빚을 낼 수 있는 만큼 내거나 우리 자산 수준에 맞는 집을 사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수준에 맞는 집을 사자는 것이니.


아이들의 학교 전학 문제, 육아 돌봄 문제, 직장과의 거리, 빚을 언제까지 갚아야 하는지 등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해결되지 않고 계속 도돌이표 대화로 서로 감정을 헤친다. 최근 집값까지 고점에 있으니 더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전세에 있고 차리리 재테크 목적의 집을 사자고 해도 무반응이다. 확신이 있으면 네가 알아서 하라는 것으로 대화는 끝이다.


결국 모든 귀결은 다시 나에게로 왔다.


요즘 그래서 고민이다. 2019년 초까지만 해도 집을 사는 것에 확신이 있었다. 어느 정도 빚의 부담을 지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확신도 없고 40대 중반 넘어 빚을 ‘영끌’ 수준으로 해 돌봄과 학교, 직장 거리가 해결되는 현 위치에 집을 살 용기도 없다.


지금의 부동산 가격은 60살까지 벌어 갚기도 힘든 금액들이다. 지인은 말한다. ‘빚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빚은 갚는 것이 아니라고. 빚에 빚을 통해 자산 가치를 불리는 거라고’ 말이다. 웃었다. 확실히 판단과 결단력이 빠른 20~30대 들이다. 우물쭈물의 나 자신을 보며 지난 4년이 느껴진다. 지금도 우물쭈물이다. 모든 상황이 갖춰져 행동으로 옮기기에 늦다는 것을 앎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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