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빈곤, 박탈감에 요즘 근로의욕 상실, 식욕 상실이다. 올 초 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지내왔다. 떠나간 집,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살자고 다짐했다. 코로나가 덮쳤다. 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내 주머니에만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로 집도 보기 힘든 시기, 여러 규제에 조정을 받을 거라는 나의 생각은 헛 다리를 짚은 거였고, 폭락했던 주가는 수십 간에 올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너도나도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부동산과 주가는 끝없이 오르고 있다. 월급만 제자리이다. 평생을 모아도 사기 힘들 만큼 오르는 집값과 늘어났다는 부자들의 숫자까지 어떤 소식이 진짜일까 싶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일하고 있는 팀에 집 없는 사람은 솔로인 30대 여성 한 명과 40대 중반 직장 맘인 나, 이렇게 두 사람뿐이다. 직장 동료들도 이야기한다. ‘ooo까지 집을 사면 완전 끝물이라고’. 아이들이 커가고 평수를 넓혀 갈아타기 하다가 시간에 쫓겨 아무것도 모르고 전세를 선택 한지 3년. 팔았던 집이 두배로 오르면서 전세 난민이 된 나를 보고 다들 언제까지 버틸까 싶은 것이다. 돈이 없어서, 상투 잡을 까 봐, 전세기간이 아직 1년 남아서, 남편이 폭락론자라… 이러 저런 핑계를 대고 있다.
딸 둘을 둔 30대 후반 후배 직장동료는 최근까지 나와 같은 무주택자였다. 나보다 젊지만 자녀를 키우고 있고 집 없는 처지가 나와 같아 나름 위로가 되었다.
물론 그는 나보다 10살 가까이 더 젊고 앞으로 기회가 많지만 말이다. 그는 올 초 집주인이 현재 전세 살고 있는 집을 시세보다 5천만 원 싸게 급매로 준다는 집도 사지 않고 관망이었다. 내가 2년 가까이 집 타령을 해도 귀를 꽉 막고 뚝심 있는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김포가 '금포'가 되고, 무섭게 오르는 집값은 그에게 집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연초에 급매 타령을 하던 집주인은 자신들이 들어와 살겠다며 3월 재계약이 아니라 나가 달라고 그에게 통보한 것이다. 결국 고양시까지 집을 알아보다가 부모와 은행의 도움으로 그는 12월 집을 샀다. 집값이 떨어지면 위험하다는 경기도, 모두가 꼭지라고 생각되는 시점에 그는 집을 샀지만 그가 집을 산 뒤에도 몇 천이 올랐다는 말에 나는 또 의욕 상실이다.
우리 사무실에는 30대 솔로임에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집을 산 사람들이 많다. 대기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월급을 많이 주는 회사가 절대 아님에도 말이다. 올 초에 레버리지를 통해 집을 산 이후 1억 넘게 올랐다고 한 후배 직장 동료. 당장 들어가 살 집이 아니지만 어쨌든 월급을 모아 뛰는 집값을 못 따라가니 너도 나도 여건만 되면 집을 사서 재테크를 시작한 것이다.
직장에서 상사이지만 경제적 자립이나 자산이 많은 후배 동료들을 보면 씁쓸한 나의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럼에도 쓰린 마음을 뒤로하고 후배 동료와 밥을 먹으면 밥값을 계산하라고 당당히 말한다. 나이로 보나 직장 연배로 보면 밥 값은 내가 내야 한다. 하지만 받는 월급만 조금 많다 뿐이지 자산으로 보나 부양가족 수로 보나 후배 동료들이 갑인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들의 재테크나 일에는 나름 또렷한 밑그림이 보여 ‘이렇게 하면 되겠네’가 보이는데, 왜 나의 문제는 흐릿하게 느껴지는지 잘 모르겠고 결정도 못하겠다. 다른 일에는 칼 같이 결정하고 실행하면서 말이다.
문득 21년 내년의 운세가 궁금해진다. 불확실한 앞날이다.'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와 연관되어 있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현실에 내가 충실하다면 미래 또한 충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