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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짜리짜리 May 28. 2021

“비워주세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평수 갈아타기를 잘못해 전세 난민이 되고 그렇게 옮겨간 집에서 역시나 주인이 들어온다며 집을 비워달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전세금보다 현재 전세 시세가 더 비싸기도 하고 매매를 위해 다양한 편법도 가능하니 언제나 피해를 보는 것은 세입자이다. 그럼에도 혹시나 했지만 역시 예외는 없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어찌나 빨리 돌아오는지.


그렇게 허겁지겁 집을 알아보고 있는 찰나에 시세보다 2억이 저렴한 급매가 나왔다. 신축이었고 잔금을 치르지 못해 이자가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건이 빠른 입주와 매매 금액의 3/2을 일주일 이내 달라는 조건이었다. 지인 찬스와 신용 대출 등 없는 돈까지 모아 마련했고, 바로 계약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계약 하루 앞둔 금요일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현금으로 당장 집값 전액을 한 번에 주고 해당 매물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그 사람과 바로 오늘 계약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허탈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애쓴 시간과 손해를 보고 처분한 주식들… 그리고 결국 또 돈 있는 사람에게 밀려 그렇게 내 집 갖는 계획이 허망하게 끝났다.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탈을 쓴, 어설픈 법에 떠밀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지금 상황에 그저 눈물만 난다. 아이 돌봄과 학교 때문에 선택의 폭까지 좁다.


 금리인상에 고점이라는 두려움을 뒤로하고 그래도 옮겨 다니는 서러움 없이 집이 주는 안정감을 누리고자 매매를 선택했지만 매물 또한 귀하고 가격은 최고점에 나와 있는 것뿐이다. 거기에 대출까지 막혀 있고, 대출이 된다고 해도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빌릴 수도 없는 상황, 악순환의 고리이다.


무엇보다 집값이 고평가 되어 있고 떨어질 거라고 믿는 남편은 급매를 놓치고 나니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다시 전세를 가자는 것이다. 금리 인상 이야기가 나오고 자신은 지금 집값이 고평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4년 전 집을 넓혀가겠다고 집을 팔고 시간에 쫓겨 집을 구하지 못하자 당시에도 집값이 많이 올라 있다며 우선 전세를 갔다가 상황을 보자고 했고, 2년 전에도 계속 오르는 집을 보며 너무 오른 집값에 고평가라는 이야기의 도돌이표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오른 집값이 비이성적이며 언젠가 적정 가격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왜 그때 나라도 밀어붙이지 못했을까 후회가 되어 지금이라도 매매를 하자고 결심했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잘한 판단인지는 모르겠다.


집값에 대한 둘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은 ‘조정이 언제가 있을 거다’는 것뿐 나는 그 속에서 지속적인 우상향을 이야기하고 남편은 많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현재 집값은 솔직히 매매하기엔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다. 4년 동안 두배 넘게 오른 집값. 반면 주머니 사정은 뻔하고, 결국 빚을 그것도 영끌 수준으로 집을 사야 하니 50살을 앞둔 남편이 망설여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서울의 아파트 값은 단 한 번도 내가 살만한 적정 수준의 가격 때가 온 적이 없으니 지금이라도 무리해서 사야 한다는 나의 말이 퇴색될 정도로 오른 현실을 보면 결국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다. 영끌을 통해 지금보다 더 작은 평수의 집을 사거나 아이들을 전학시켜 더 외곽으로 옮기는 것, 아니면 계속 전세 살며 2년마다 집값에 대한 가치와 빚을 얼마를 낼 수 있느냐 하는 논쟁을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에서 집이 불행한 가정의 씨앗이 되지 않는 날은 언제일까. 오기는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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