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구나.”의 마법

아이의 말을 들어주기

by 잘키JALKI

우리 학교 보건실에는 만병통치약이 있다.

“선생님, 여기가 아파요.”할 때 보건실에 가서 바르고 오는 크림이다.

물론 보건 선생님은 아이가 다치거나 정말 아플 때 그에 맞게 치료를 잘해주신다.

하지만 살짝 부딪치거나 해서, 딱히 치료가 필요하지 않을 때 아이에게 “그랬어? 어디가 아팠어?”하며 발라주시는 천연성분 크림이 있다.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아무 치료 효과가 없는 그 크림 하나로 금방 다 나았다며 신나게 다시 뛰어다닌다.


몸의 상처는 눈으로 보이기에 치료하기도 쉽고,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위약효과가 있는 ‘만병통치약’을 바르면 된다. 그런데 아이의 마음에도 위안을 주는 만병통치약이 있을까?


아이들과의 생활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어른들의 "그랬구나."라는 말 한마디에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이 종종 있다. 그 말이 지닌 어떤 마법 같은 힘이 있는 것인지, 아이들은 억울한 일이 있다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다가도 내가 눈을 반짝이며 듣고 "그랬구나." 하면 "네."라고 대답하고는 곧 화가 풀리기도 한다. 결국 마음의 상처는 진심으로 공감해 주고 들어주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대답해 주면 아이 스스로 조금씩 치유해 나가는 것 같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종종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얼굴이 긁혀 온 아들에게 "왜 얼굴이 긁혔어?"하고 물었을 때 "아, ㅇㅇ이가 꼬집고 손톱으로 긁었어."라고 말할 때, 내 아이가 당한 피해에 마음이 속상하고 내가 나서서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떠올려본다. 나는 내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지, 내 아이가 진짜 바라는 것은 무엇일지.


나는 내 아이의 삶을 모두 책임져줄 수 없고,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내 아이여야 한다. 나는 내 아이가 부정적인 부분에 연연해서 화내고 싸우기보다 상황을 이해하며 담대하고 너그럽게 크기를 바란다. 내 아이도 내게 얼굴이 긁혔다고 말했을 때, 내가 나서서 상대 아이를 혼내는 것보다 다친 부분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고 마음을 위로해 주기를 바라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속상한 마음을 꾹 누르고 진심을 담아 아이를 쓰다듬고 안아준다. "그랬구나. 많이 아프진 않았어? 약은 발랐어? 엄마가 밴드 붙여줘야겠다." 그러면 아이에게 그 상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다음에는 친구에게 꼬집고 긁지 말라고 네가 말해야 해. 긁혔을 때 기분이 나쁘고 아팠다고 말해줘. 니 기분을 잘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어. 혹시 또 긁으려고 하면 얼른 얼굴을 돌려 피하고."라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방법까지 일러주면 엄마로서도 한결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그 또한 내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면 이 경험을 통해 아이가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상적인 생각을 한다.


교실 안에서도 아이들이 싸우는 일이 종종 있다. 어떤 아이들은 교사가 법관이 되기를 바라고, 누군가에게는 벌을 주기를 원할 때도 있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알려주고 사회의 규칙을 알려주는 것은 교육에서도 중요한 일이기에 때로는 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일에서 누구 하나가 온전히 잘못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에 내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 늘 고민스럽다. 그 아이들은 이해 충돌이라는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해결 방법을 생각하고 해결하며 성장할 수 있기에 그런 일들을 되도록 스스로 지혜롭게 해결하기를 바라고 마음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이야기를 자세히 듣는 것은 어른의 몫이라는 생각이다. 아이들은 그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파악하지 못했던 사실도 알게 되고 조금이나마 상황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 또 상대가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둘 다 억울했던 일이 서로에게 미안해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교사인 내가, 엄마인 내가 판단을 내려주고 혼내기 이전에 아이들이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판단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은 문제 상황에 봉착했을 때 서로 이야기를 나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될 거라 믿는다. (물론 시일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니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아이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른의 역할을 잘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충분히 듣고 "그랬구나." 하며 공감해 주는 것이 아닐까? 아이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해주고 난 후, 아이가 자기중심적으로 말하고 있다면 "그 친구가 왜 그랬을까? 그 친구는 기분이 어땠을까?"하고 상대의 입장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질문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아이는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고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아이는 믿는 만큼 자라니까.)


종종 아이의 문제에 내가 나서고 싶어질 때마다 생각해 본다. 내가 이 아이의 문제를 몇 살까지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지금 내가 나선다면 아이는 커갈수록 문제를 회피하고 '엄마가 해결해 주도록 하는' 쉬운 방법을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내 아이가 때리는 쪽이라면, 훈육을 위한 방법으로 바바라 J. 패터슨, 파멜라 브래들리가 쓴 <무지개 다리 너머> 책에서 소개한 아래의 방법을 써보면 좋겠다.


*만약 손으로 누군가를 때린 경우라면, 아이의 손을 실크 천으로 감싼 다음 손이 따뜻해질 때까지 아이를 우리 곁에 앉아 있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에게 "네 손이 따뜻해지고 튼튼해지면, 이 손은 더 이상 누구를 때리지 않을 거야."라고 말해 준다. 발로 찬 경우에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한다. 친구를 물어뜯은 아이에게는 커다란 사과 한쪽이나 당근 한쪽을 주면서, 그것을 다 먹을 때까지 선생님 곁에 앉아 있게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 입으로는 당근을 먹는 거지, 친구를 물어뜯는 게 아니란다."라고 말해준다 누군가를 할퀸 아이에게는 치료용 바구니를 가져와서 아이의 손톱을 깨끗하게 잘라 주면서, "고양이들이나 할퀴는 거지 아이들은 그러지 않는단다."라고 말해준다.*

물론 만 나이로 9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에게 쓸 수 있는 방법이겠지만 이렇게 따뜻함으로 훈육받은 아이들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고 서로를 배려하리라고 믿는다. 학교에서 남은 억울함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집에 와서도 토로한다면, 그건 아직 그 감정이 다 소화되지 않은 상태이거나 엄마에게 다시 한번 위로받고 싶은 상태일 테니 마법의 말을 써보면 좋겠다. "그랬구나. 우리 아가 힘들었겠다. 엄마는 항상 너를 응원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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