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위험할까?

자연을 탐험하는 독일과 뉴질랜드 아이들

by 잘키JALKI

우리 아이들은 놀이터에 가면 가장 먼저 정글짐에 올라간다.

학자들은 아이들은 걷고 나면 오르기를 하는 것이 당연한 과정이라고 한다.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집에 있는 계단 난간을 잡고 오르고, 나무를 보면 올라가고 싶어 하고, 남편의 운동기구에도 오르고, 심지어 책장도 밟고 오르고, 오를 수 있는 것은 다 오르는 모습을 늘 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만 나이로 3살, 1살일 때 집 근처 놀이터에 자주 나갔다.

첫째는 신나게 정글짐을 오르고 둘째는 누나를 따라 올라가기 위해 첫 번째 단에서 끙끙대다 두 번째 단으로 손을 뻗곤 했다. 그러다 둘째도 두 번째 단으로 오를 수 있게 되었고, 나는 아이를 축하해 주었다.

그 놀이터는 마을 회관 옆에 있었는데, 둘째가 두 번째 단에 올라서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보는 어른들마다 아이 곁으로 다가와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가, 떨어질라.", "아이고, 위험해."라고 말씀하셨다. 또 어떤 어른들은 나에게 "애기 내려줘. 다치겠네."라고 걱정해주기도 하셨다. 그때마다 아이는 내 얼굴을 쳐다봤고, 나는 괜찮다는 미소를 지었다. 어른들이 돌아가신 후에 "다칠까 봐 걱정해 주시는 거야. 그런데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너희가 안전하게 잘 올라가고 있잖아. 내려오기 힘들 때 말해."하고 아이들은 안심시켜 주었다. 몇 번을 그렇게 하고 나니 정글짐에 오르는 우리 아이들을 보는 어른들이 내려오라는 말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우리를 쳐다보는 표정은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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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혼자 정글짐에 오르던 때부터, 그 모습을 보고 열심히 따라 오르려고 노력하던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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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정글짐 꼭대기까지 올라 다양한 시도를 하는 아이들

가끔 아이가 나무 위에 올라갈 때가 있는데 그때도 당연히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내 눈에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알지만, 때로는 내가 너무 위험에 예민하지 못한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보았던 뉴질랜드의 아이들과 독일의 아이들, 캄보디아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뉴질랜드에 있는 Blockhouse Bay Intermediate School과 국제교류를 하고 있었다. 나는 국제교류의 담당교사로서 봄이면 우리 학교에 오는 뉴질랜드 학생들과 교사들을 맞이하고, 여름방학이면 20명 이하의 아이들을 인솔해서 뉴질랜드에 갔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뉴질랜드는 어떤 곳일까? 뉴질랜드에 다녀온 나는 처음에 가졌던 뉴질랜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너무나 자연친화적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내가 가지고 있던 뉴질랜드에 대한 이미지를 깨뜨렸다. 특히나 아이들의 생활 모습이 그러했다. BBI는 뉴질랜드 중심도시인 오클랜드에 있는 학교이다. 굳이 한국에 비유하자면 서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방문했던 학교들은 대부분 주택가 인근에 있어서 그런지 도시의 느낌이 없고 편안하다. (BBI와 교류를 했지만 초등학교를 포함해서 5곳 정도의 학교를 방문했다.) 게다가 등굣길마다, 아니 출근길마다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첫 충격은 맨발로 등교하는 아이를 보았을 때였다. Intermediate School에 다니는 학생이니 우리나라 고학년이나 중학생인데, 그 여자아이는 신발끈을 이용해 신발을 가방에 묶어 놓고는 맨발로 땅을 밟으며 학교에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신발이 젖었나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맨발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몇 번 더 본 후에야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유는 물어보지 못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런 모습을 어른들이 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다음으로 놀란 것은(사실 놀랐다기보다 부러웠던 부분이다.) Primary School 아이들이 학교 부지 내의 담과 맞닿은 커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 노는 모습이었다. 아침 8시 20분이나 30분쯤이었나,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내 홈스테이 맘인 Michelle의 학교인 Arahoe primary school에 출근하던 길이었는데 학교 나무에 열 명 남짓의 아이들이 붙어서 신나게 놀고 있는 거다. 거의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너무나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우리나라였다면 어른들이 한 마디 하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부러워하던 내 기분도 여전히 생생하다. 그 외에도 학교에 있는 잔디 언덕에서 아침에 잔디 미끄럼을 타던 아이들, 운동장을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들.. 사실 작년에 1학년이던 우리 반 아이 두 명이 학교 잔디밭 가운데 심어진 나무 중 한 그루에 오르는 것을 보고 뉴질랜드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며 지나갔는데, 쉬는 시간이 끝나고 들어온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가서 어떤 선생님께 혼났다는 이야기를 해서 아차 싶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아이들에게 생명의 귀중함을 교육시켜야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지만 나무에 오르는 것 자체가 나무에 해를 가하는 일인가 싶은 마음에 속상할 때도 있다. 나도 어릴 적 할머니댁에서 뒷마당 감나무의 감을 따려고 담벼락 타고 지붕 타고 올라가서 나무에까지 올라본 적이 있다. 아래에서 커다란 장대를 들고 할아버지가 지키고 계셨고, 나는 든든한 지원군인 할아버지가 계시기에 마음 놓고 다람쥐처럼 나무에 올랐다. 너무 위험해 보였다면 시키지 않으셨을 텐데 담벼락과 지붕과 거의 하나가 된 커다란 감나무는 그저 집의 일부 같았고, 내 운동신경으로 가능하리라 생각하시기에 시키셨을 것이다. 내가 했던 경험 때문에 나는 괜찮다고 느끼는 것일까? 편해문선생님의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에 공감하는 나로서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뉴질랜드의 아이들이 참 부러웠다. 그리고 오클랜드 시내에서 조차 족히 200년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뉴질랜드의 자연환경도 사실 많이 부러웠다. 결혼도 하기 전의 내가 나중에 아이를 이런 곳에서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 자연환경과 그것을 고스란히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그저 바라봐주는 그곳의 어른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거실에서 지리산의 풍경이 보이고 주위에 논과 밭이 있는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독일 학교의 숲 체험학습


독일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였다. 전라북도교육청의 혁신 더하기 학교 국제교류 담당교사로서 2015년에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Winterhude Schule에 가게 되었다. 교류교사인 얀의 학급이 숲 체험학습을 가던 날, 나는 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섞인 얀의 학급은 가장 어린아이가 6세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숲 체험학습을 갔다. 함께 표를 사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숲에 갔다. 숲에 도착해서도 아이들에게 교사들은 방향만 제시할 뿐, 아이들은 너무나도 자유롭게 숲 자체를 즐겼다. 나도 아들을 키우지만 남자아이들은 왜 그렇게 긴 나뭇가지나 막대를 주워드는지, 왜 그렇게 전쟁놀이와 싸움 놀이를 하는지.. 언덕 위에서 아이들이 긴 나뭇가지를 찾아 나무와 나무 사이에 집을 만들고, 어떤 아이들은 그걸 흔들고 다니면서 칼싸움을 하듯 노는데 교사들은 칼싸움 놀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숲을 만끽하고 언덕에서 미끄럼을 타고 집을 짓고 생물들을 만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자유로웠다. 아이들에게서도 생기가 느껴졌다. 줄을 서서 가기는 했지만 자유로웠다. 그 숲체험학습이 내 뇌리에 깊게 남아 있는 것 또한 그것 때문이다. 아이들이 거기서 무얼 배워야 한다는 압박이 없이 그저 숲을 온몸의 감각을 열고 체험하면서 각자의 배움을 키워간 것. 후속활동이 있겠지만 그 숲 안에서 아이들은 자유로웠다. 교사들이 정해준 활동의 반경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아이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어린아이가 정글짐에 오르면 위험할까? 기다란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하는 전쟁놀이가 정말 위험할까? 나무 위에 오르는 것이 정말 위험할까? 어떤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 위험해 보이는 놀이들이 아이의 집중력을 키우고 감각을 키워 준다. 아이가 신체적으로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경험하지 않고 아이들이 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경험하지 않고 아는 것을 진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유명한 교육학자 피아제의 구체적 조작기를 배우지 않는 교육자는 우리나라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유아교육, 초등교육, 그리고 중등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 교육학을 공부한다면 누구나 외운다. 전조작기-구체적 조작기-형식적 조작기를 모르는 교육자는 없다. 부모님들도 대부분 피아제의 구체적 조작기는 한 번쯤 들어봤을 일이다. 구체적 조작기의 아이들은 경험을 통해 배운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유튜브나 학습용 태블릿을 가지고 배우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진짜 배움이 아닐 수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어린아이의 감각 경험은 매우 중요하며 신체 발달이 곧 사고와 정신 발달로 이어진다.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도 진짜 '안전'이 무엇인지를 늘 고민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온실 속에서 "이 밖은 위험한 거야. 하지 마."라고 말하면서 밖에 나갈 때마다 늘 소독약을 뿌리고 아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은 채로 나갔다 들어오게 해야 하는지, 온실 문을 열어두고 자유롭게 밖에 나가 경험을 하고 오도록 하면서 곁에서 지켜봐 주어야 하는지. 그중 무엇이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인지.


내가 바라보는 아이들은 위험을 통해 자란다. 경험을 통해 배운다. 편해문 선생님 강연을 들을 때 농담처럼 "골절은 골밀도를 높여 줍니다."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나에게는 그 말이 다치는 것이 두려워서 어른이 아이의 감각 경험을 방해하지 말라는 말로 들렸다. 내 아이는 결국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성인이 될 것이다. 조금씩 천천히 아이가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해 나가도록 어른들은 아이들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줘야 하지 않을까? 곁에서 지켜주고 정말 위험할 때 발 벗고 나서서 아이가 든든함을 느끼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 아이를 성장시키는 어른의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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