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이 학생은 부모님이 공부를 많이 시키나? 나 이런 아이들 많이 봤는데, 잘못하면 후천적으로 자폐가 생길 수도 있어요. 내가 부모님이랑 통화를 좀 해야겠네.”
교수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도 조금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는 학생이었지만, 자폐라는 단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아는 것이 많은 아이였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듣는 것을 잘하지 못했다. 수업이 시작되면 계속해서 본인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아는 것이 나오면 다른 사람의 말을 끊고 자신이 아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계속했다. 수업에 어려움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의 주의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교사의 말로 주의를 돌리려고 해도 계속해서 본인의 이야기를 했다. 다른 친구들도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멈춰 주라고 하면 "그러면 왜 선생님은 말하는데요?" 또는 "애들은 말해도 되고 나는 안 되나요?"등의 이야기를 날카로운 말투로 해서 교실에 잠시 정적이 흐르곤 했다. "계속 얘기하니까 너무 시끄러워.", "나도 좀 얘기하자."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으면 벌떡 일어나 그 친구의 자리로 가서 때리거나 따지기도 했다.
자신이 친구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늘 친구들에게서 무엇을 지적할지를 찾고 있었고, 자신이 판단하기에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시간을 가리지 않고 그 친구에게 찾아가 따지고 들었다.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친구들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렇게 화를 내면 친구가 기분 나빠 할 수 있으니까 부드럽게 말해줄래? 한 번만 말해도 알아들을 것 같아."라고 하면 그게 아니라고 했다. 그 아이가 잘못했으니 그 아이 잘못이고 끝까지 할 거라고 했다. 친구가 자신이 말할 때 듣지 않는 것 같으면 때리기도 했다. 때로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그 감정이 남아서 갑자기 친구를 때리기도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맞는 아이들은 점점 아이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승부욕이 강했다. 보드게임을 하면서 친구가 이기려는 순간이 되면 카드를 모두 던져버리고 바닥에 흩뿌려 놓았다. 블록 쌓기를 할 때는 블록을 던져버리기도 하고 친구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에 실내화를 던지거나 일부러 발로 차기도 했다.
협동놀이를 할 때는 일부러 끝까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다. 자신도 그 전체의 일부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전체의 하나인 것이 싫어 오직 하나인 것처럼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8명의 아이들이 한 팀이 되어 가운데에 공을 놓고 각자가 줄을 하나씩 잡아 공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결승점에 옮기는 협동놀이는 아이의 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조금 가다가 일부러 줄을 세게 잡아당겨 균형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마지막에는 강사님이 가운데 공을 손으로 잡고서라도 끝까지 가도록 하셨다.
아이는 그림을 그리거나 쓰는 활동을 할 때면 지워서 다시 선을 긋는 일을 반복했다. "그 정도면 잘했으니 지우지 말고 해 볼까?"라고 말하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친구가 자신이 하는 활동을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필사적으로 가리고 앞을 지나가거나 자기 쪽으로 고개라도 돌리는 친구가 있으며 "내 거 보지 마!"라고 날카롭게 말하거나 그 친구를 따라가서 때리기도 했다. 그림검사와 문장완성검사를 할 때에는 선생님 한 분과 함께 친구들이 없는 다른 교실로 옮겨가서야 겨우 검사를 끝낼 수 있었다. 모두가 자신의 검사지에 집중하느라 아이의 검사지를 보지 않았지만, 아이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보지 말라고 화를 냈기 때문이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어리니 크면서 점차 학교생활에 적응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의 부모님께 차마 '후천적 자폐'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검사를 담당하신 교수님께 상담을 맡기기로 하고 나는 한 발 물러섰다. 나는 심리 검사와 상담의 전문가가 아니라, 교사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집에서 매일 공부를 한다고 했다. 1학년 교과서는 일곱 살 때 이미 다 집에서 끝냈다고 했다. 역사책 읽기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패드나 휴대폰으로 하는 게임을 좋아한다고 했다.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많았고, 집에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아이는 모범생에 가까웠다.
부모님이 원하는 아이의 모습은 아마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모범적인 아이였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 자신도 그것을 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정 욕구가 너무 강한 탓인지 아이는 조금이라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자신이 가장 잘했다는 말을 듣지 못하면 참지 못했다. 완벽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가위질이 아직 서툰 건 당연한 일인데도 가위질이 잘 안 되자 화를 냈다. “완벽하게 만들어가지 않아도 부모님은 네가 만들어온 것을 좋아하실 거야.”라고 말하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니라고 했다.
나는 심리학자가 아니고 정신과 의사도 아니다.
내가 진단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자폐이든 강박이든 완벽주의든 뭐든 나는 진단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가 ‘조건 없는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느껴졌다.
무엇을 잘해야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고.
누구를 이겨야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고.
남과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할 필요는 없다고.
나 말고 다른 친구가 칭찬받았다고 해서 내가 못한 것은 아니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칭찬과 인정의 말을 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인정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는 조건 없이 사랑받아 마땅하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아이에게는 그런 사랑이 필요해 보였다.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릴지도 모른다.
아이가 변화하기까지는..
그래도 부모님은 아셨으면 좋겠다.
어쩌면 알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아이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아이는 멋지게 성장할 훌륭한 싹이고
그리고 그저 대가도 조건도 없는 사랑이 채워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는 위대하다.
누구의 방식이 완전히 옳고, 누구의 방식이 완전히 틀리지도 않았으며 모두가 처음으로 부모가 된 사람들이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다. 아이는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이고 나에게 너무나 좋았던 방법이 아이에게는 독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너무나 싫었던 것이 아이에게는 성장의 밑거름일 수 있다. 모든 부모를 존중한다. 하지만 부모도 부모가 되는 공부를 해야 하고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가야 한다.
아이가 우리에게 주는 사명은 그런 것이니까.
너무 이른 공부가 과연 꼭 필요한 것인지,
아이가 나에게 잘 보이려고 인정받으려고 애써야만 하는 것인지,
어른인 우리 모두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