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슨 술일까 궁금해서 이 글을 클릭한 분에겐 죄송하지만, 오늘도 위스키를 다룬다. 하지만 지난번에 언급한 블렌디드 위스키나 버번위스키와는 다른 종류를 다루니 크게 실망하지 않으시길. 싱글몰트 위스키는 한 가지의 곡물로, 한 군데의 증류소에서 만들어지는 위스키로 다른 종류보다 좀 비싼 축에 속한다. 증류할 때 나오는 양이 적어서 상대적으로 더 비싸다나 뭐라나. 위스키 하면 떠오르는 '성공한 으른'이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장면의 그 위스키는 싱글몰트 위스키일 가능성이 80% 일 것이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이 싱글몰트 위스키를 영화 <소공녀>의 미소가 참 좋아한다. 미소는 서촌 코블러에 가서 싱글몰트 위스키의 한 종류인 글렌피딕 12년 산 또는 15년 산을 마신다. 한 잔에 만 원이 넘는 위스키를 마실 정도로 미소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가사도우미 일로 일당을 벌고, 밥값과 약값을 빼고 남은 금액으로는 2,500원짜리 에쎄 담배를 사서 피우고, 12,000원짜리 글렌피딕 위스키를 사 마시곤 한다. 하지만 새해가 되면서 담뱃값이 올라가면서 가계에 적자가 나고... 가계부를 보며 곤란해하던 미소는 결심한다. 방을 빼서 집값을 쓰지 않고, 위스키와 담배를 지키자고. 미소는 방을 빼고 무작정 대학교 때 밴드를 같이 했던 친구들을 찾아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 영화 <소공녀>
미소가 사랑하는 것들은 염치가 없다
미소가 집을 포기하고, 위스키와 담배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말하면 그것들을 사랑해서였다.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어떻게든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미소는 그것들을 지키고 싶어 했다. 미소가 대학생 때부터 이미 위스키와 담배를 즐겼다고 말하는 걸 보니, 지독히도 오랫동안 사랑에 빠져있었나 보다.
그런데 문제는 미소가 사랑하는 것들은 염치가 없다. 비싼 가격의 위스키와 가격이 인상된 담배 때문에 미소는 집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됐으니까. 미소를 며칠 동안 집에서 묵게 해 준 정미는 일련의 사건으로 미소에게 화를 내면서 이런 말을 한다.
정미 : "너 아직도 위스키 마셔? 담배는 아직 피더라? 나였으면 독하게 끊겠다."
미소 : "알잖아. 나 술, 담배 사랑하는 거"
정미 : (실소를 터트리며) "아이고, 그 사랑 참 염치없다, 야."
ⓒ 영화 <소공녀>
정미는 술, 담배 때문에 집을 포기한 미소를 한심하게 여기며, 그런 너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도 염치가 없다고 지적한다. 틀린 말일까? 아니,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생존을 위한 기본 요소인 의식주 중에 주(住)를 포기하고, 기호식품인 술과 담배를 선택한 것은 누가 봐도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심지어 그렇게 담배와 술을 사랑해준다고 한들, 그것들이 미소에게 잠깐의 기쁨 말고 다른 뭔가를 주는가?
미소에게 위스키는 취향이 아니라 집이다
미소는 사람답게 살기 위한 돈을 벌러 저 멀리 떠난다는 남자 친구에게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한솔이 너 그게 내 유일한 안식처야." 미소에게는 차가운 방은 집이 아니고, 그것들이 집 그 자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본인이 안락함을 느끼는 이 집을 지키기 위해 차가운 방을 포기할 수 있던 것이고, 그게 미소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미소에게는 위스키가 취향의 수준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한 집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미소에게 추운 날씨로부터 날 보호할 수 있는 안식처는 담배, 위스키 그리고 남자 친구 한솔이었다.
ⓒ 영화 <소공녀>
집이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누군가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가치라고 해석했을 때 미소의 친구들의 상황도 한 번 분석해보자.
- 문영이는 번듯한 회사에 다니는 것에 안정감을 느낀다. (비록 쉬는 시간에 포도당을 맞아가며 일하지만)
- 현정이는 결혼을 선택했다. (비록 남편은 시험에서 계속 떨어지고, 현정이 독박 집안일을 하게 됐지만)
- 대용이는 무리해서라도 내 집 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매달 20년 동안 원금과 이자 100만 원씩 내야 하지만)
- 록이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선택했다. (비록 어이없는 결혼 거래 제안으로 후배를 잃지만)
- 미정은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선택했다. (비록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남편에게 모든 걸 맞춰줘야 하지만)
이들은 미소가 담배와 위스키를 선택한 것처럼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선택했고, 미소가 집을 포기했던 것처럼 다들 뭔가 하나씩 포기했다. 그러니까 각자 다른 집을 사랑했고, 그 집으로 인해 어떤 걸 포기해야만 하는 염치없는 사랑을 하고 있던 거다.
다정함은 우리를 살아가게 만든다
정미와의 트러블로 미소는 정미네 집에서 나오면서 또다시 갈 데가 없어진다. 공인중개사와 집을 보러 다녀도 알맞은 곳을 찾지 못하고, 또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자신이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오피스텔로 향한다. 평소 그 시간엔 없는 집주인 민지가 집에 있었고, 그녀가 일을 하다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상대 남자들에게 돈을 받아내서 그 돈으로 자립하겠다며 씩씩한 척하는 민지에게 미소는 "밥은 먹었어요?"라고 묻는다. 이 말을 들은 민지는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냐며 엉엉 운다.
ⓒ 영화 <소공녀>
미소는 다정한 사람이다. 상대방에게 지금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 잘 알고, 진심으로 그 마음을 전할 줄도 안다. 민지뿐만 아니라 미소는 그동안 친구들에게도 위로를 전하곤 했다.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친구에게 옛날과 변함없는 모습으로 미소의 존재 자체가 위로가 되기도 하고, 미소가 차려준 따뜻한 밥과 반찬이 위로가 되기도 했다.
누군가는 자기가 더 힘든 상황인데, 어떻게 누굴 도와줄 생각을 하느냐며 오지랖도 넓다고 혀를 찰 수 있다. 하지만 그냥 미소에게 고마워하는 게 어떨까. 미소는 자신의 재능이자 힘인 다정함으로 여러 주변 사람들을 위로했고, 그들의 현실에 지쳐 차갑고, 딱딱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오랜만에 느껴본 다정함 덕분에 그들은 어쩌면 살아갈 힘을 얻지 않았을까.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하듯이 다정함은 우리도 살아가게 만든다.
글렌피딕 한 잔이요.
미소가 참 심지가 굳은 사람인 게 친구한테 그런 독설을 들어도,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믿었던 남자 친구가 현실과 타협하는 걸 보면서도 위스키를 사 마신다. 아래 장면은 미소가 남자 친구를 떠나보내고 바에 와서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이다. 그런데 하필 위스키 가격이 2천 원 올랐고, 착잡한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던 미소는 위스키를 결국 마시기로 한다. 이번 위스키를 마지막으로 마시고, 이제 위스키도 포기하려나 했는데, 영화 후반부에 미소가 약을 포기하면서까지 (머리가 하얘지는 병을 앓고 있어서 한약을 지어먹곤 했다) 위스키를 선택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소는 아무래도 계속 위스키를 마실 생각인가 보다.
ⓒ 영화 <소공녀>
그런데 미소는 왜 많고 많은 위스키 중 글렌피딕 위스키를 사랑했을까? 더 저렴한 가격대의 위스키도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렌피딕은 달고, 부드러운 맛과 향을 가진 위스키로 알려져서 입문용으로도 많이 추천되기도 한다. 소독약 냄새가 나는 위스키도 있고, 과일향이 나는 위스키도 있고, 거친 맛이 나는 위스키도 있지만 미소는 그중에서 달고 부드러운 위스키를 좋아하는 거다. 힘든 일을 하고 고됨을 털어내기 위해 소주를 칵! 털어먹는 것보다는 미소는 푹신한 소파에서 디저트를 먹는 느낌을 원했던 것 아닐까 싶다. 위스키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미소는 안락한 집에 있는 거니까.
글을 쓰면서 내게 중요한 가치라는 의미의 집은 뭘까 생각해봤다. 지금으로서 첫 번째 집은 돈이다. 회사를 안 좋아하면서도 계속 다니고 있는 건 매달 나오는 월급 때문이다. 수입이 끊길 때의 불안감이 퇴사 욕구를 뛰어넘었음을 인정한다. 두 번째 집은 창작이다. 내 생각을 담아 뭔가를 만들고, 남들에게 보여주는 과정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내 옷을 입은 듯한 기분이 좋아서 계속하게 된다. 첫 번째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두 번째 집에서 푸는 듯하다. 나는 이렇게 두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삶의 밸런스를 맞추며 생존하고 있다.
미소가 마신 게 12년 산인지, 15년 산인지는 모르겠다.
미소가 마시던 글렌피딕이 궁금해서 근처 바에 가서 글렌피딕 15년 산을 사 먹어봤다. 꿀맛과 초콜릿 맛이 나더라. 그런데 맛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마셨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영화를 보면서 나는 줄곧 정미처럼 미소를 평가하는 관점을 갖고 있었다. '아니, 왜? 아니, 왜 그래... 미소야... 정신 차려!!'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봐서 글렌피딕의 맛에 집중하지를 못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계속 미소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만 자리 잡아서 이번 글 망했다 하면서 털레털레 집에 걸어갔다.
그러다가 근데 미소에게 위스키가 그냥 취향인가? 집을 포기할 정도면 취향 정도로 말할 수 없는 거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고, 그렇게 글의 방향을 잡았다. 각자의 집은, 중요한 가치는 다르다. 이 쉬운 걸 왜 나는 항상 까먹고, 상대를 평가하려는 건지. 글 쓰다가 반성하게 됐다. 또 의미 있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보상으로 이번 주에 또 글렌피딕을 마시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