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건강한 식단을 챙기며 나를 먹여 살리고 있다. 독립을 시작함과 동시에 나를 먹이는 데 아주 진심으로 매끼를 챙기고 있는데, 내가 마주한 인생의 큰 고비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건 바로 퇴사. 회사 사정으로 인한 퇴사였고 어렴풋이 정리될 수도 있겠다는 예상은 솔직히 조금 했다. 하지만 예상했어도 비참한 마음과 수시로 터지는 눈물은 막을 수 없더라. 일을 하나씩 정리하고 함께 일했던 분들께 인사를 드릴 때마다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했음을 깨닫고 그래서 더 무너지곤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심적으로 무너지고 있음을 인지하고 완전히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밥을 열심히 챙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울더라도 밥은 잘 먹고 울자'의 마음으로 밥을 준비하곤 했는데, 단순히 밥을 매끼 챙겨 먹는다는 것보다도 물에 재료를 씻고, 자르고, 불에 요리하고, 좋아하는 그릇에 예쁘게 담고, 사진을 찍는 일련의 행위가 생각보다 더 의미 있었다.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슬픔에 쏠렸던 내 신경을 분산시키는 것은 물론, ‘내가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 가랑비가 스며들 듯 내게 아주 조금의 힘이 되었다.
맛있는 요리 옆에 맥주 한 잔이 있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솔직히 들긴 하지만, 대신 물을 마시며 참고 있다. 감정이 폭발해 버리고 말까 봐, 그러면 또 울다 지쳐 잘 것 같아서 술을 조금 덜 마시고 있다. 이유는 슬프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건강한 식단으로 먹고살고 있다.
술이 주는 재미는 잃어버렸지만, 다른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침대에 누워 냉장고 속 식재료를 복기해 보며 내일은 뭘 해먹을까? 하고 고민한다. 유튜브에 'OOO 만드는 법'을 검색해서 레시피를 공부하고 '내일 정말 이대로 따라 하면 맛있을까?' 하는 설렘을 안고 눈을 감는다. 근처 시장과 마트를 오가며 가격을 스캔하고 더 싼 곳에서 사서 뿌듯한 마음으로 냉장고를 채워 넣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요리하곤 첫입을 떴을 때, 생각보다 맛있어서 “나 천재 아니야?”라고 혼잣말을 한다.
누군가 내게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행복하진 않고 대체로 불행하다.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라는 해피 엔딩으로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밥 잘 챙겨 먹는 건 마법처럼 뿅하고 나의 슬픔과 불안을 완전히 해소해 주진 않는다. 꺾였는데도 그냥 살아갈 수 있는 정도의 양분을 공급해 주는 정도이다.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상처받은 마음도 회복되고 절망 속에서 빠져나와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회복하는 시간이니까, 그래서 대체로 불행해도 괜찮은 요즘이다. 나를 믿자.
부추 깻잎 페스토로 만든 파스타. 페스토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단순하다. 바질, 깻잎, 부추 등 페스토의 주인공을 한 움큼 넣고 올리브 오일을 넉넉하게 뿌리고 견과류 한 움큼, 소금과 파마산 치즈를 적당히 넣는다. 그다음 갈아주기만 하면 끝. 믹서기를 중간중간 흔들어가며 가는 과정이 조금 번거롭다만, 그래도 이 정도면 어렵지 않게 맛있는 페스토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