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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인 Jul 23. 2024

가짜 취향

돈을 써야만 즐기는 취향의 결말

취향이 확실해서 좋겠다는 이야기를 주변으로부터 종종 들었다. 한때는 나도 그런 줄 알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내 취향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 퇴사 후 소득이 없어짐과 동시에 내 인생에 없어도 되는 ‘가짜 취향'이 걸러지면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


먼저, 허세가 들어갔던 가짜 취향부터 보자. 4년 전쯤, 위스키를 내 취향으로 삼고 싶어 했다. 다른 술보다도 위스키는 어쩐지 멋있었고 성공한 어른의 대표적인 술 같았달까? 글렌모렌지, 글렌피딕, 아드벡 등 이름마저 멋들어졌기 때문에 그 이름을 내 입으로 발음하는 것조차 마음에 들었다. 위스키들의 맛이나 향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한때 추구미이기도 했는데, 그것 역시 맛과 향을 즐겼다기보다는 ‘많이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됐다.


위스키를 사랑한 아니다. 위스키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 것에 불과하다. 꽂혔을 당시엔 내 취향인 줄 알고 흡족했지만, 이 욕망을 계속 채워주기에는 나의 지갑 사정이 넉넉지 않았으므로 가짜 취향은 오래 갈 수 없었다.


비슷하게 LP도 그렇다. SNS에서 LP를 엄청나게 많이 수집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아날로그 감성을 즐길 줄 아는 모습… 멋있다!’와 같은 일종의 동경을 했다. 이번에도 역시 LP에 대한 호기심보다도 추구미로부터 비롯된 가짜 취향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턴테이블을 사고, LP도 한 장 샀다. 이매진 드래곤스의 큰 팬도 아니면서 일단 LP를 사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아는 밴드의 LP를 골랐고, 놀랍게도 불량품이라 소리가 이상하게 났다.


‘이대로 내 추구미를 포기할 순 없다. 다른 LP를 산다!’ 하고 세 장의 LP를 샀다. 음악 취향엔 맞는 LP들이지만, 여전히 이 음악을 LP로 들어야 하는 이유는 정확히 알지 못한 채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리는 나’에 취할 뿐이다. 많은 LP를 수집해 놓고 그날의 무드에 따라 골라서 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긴 어렵다고 판단, 더 이상 LP를 새로 구매하지 않고 있다.


이 둘은 ‘가짜 취향'이라고 아주 쿨하게 인정했지만, 망설이게 되는 취향도 있다. 크래프트 맥주…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년간 줄기차게 마셔왔기도 했고 주변에 ‘맥주 좋아하는 애'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약간 내 정체성을 부정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위스키보단 맥주의 맛과 향을 훨씬 더 좋아하고 잘 즐겼고, 더 오랫동안 꽂혀있었다.


지금도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자주 마시고 싶다. 하지만 바로 이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이라는 전제에서 슬픈 마음으로 크래프트 맥주를 가짜 취향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결국 소비해야만 즐기는 취향이라는 한계에 부딪혔다. 취향이라는 것은 내가 그걸 누릴 때 즐겁고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야 하는 지금의 나에게 크래프트 맥주는 ‘네가 지금 이 돈을 주고 맥주를 사 마실 때니'와 같은 죄책감과 후회를 남긴다. 내가 취향을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취향에 주도권을 뺏긴 듯한 기분이 든다면, 이미 그때부터 진짜 취향이 아니게 된 거다.


아마 모든 소비 중심 취향의 결말은 이럴 것이다. 방을 빼고 위스키를 사 마시는 영화 <소공녀>의 미소가 아니고서야 소비에 필요한 총알이 없어지면 바로 그 취향을 포기한다.


언젠가부터 취향을 소비의 동의어 정도로 받아들였다. 생각해 보면, 돈이 크게 안 드는 취향도(중학교 때 MP3에 에픽하이 노래를 가득 채웠던 것도, 도서관에서 온다 리쿠의 소설을 한참 찾아 읽던 것도) 다 취향인데 말이다. 소비를 자주 할수록 취향의 주인이 된 것 같은 느낌에 도취된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소비하는 기간에만 주인이 되고, 소비하지 못하는 순간 절교한 친구처럼 아주 어색해진다. 내가 그냥 돈으로 빌린 취향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씁쓸하게 웃으며 멀어진다. 내가 쓴 돈에는 이 허탈함의 비용도 책정되어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요즘엔 눈을 돌려 조금은 다른 종류의 취향을 즐기고 있다. 따뜻한 색감의 수채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기타 연습을 좀 더 진득하게 한다. 손쉽게 결제하고 짧게 만족하고 사라지는 취향이 아닌, 내 손으로 무언가의 결과물이 나오는 취향들인 셈이다. 내가 그린 그림으로 채우고 있는 벽면을 보며, 발행한 글을 보며, 드디어 연주를 성공해 낸 기타 연습 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흐뭇하게 웃곤 한다. 즐겁고 마음이 편한 걸 보니, 이거야말로 진짜 취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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