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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 Aug 22. 2023

너는 결국 너의 길을 찾게 될 거야

To 2013 From 2023 [Part1]

2013년 1월 9일

졸업영화를 찍은 후 깨달은 사실. 역시 난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어두운 극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누군가에게 나도 무언가 주고 싶어서. 


2013년 1월 12일

좋아하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나는 항상 슬펐다. 다시 돌려보기도 하지만 역시 끝은 같다. 처음엔 그 허무함이 싫어서 조금 더 그 등장인물을 만나고 싶어서 글을 썼다. 


2013년 1월 16일

갖고 싶은 것도 많고, 놀고 싶은 것도 많다. 그래서 알바라도 하고 싶은데 취준 중인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고. 참자. 지금은 참고 이겨내야 할 시기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더 이상 폐 끼치고 싶지 않다. 이제 한 사람의 독립된 사람으로,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13년 2월 13일

진짜 진짜 하기 싫다. 학생 하고 싶다, 다시. 학교 다닐 때완 다르게 더 열심히 해야 해. 그래야만 내 꿈을 이룰 수 있어. 다시 영화를 찍을 수 있어. 


2013년 2월 21일

이력서를 낸 여섯 군데에 다 서류 탈락했다. 다 쟁쟁한 회사들이었고, 보통 이 정도는 다 떨어지고 시작하는 거니까. 아, 이런 이야기들로 더 이상 도망갈 구석을 만들고 싶지 않다. 쓸데없는 자존심은 이제 버려야 할 것 같아.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해. 


2013년 3월 1일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면서 그래도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믿고 싶다. 그건 역시나 환상인 걸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포기해 버리면 환상이 되지만, 해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내게 되리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취미로 만들고 싶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일로하고 싶어. 


2013년 3월 6일

이젠 어디든 이력서를 내자고 생각했다. 내게 꼭 맞는 일을 기다리는 것보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좋은 경험을 만들어 두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조금이라도 먼저 발버둥 치면 목표하는 바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2013년 3월 25일

작년 이맘때처럼 저는 올해의 봄도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제가 이토록 힘이 드는 것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해서라기보단 오히려 저의 진정한 직업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 있는 직장을 얻게 되면 좋겠습니다. 


2013년 3월 29일

첫 번째, 나는 돈을 벌고 싶다. 두 번째, 작업을 하고 싶다. 장래에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작가가 되고 싶다. 계속 글을 쓰고 싶다. 


2013년 4월 4일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은 어디로 향할까? 주인공이 한 사람을 위해 추악한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 '이런 세상은 존재할 가치가 없어. 하지만 네가 살아가야 할 곳이라면 난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못해.' 


2013년 4월 17일

왜 그들은 계기, 이 업계에 지원한 이유에 대해서 그토록 반복해서 물었을까. 그것이 왜 그들에게 중요했을까?


2013년 5월 3일

글을 쓰고 뭔가 만들고 싶어. 


난 스킬이 부족할 뿐이지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야. 냉정하게 생각해도 결론은 그거야. 대신 이 공백기에 무언가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활동을 생각해 놓아야 해. 공무원은 진짜 아니다. 지금은 쉬운 길처럼 보이겠지. 너무 명확하니까. 그렇게 도망치면 안 돼. 한번 도망치면 평생 도망쳐야 해. 


2013년 5월 15일

드라마 기획 작가 일을 소개 받고, 에피소드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안된 것 같다. 그래도 아이템을 개발하며 즐거웠다. 그것이 중요하다. 이야기를 만들며 즐거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내게 의미 있는 일이었다. 언제나 스스로가 이룩해 놓은 것이 없다고 자책했었다. 어쩌면 지금 이 시기에 그런 '작업'을 해야 할 때이고, 집중해서 올인할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지금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인지, 응당 해야 할 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혼란스러운 취준생의 나날이다. 


2013년 5월 16일

길을 걷다 꽃장수를 봤다. 야채나 과일이 아닌 꽃을 길거리에서 파는 것은 생경했다. 파란 수국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멈춰서 바라보다가 얼마냐고 물었다. 8천원이란다. 돈이 없어서 살 수 없었다. 아저씨에게 몇 시까지 여기 있냐고 물었다. 저녁 8시라고 했다.

예전에 아빠를 졸라서 집 마당에 수국을 심었다. 수국은 흙의 성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우리집 마당에는 결코 내가 원하던 파란 수국이 피지 않았다. 빨갛고 빨간 꽃만 피었다. 그 후 집은 팔아야만 했고 만촌동 우리집 마당에 피는 그 어떤 꽃도 더 이상 볼 수없게 되었다.

화분에 있다가 마당에 옮겨심어 푸르게 푸르게 커가던 수국 잎사귀들이 기억난다. 그 튼튼한 녀석은 뿌리 채로 뽑혀서 말라버렸겠지. 결국 오늘 난 그 파란 수국을 사올 수 없었다.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다. 나는 결코 꽃을 살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것이 내 처지라는 것을 알았다.


그날, 그녀와의 대화는 짧았지만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두리번거리지 마.' 

그녀는 두리번거리지 말고 한 우물을 파라고 했다.  재미있어 보인다고 모든 것을 시도해 보기엔 어린 나이가 아니라 했다.  나는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집하기에는 내 상황이 따라주지 않으니 우선 일을 시작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런 내 판단에 대해서 아무도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지를 받았다. 꿈만 먹고 무언가의 준비를 빙자한 백수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 내가 현실을 제대로 볼 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판단에 회의를 보인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나는 그것이 충격이었다. 다른 일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노린다? 웃기지 말란다.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 일을 하게 되면 그곳에서 나의 글을 읽어줄 사람이 있을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알게 되었다면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다. 그 길이 어떻게 해야 걸어갈 수 있는지 찾는 것은 나의 몫이고. 


그때서야 이 도시에서 이력서를 가슴에 품고 방황하고 있었던 내 자신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그들이 보기에는 나는 '이 곳이 사실은 내가 있어야할 곳이 아닙니다.'라는 눈으로 '이 일을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앵무새처럼 입만 뻥긋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도망칠 구석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러 회사에서 떨어진 것이 나를 크게 좌절시키지는 않는다. 결국 그 정도의 마음가짐이었으니까 당연하다.


한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감독 데뷔 혹은 계속 창작활동을 하려고 대학에 들어온 나와 들어오자마자 취업준비를 해왔던 다른 과 학생들과는 종자 자체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방황하고 더 취업하기 힘이 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 자체가 어쩔 수 없이 꿈과 이상을 쫓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는 현재의 내 꿈을 이루어줄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직장을 찾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서 다닌다. 꿈이 환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져 처절하게 깨부셔지는 순간이었다. 면접에서 회사에 충성하는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의 꿈과 에고를 고집했던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해가 안된다면 내가 사장의 마음이 되보란다. 결코 몰랐던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나는 자신의 고유성을 표현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그러기 위해 애를 써온 사람이기 때문인지 스스로를 죽이고 타인이 바라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점에는 무척 서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여전히 어렵다. 그렇게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는.


나는 이와이 슈운지를 좋아한다. 그는 영화 전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아리에서 영화를 찍었다. 그의 첫 데뷔작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드라마였다. 그 후 그는 영화를 찍었고 그러면서 소설책을 내기도 했다. 안노 히데아키의 영화에서 배우가 되기도 했고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했다. 이제 그는 감독이 아닌 제작자로써 활동한다. 그는 사실 모두가 칭송하는 거장 감독은 아니다. 엄격하게 따지면 작품성이 좋거나 영화적으로 우수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표현과 이야기를 고집하고 그런 그의 감성이 좋아 죽는 두터운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다. 나는 바로 그처럼 되고 싶었다. 하나의 아이템, 컨텐츠를 가지고 매체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향유하는 그처럼 되고 싶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게 무슨 영화냐고 말하거나 말거나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을 만들어 내는 그처럼 되고 싶었다. 아이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정표로 나아가는 그처럼 되고 싶었다. 그가 있었기에 나는 종이와 펜을 버리고 카메라를 선택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나는 꿈 많은 십 대 소녀도 아니거니와 이십 대 초반도 아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들은 내 안에서 평행선을 그리며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주 미묘한 선호의 차이로 앞서 있거나 뒤쳐져 있거나 할 것이다. 나는 그 미묘한 틈을 발견해야하는 때인 것 같다.


그래. 나는 결단해야한다. 하나를 선택하기가 힘들다면 소거법이라는 좋은 방법이 있다. 지워나가는 것이다. 내가 집중해서 붙잡고 나가야할 한 가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작년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믿고 따르게 된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그 분이 학생들에게 반복해서 하시는 이야기가 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 지옥이 시작된다고 했다. 


만물이 생동하는 이 좋은 계절에 나 혼자만 여전히 그리고 아직까지도 정체되어있음에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다. 당연한 수순대로 제 자리를 찾아가는 아이들과 다르게 왜 나만 방황하고 있을까 많이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나는 틀리지 않았다. 나는 그들과 다를 뿐이다. 생각이 많아서 느리고 항상 방황하지만 내 페이스로 내 자신의 자리도 찾게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징조인지 정체되어 있는 것만 같은 나날들 속에 충격을 받아 등을 떠밀리기도 하고 다시 여유를 찾기도 하면서 답답하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아직 확실히 결정된 일은 아니지만 지난 주 기획 작가 일을 맡게 되었을 때 내 잠을 깨운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힘들하면서도 즐거워했던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5월의 보름 간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5개월 동안 달려오면서 이제 많은 일들에 무뎌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초조해서도 안되고 조급해서도 안되고 잡생각을 많이 해서도 안된다. 평온하게 하지만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꿈과 이상을 쫓으며 그렇게 나아가려 한다.


2013년 5월 20일

인생은 참 신기하지. 전날의 고민이 다음 날 깨끗이 해소가 되기도 하고 그랬다가 다음 날 다시 전복되기도 하고.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큰 동요없이 초연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이 나이가 드는 것이고 인생에 있어 노련해진다는 것이리라. 아직 놀랄 일도 슬퍼할 일도 많이 남았다는 것을 기뻐해야할까, 낙심해야할까. 이왕이면 기뻐해야겠다. 아직 젊다는 증거이니.


2013년 5월 24일

다시 원점. 바빴던 화요일, 만난 분들이 내게 해준 이야기는 상충되기도 하고 공통점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나도 왠만해서는 누군가의 말을 맹신하지 않는다. 모두들 자기 입장에서 자기의 최선의 말을 할 뿐이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실행해 나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다만 그 분들이 하는 이야기의 공통점은 꾸준하고 부단하게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이었다. 친구는 소개시켜준 일이 결국 어그러져서 내게 무척 미안해했지만 나는 오히려 고마웠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등을 발로 차주는 사람을 만났고, 그를 통해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객관화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아직까지는 기약이 없지만 미래에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열어주었다. 나는 그것에 감사하다. 다시금 느끼지만 남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하려는 일에는 더더욱 사람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언이설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나라는 사람이 달라보였다는 것. 아직까지는 내가 짧은 시간 안에 나의 장점을 잘 보여줄 수 있을만큼 능숙하진 않지만 적어도 글에서는 나라는 사람이 쓸만합니다라고 드러난다는 것이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라는 것도 동시에 깨달았다. 아침에 잠에서 깰 때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일, 힘들지만 힘든 것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즐거움, 그에 대한 반응을 들었을 때 더 노력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 마음. 고등학교 때 언제나 내게 힘이 되었던 말을 떠올린다. 가슴 뛰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너의 사명이다. 아직까지는 제대로 해낸 것이 하나도 없지만 내 손에 있는 이 가능성들이 결국 무언가를 움켜잡고 말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덧붙여서 다음번에는 제대로 질문을 할 것이다. 결국 내가 일을 맡지 못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으니 그냥 솔직하게 내가 쓴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달라고. 상처주지 않기 위한 사탕발린 이야기는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13년 5월 31일

생각해 보면 글을 써보기로 한다는 것으로 마음을 굳히기까지의 시간들이었다. 보조작가나 기획실로 들어가고 싶다. 


2013년 6월 5일

처음엔 취직이 되는데로 커리어 계획을 짜려고 했으나 그런 어중간한 마음 상태의 나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모르겠다. 마음을 먹고 앞으로 나아가면 불시에 기회는 찾아오고 그 때마다 나는 다시 헷갈리기 시작한다. 뿌리쳤던 길을 돌아보게 된다. 십년 후에, 하다 못해 오 년 후에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리 저리 흔들리는 나를. 그 때는 그랬었지라고 생각하게 되면 다행이겠지. 그래서 결정된 것이라곤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알바를 하게 되었다는 것 뿐이다. 또 다른 기회는 금요일까지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그 기회를 붙잡는다면 정말, 정말, 최고겠지만. 아직 속단할 수 없는 문제이니 조금은 떨어져서 바라볼 것이다. 


돈을 버는 일은 참 숭고하면서도 참 더러운 일 같다. 순수하게 모든 노동은 숭고하다. 하지만 그것의 의미가 그저 돈이라면 그것은 더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드는걸까. 내가 하는 노동이 돈 외에 의미가 있길 바라기 때문일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나의 커리어로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일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그 일이 힘은 들지언정 더럽다고는 느껴지진 않을 것 같다. 내 모든 노력과 땀에 돈 외의 의미가 생기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을 숭고하게 여기게 될 것 같다. 그것이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타고, 복사를 하는 허드렛일일지라도. 일하지 않는 자의 환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다. 그것이 직업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진지하게 일에 임하는 것. 당장 졸업해서 그런 일을 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알바를 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것 같다.


세상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너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다. 그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가? 묻지말고 그저 걸어가라. "사람은 그의 길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때 가장 높이 분기한다."라는 격언을 말한 사람은 누구였던가?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찾을 수 있는가? 인간은 어떻게 자신을 알 수 있는가? 인간은 어두운, 베일에 싸여있는 것이다. 토끼의 껍질이 일곱이라면, 인간은 일흔번 곱하기 일곱번씩이나 껍질을 벗겨야하며 그래도, "그게 정말 너야, 이제 껍질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없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파헤쳐서, 가장 가까운 길로 무리하게 자기 본질의 수직 갱도로 내려가는 것은 고통스럽고 위함한 일이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없을 만큼 심한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더욱이 우리의 친구와 적, 우리의 시선과 악수, 우리의 기억과 망각한 것, 우리의 책과 필적,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본질에 관해 증언하고 있는데, 그럴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심문작업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다. <젊은 영혼은 삶을 돌아보고 이렇게 묻는다. 너는 이제까지 무엇을 진정으로 사랑했는가. 무엇이 너의 영혼을 끌어당겼고 무엇이 너를 지배하는 동시에 행복하게 했는가?> 이 일련의 소중한 대상들을 상상 속에 떠올려 보라. 그러면 아마 그것들은, 그 본질과 그 결과를 통해 하나의 법칙, 즉 네 진정한 자아의 근본법칙을 너에게 알려줄 것이다. 이 대상들을 서로 비교해보라. 하나가 다른 것을 어떻게 보완하고 확장하고 능가하고 미화하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그 대상들이 네가 이제까지 너 자신에게로 기어올라갔던 사다리가 되었는지를 보라. 왜냐하면 너의 진정한 본질은 네 안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너보다 훨씬 높이, 적어도 네가 보통 너의 자아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이 있기 때문이다. 너의 진정한 교육자와 형성자는 네 본질의 진정한 근본 의미와 근본 소재가 무엇인지, 교육할 수 없고 조형할 수 없는 것, 어쨌든 접근하기도 구속하기도 또 위축시키기도 힘든 것이 무엇인지 네게 말해줄 것이다. - 반시대적고찰3 프리드리히 니체


2009년 이맘 때쯤. 니체의 저서를 발췌한 것을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렸더라. 알람이 울려서 오랜만에 다시 니체의 글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도 여전히 니체의 저서의 어떤 부분은 내게 용기를 준다. 다만 나이가 드니 의심하게 된다. 사람이 가장 높이 분기할 때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때라고? 무슨 개소리냐. 그게 헛발질이면 어떡할래? 나이가 차고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면 안된다는 결벽이 나 자신을 괴롭히기에. 자꾸만 자꾸만 물음표를 단다. 오히려 이것이 갈피를 못 잡고 한 없이 두리번 거리고 있다는 증거일까.


오늘은 무척 피곤하기도 하고 무척 생각이 많기도 하다. 작년에는 한 해만 버티자고 생각했다. 그러면 보이는 것이 있을거라고. 물론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안개 앞에서 헤매이고 있다. 또 언젠간 보이게 되겠지. 아마도 평생, 이런 식이겠지. 뿌연 안개 앞에서 죽도록 헤메이다 드디어 실체를 발견하고 길을 걸으면 또 다른 안개 앞에 서 있겠지. 절망적이진 않다. 삶이란 것이 원래 치열하게 죽음으로 추락해가는 과정이 아닌가? 아직까지는 머리로는 알고 있을 뿐, 몸으로는 익숙해지지 않은 것 뿐이리라. 그래서 답답하고, 답답하고, 힘이 드는 것이리라. 


올해의 나는 작년의 나보다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현재 내 상태는 이렇다. 어제보다 오늘 앞으로 더 나아갔을까? 내일은 오늘보다 앞으로 더 나아갈까? 이렇게 내 발자취조차 알 수 없는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2013년 6월 13일

이제 이 다이어리를 끝낼 때가 다가온 것 같다. 딱 6개월 치를 썼다. 지난 화요일, 무엇이 그렇게 나를 격분하게 하고 좌절하게 했던 건지 다시 되돌아본다. 

1) 알바를 그만둔 것에 대한 아쉬움, 가족들에게 미안함. 

2) 말을 금세 바꾼 회사 측의 일처리에 대한 분노

3) 될락 말락 반복해 왔던 구직활동에 지쳤음

4) 참지 못하고 할 말을 해버린 내 성격의 부족함

이런 복합적인 상황이 감정을 폭발시킨 것 같다. 마음이 너무 불안했고,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 같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상황에 염증이 났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울고 또 울었다. 작년에도 나는 연출자로서 나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해 울고 또 울었지.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내가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나 자신을 인정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매년 레벨 업하지만 고난은 동시에 업그레이드된다.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2023년

오늘 작가님께 그런 질문을 받았어. 어떻게 프로듀서를 할 생각을 했냐고. 본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항상 낯선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들을 조율하는 일들이 너무 어려워 보인다고. 이렇게 대답했지. '저는 피디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아마 처음부터 피디가 꿈이었다면 저 역시 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잘했고,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너는 아무것도 몰랐지. 네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무엇이든 될 수 있었지만, 그건 곧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지. 그렇지만 넌 그때부터 현실적이었어. 내가 사회에서 아무런 쓸모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무엇이든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까. 어떤 일이든 내가 일을 가지게 되면 소중하게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지.


기획 작가로 기용되면 작가의 길을 갈 것이고, 영화 제작사 기획팀에 들어간다면 기획 일을, 마케팅 회사에 들어간다면 마케팅 일을, 드라마 제작사에 들어간다면 드라마를, 잡지 회사에서 받아주면 기자, 편집자가 될 거라고. 무엇이든 다 하겠다고. 너는 나보다 훨씬 어렸지만 알고 있었던 거야. 일단 무엇이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네가 그때 무슨 수로 알 수 있었겠어. 영화 기획 프로듀서가 무엇인지, 그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길은 꼭 네가 애쓴다고 찾아지는 길은 아니야. 오히려 기막힌 우연과 인연이 만나는 자리에서 펼쳐지지. 결국 너는 길을 찾게 될 거야. 그 순간이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토록 괴로웠던 거야. 그러나 결국 너는 길 위에 있게 돼. 그 길 위에서 학창 시절에도, 영화 연출 전공이었던 대학 시절에도 깨닫지 못한 너의 진정한 강점을 알게 될 것이고,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될 거야. 네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글도 쓸 것이고,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거야. 


놀랍게도, 너는 네가 그렇게 사랑했던 이와이 슈운지 감독처럼 하나의 아이템, 컨텐츠를 가지고 매체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게 돼.  2023년 현재의 내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모두 너에게서 비롯되었어.  


고마워. 잘 버텨주어서. 

괜찮아. 너는 이미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멋진 사람이었으니까.

알게 될 거야. 곧.


 


커버 사진

이와이 슈운지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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