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성보단 나다운 진실성을 추구하길
21년 가을에 이직하여 시리즈 두 작품에 몰두했다. 극장에 사람들이 오지 않으니까, 이젠 OTT 플랫폼이나 TV가 대세이니까. 시류에 영합하여 시리즈를 준비했던 것은 아니다. 한 작품의 개발이 최소 1년이 걸리는 호흡이 긴 ‘상품’을 만들고 있으니 현재 유행이라고 해서 다 따라갈 수 없는 업계에 살고 있다. 영화 기획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내가 시리즈로 눈을 돌린 이유는 변화하는 시장을 염두한 것과는 별개의 이유가 있다. 영화로 할 수 없는 재미있는 아이템을 만들 수 있었다. 절대다수를 만족시키는 영화보다 또렷한 개성을 살릴 수 있었다. 신선함이 오히려 덕목이 되었다. 기존 상업 영화 스토리와 판에 박힌 스타 캐스팅의 공식이 고루했다. 끝없이 자가분열하고 서로서로 나눠먹는 구조에 신물이 났다.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이 어디 가지 않고 결국 그 사람이 그 사람이기 때문에 구조는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내게 변화가 생겼다. 3분기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영화 아이템을 기획하고 있다는 것. 물론 이번에도 국내 OTT 업계가 힘들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꽤 큰 지각 변동을 일으킨 탓도 있고, 그간 한국의 콘텐츠는 글로벌하게 다양하고 풍성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영화로 해보고 싶은 아이템의 가능성이 생긴 것, 함께 작업하려고 하는 감독이 영화 쪽에 더 맞는 친구라는 것이 다시 내게 영화를 붙잡게 했다. 어쨌든 영화는 첫사랑이고 끝사랑이 될 터였다. 불 꺼진 어두운 극장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스크린을 바라볼 때의 벅참. 그것 하나로 상업 영화계에 뛰어들었으니까.
감독과 내가 둘 다 좋아하는 장르. 동시에 영화화될 수 있을 상업성과 스케일이 있는 소재여야 한다는 조건만 맞춰두고 아이데이션을 시작했다. 그간 감독의 여러 시도들을 지켜보았지만 그는 기획보다는 연출에 특화되어 있으므로 기획을 먼저 잡고 회사와 논의를 거친 후 일을 도모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7월부터 본격적으로 기획 아이데이션을 시작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조합들이 딱 맞춰 들어갈 때가 있는데 그 조합들이 아무리 해도 맞춰지지 않았다. 고민은 7월 내 내하고 업무 시간에 아이데이션 하는 시간을 꾸준히 가졌지만 잘 풀리지 않아 초조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예술은 먹고사는데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는가. 물론 그것이 커다란 산업을 이루고 있고, 돈이 되니까 생산하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생산해 소비되는 것이 운명인 상업 작품.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작품이 세상에 나와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만드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명확하게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작품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작품이 세상에 나가는 순간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독서를 한다. 인문학, 역사, 철학, 예술을 공부한다. 거기에서 소재를 얻기 위해서가 아닌 지금 이 시대에, 인류에게, 우리나라에, 여성에게(내 성별이므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치 있는, 궁금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테마를 찾기 위해 읽는다. 그렇게 적어도 한 달에 한 권의 책은 읽으려고 노력한 결과 정리해 둔 책만 해도 꽤 쌓였다.
지난 6월에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며 정리한 것은 내가 기본적으로 '모험'의 여정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크게 보면 모든 영화는 놀라운 일을 마주하여 길을 떠났다 돌아오는 과정이므로 영화라는 것 자체를 이런 이유로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영화 소재에서 한국이란 나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나라가 아니며, 문명의 중심지도 아니고, 융성한 문화적 내력은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소재는 대부분 실화 베이스 거나, 북한 관련, 경검찰 수사물, 조폭물이었고, 스케일을 내세우게 되면 시대극이나 사극, 재난물이었다. 그래서 유독 리얼리즘이 한국영화의 강점이었다.
북한을 주로 메인 빌런으로 삼다가 정권이 바뀌자 군부정권 배경이나 좌파 독립 인사를 소재로 삼으며 첩보물이나 전쟁 장르가 나왔다. 코로나 전후로 해외 로케가 있는 영화들이 연달아 나오며 마약 카르텔 이야기나 SF장르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과 소재들이 지난 20여 년 간의 경향이었다면 앞으로는 어떤 소재로 어떤 테마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 확실한 건 내가 기존의 소재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궁금증이 있었다. 세상의 종말이 오거나, 절체절명의 재난, 전쟁 상황이 오면 사람들은 모두 폭력적으로 변한다. 사람 이전에 여성의 인권이 제일 먼저 박살 날 테고 결국 사회는 힘에 의한 지배와 약탈로 이어진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장면들만 그려지는 것은, 그런 장면들만 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이 순간도 어딘가에서는 전쟁과 내전으로 숱한 참상이 자행되고 있고, 우리가 늘 접하는 콘텐츠에서는 인간의 추악한 밑바닥이 주인공을 위기로 내몬다.
나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인류에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를 보고 싶었다. 세상의 멸망 앞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것은 인간의 추악한 밑바닥, 서로를 약탈하고, 배신하고, 살육하고, 강간하는 카오스의 아귀다툼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신성함과 숭고함이 빛나는 연대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내게 많은 힌트를 준 책이었다. 이와 같은 베스트셀러의 순기능은 노출이 많이 되고, 읽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담론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의 도움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내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독서가 반년 만에 그 효용성을 증명했다. 비단 이 책뿐만 아니라 질문과 고민을 품고 상반기에 읽은 모든 책이 양식이 되었다.
올해의 절반을 지나 보냈기 때문일까. 결과물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물론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이미 궤도에 올라타 지속적인 결과물을 내고 있었다. 정확히 어떤 결과물에 대한 욕심이 있었느냐 하면 이미 월급 받는 정도는 일을 하고 있으나 그것의 결과물이 아닌, 그 이상으로 도전적인 시도에서의 결과물이 보고 싶은 것이었다. 실패하라도 매일매일 내 손으로 만드는 나다운 것. 그런 것을 원했다.
3월부터 신사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 후배에게 몇 가지 키워드를 던지며 아이디어를 달라고 졸랐다. 매번 그렇게 툭툭 던지는 내가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착실히 내게 공을 돌려주었다. ‘이제 과거의 이야기, 시대극은 재미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뭔가가 뒤집히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지! 작년 이맘때쯤에 다소 도전적인 프로젝트 기획을 맡았을 때도 돌파구는 10년 차이가 나는 후배의 한마디에 있었다. '마법소녀들인데 직장생활을 하는 건 어때요?'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을 실사 드라마로 기획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감사하게도, 그리고 신기하게도 나는 그녀들의 그 한 마디에 속박에서 풀린 듯이 자유로워졌다.
다만 마음대로 술술 풀린 것은 아니었다. 아이데이션 과정은 내가 나 스스로와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이었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제일 신랄하게 스스로를 비판했다. 아침에 쓴 기획을 저녁이면 구겨 버렸다. 연일 지속된 장마로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해묵은 콤플렉스까지 자극됐다. 통통 튀고 날고 기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독창성이나 창의성, 무언가를 만드는 재능이 없다는, 예술대 출신이 으레 겪는 그 '재능 없어' 콤플렉스 말이다. 심지어 도움을 얻기 위해 다시 들춰본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에서 자신의 것이 없기 때문에 남을 돕는 일을 한다는 예전에 줄 쳐둔 단편적인 문구를 보고 최근에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부정당하는 것 같아 혼자 상처받았다. 철부지 때나 하던 방황의 플로우를 재생하며 끊임없이 자해하고 있었다.
그 고리를 끊으려고 디자이너로 일하는 오랜 친구에게 털어놓자 몇 가지 조언을 주었다. ‘알지 않냐, 창작은 어느 순간 탁 트이는 날이 있다. 내 생각은 그렇다. 창작은 경험을 많이 해야 잘 나오는 것 같다. 맨날 회사만 다니는데 어떻게 잘 나오냐. 시간 많은 사람들은 하루종일 상상하겠지. 우린 상상할 시간도 없다. 그리고 오히려 너무 많이 알아서 아이디어 축나는 경우도 있다. 아 이건 남들이 안 좋아해, 이걸 아니까 아이디어는 점점 썩은 것만 나온다. 고루해지고. 그래서 출장을 가는 거다. 넌 그게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져봐라.’
다다다 연달아 도착한 카톡 메시지로 친구에게 수십 번을 두드려 맞고 정신을 차렸다. 어쩌면 조합이 되는 시점이 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합을 할 시점이 왔는데 그 조합이 또 쓰레기가 될까 봐 두려워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내 등을 밀어줄 말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그냥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진실을 다해 말하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기꺼이 털어서 나누어 보라.
만약 그것이 충분히 진실한 시도라면,
장담하건대 그것은 독창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같은 주제를 좀 반복하면 어떤가? 새로운 세대가 나타날 때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인류 전체가 느끼고 궁금해한 것처럼, 그들 역시 매번 같은 욕구를 느끼고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게 뭐 어떤가?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창조적인 본능에도 어떤 반복적인 부분이 드러나게 된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동일한 착상이라 해도 당신이 그곳에 자신의 표현과 열정을 담는다면 그 착상은 당신의 것이 된다.
요즘 나는 진실성에 훨씬 더 이끌린다. 독창성을 겨냥한 시도와 노력은 종종 강렬하고 소중하며 희귀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고요한 공명함을 담고 있는 진실성에서 심금을 울리는 깊은 감동을 받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빅 매직>, 엘리자베스 길버트
용기를 내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구상은 글자로써, 문장으로써 세계가 되기 시작했다. 거친 초안이지만 세계관을 썼고, 그 세계에서 움직이는 인물의 형체를 그려냈다. 이후 다른 일 때문에 감독에게 전화했는데 그가 기획은 그때 이야기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넌지시 물어왔다. 나는 장르 말고 다 바꿨다고 시원하게 말했다. 우린 과거 배경의 이야기를 하려고 계획했으나 과거가 지겨워서 미래로 가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냥 자유롭게 재미있는 것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 동료 아니랄까 봐, 새로운 기획 방향성을 그는 오히려 반겼다.
-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는 한계가 있다.
여러 사람과 캐치볼을 하듯 공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 내가 직접 깨닫고 증명한 사실. 1+1=3이 된다.
- 좋아하는 것을 할 때 꾸준히 할 수 있다. 꾸준히 하는 과정이 곧 결과물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은 곧 '나다운 기획'으로 이어진다.
→ 순수한 선호인지 욕심인지 감정의 이면을 봐야 한다.
- 매일 작은 것이라도 기록하고 고민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 고민과 질문을 품고 있으면, 내가 듣고 보는 모든 것, 심지어 꿈에서조차 힌트를 찾기 위해 나의 감각이 열일한다. 그 감각의 자동화를 위해서는 늘 머릿속 한 구석에 고민과 질문을 심어두어야 한다.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집중하는 시간, 공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 나는 쉴 때도 항상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7월엔 신변에 처리할 일이 많았다.
- 욕심을 내려놓고 이렇게 나다운 기획을 고민할 수 있는 상황에 감사할 것
→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감사할 때 지치지 않을 것이다.
1주 차
7월 3일 (월) 기획 아이템 아이데이션
7월 4일 (화) 자료조사, 서점 방문
7월 5일 (수) ~ 7월 6일 (목) 아이템 관련 논의
2주 차
7월 11일 (화) 기획 아이템 아이데이션 2
7월 12일 (수) 기획 아이템 아이데이션 2 추가 논의
3주 차
7월 18일 (화) 기획 아이템 아이데이션 3 지속
7월 20일 (목) 기획 초안 작성
7월 21일 (금) 7월 글쓰기
tmi 초조해하고 잘 안된다고 징징댔지만 꾸준히 노력해 왔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짠하고 내보이는 결과물에 대한 환상, 잘 보이고 싶은 내 욕심, 독창성에 대한 함정, 업력과 경력이 오히려 독이 될 때 등. 돌아보니 꽤 다양한 이유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었다. 사실 여기까지 정리하기도 쉽지 않았는데 어렵사리 정리하고 보니 다시 어떤 방향을 향해 가야 할지 길이 보여 안심했다.
그간 내 일은 고집을 부리기보단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던 일이 중심이었던 것 같다. 나다운 것, 창작,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활동에 있어서는 타협보다 고집이 중요한 순간이라고, 내 목소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대학 졸업 작품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그리고 진정으로 아티스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길은 혼자 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그 시절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넓은 세상으로 나와 비로소 찾아간 길이라는 사실이 대견하고 또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