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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 Sep 19. 2023

3년 간의 이야기의 시작

To 2014 From 2023 [Part1]

2023년 가을의 초입에서. 

몇 주 째 여러 프로젝트의 일들을 해내고,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지며,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어. 일기장에 그렇게 썼지. '쉬는 건, 죽어서나 하자'라는 말을 내 입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이야. 며칠 전 미팅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했어. '일 욕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에 여러 사람의 인생이 걸려 있기 때문에 허투루 할 수가 없다고. 잘되고 말고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더라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라고. 


2014년, 남은 6개월의 인턴 기간을 보내며 네가 간절히 원해왔던 걸 알고 있어. 

네가 있을 자리를 찾았고, 그 자리에서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했지. 

그래, 당장 내일 사라져도 상관없는 바람 같은 역할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중요한 일을 하고 싶었던 거야. 

책임이 어떤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 너는 아직 다 알지 못했을 거야. 

그저 워밍업은 이만 끝내고, 어서  본 게임에 투입되고 싶었던 거지. 

스스로가 벌인 일을 스스로 책임지면 된다고 생각했을 거고.


2023년에 나는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게 되었어. 

그리고 그 책임감이 동력이 되어, 힘들고 지쳐도 계속 나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그러나 나는 네가 스스로 추동하는 방식이 아닌, 타인에 의해,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들이 있음을 

조금은 천천히 알아도 된다고 생각해. 너를 키우고 지켜주고, 책임을 져 주는 좋은 상사를 잘 만나야겠지만. 



'자신의 뾰족한 부분과 개성을 모두 버리고 용광로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너의 사뭇 비장한 결심이, 생각이, 오류였다는 것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거야. 


오히려 난 그렇게 생각해. 그때 용광로에 뛰어들어 불순물을 제거했던 거라고. 순도 높은 물질로써 새로 빚어질 형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거라고. 그렇게 다 녹아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본래의 기질은 절대 없어지지 않더라. 그땐 죽어도 모를 거야. 정말 그래. 그때 나는 정말 알지 못했어. 그저 어떤 가능성을 포기했다고, 그 길로 향하는 문을 영원히 걸어 잠갔다고 생각했었거든. 


물론 알지 못했기 때문에 더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기긴 했지. 물론 지금의 너는 알지 못하는 이야기야. 

무언가를 포기했다고 생각했기에 너는 모험을 시작한단다. 

그래, 이 시기가 그 모험의 단초였구나.


모험 전의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너는 누구나 볼 수 있게 치솟은 랜드마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모퉁이를 한번 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길을 발견했지. 물론 혼자 발견한 것은 아니었어. 그 길을 안내한 자가 그때까지 너와 관계를 오래 쌓아온 같은 팀 피디님들이 아닌, 데면데면한 다른 팀 피디님이었다는 것이 참 재미있는 포인트였지. 


2014년. 하반기. 이제부터 너에게 가장 중요했던 3년의 시간이 펼쳐지게 돼. 



커버 사진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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