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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 Feb 05. 2021

많은 계획들, 멋진 생각들.

도취 끝에 있는 것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마치 머릿속에서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것 같다.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아이디어와 생각들이 팡팡 터져 나오는 때. 그럴 때면 나는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천진난만해진다. 

모험을 떠나기 위해 준비물을 챙기고 지도를 보듯, 내 생각과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킬 계획을 짠다. 

뭐든 좋은 생각인 것 같고 뭐든 잘될 것만 같다.

많은 계획들, 멋진 생각들이 가득하다. 도취의 시간이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까지 그런 도취의 시간을 보냈다. 지난주는 계획을 짜고, 약속을 잡고, 미팅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면 이번 주는 월요일부터 계속 미팅과 회의와 미팅과 미팅의 연속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힘들어하는 편이었지만, '너무 애쓰지 말자. 그냥 나답게 있자'는 생각을 한 후로는 조금 편해졌다. 감독들과 나 사이에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고, 스스로에 대해서든 작품에 대해서든 진솔하게 생각을 표현하며, 무엇보다 유머가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다만 저 삼박자가 맞지 않으면 내겐 다른 별 사람 같다.) 

수요일쯤 되니 흥분 상태가 되어 그냥 '이 한 몸 뭐 어떻게 되기라도 하겠어'라는 심정으로 흐름에 몸을 맡기고 하늘을 날았다. 


당장에 일이 성사가 되지 않았지만 유의미한 이야기를 나누고, 내게 자극을 주는 즐거운 만남이었다. 그래도 집에 돌아올 때쯤 되면 나는 꽤 지쳐있곤 했다. 평일 저녁에 쓴 글들은 모두 제대로 끝을 맺지 못했다. 피로하고 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도 있지만 나는 아직 도취의 시간 안에 있었다. 흥분 상태에서는 감정만 연속성 없이 터져 나올 뿐이다. 정리된 글을 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음식점 및 술집이 저녁 9시까지 영업하다 보니 미팅이 식사까지 이어져도 9시 전에는 집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씻고 끄적이다 11시 전에 잠들었다. 


금요일이 찾아왔다. 일찍 잠들었기 때문일까. 새벽 다섯 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많은 계획들. 멋진 생각들... 

계획들은 내가 생각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 것들도 많고, 멋진 생각들은 멋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 버려지거나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 나간다. 이제 흥분이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침잠의 시간'이 다가온다. 벌려놓았던 일들을 점검하고, 내가 받은 자극들에 대해 곱씹고 생각하는 시간. 이 시간은 필연적으로 외롭고 쓸쓸하다. 도취의 끝, 축제 말미의 풍경이 늘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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