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의 시공을 넘나드는 관조적 시간여행 이야기
드디어, 아이작 아시모프!
어쩌면 '드디어'라는 수식어 대신 '아직도'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SF의 3대 거장인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서, 로버트 하인라인은 이미 반세기 전의 사람이니까. 그래서 이들의 이름, 특히 아이작 아시모프의 이름을 듣게 되면 솔직히 진부하다. 어린 시절에 SF를 탐닉했던 이들에겐 특히 그러할 것이다. 국내 90년대 SF의 중심이었던 아시모프가 21세기가 시작된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냐고 되묻기도 한다. 물론 그들의 이런 물음들은 당연히 합당하다. 40-50년 전 SF 작품이 지금 과학수준으로 볼 땐 그다지 유효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작 아시모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정도의 작가를 훌쩍 넘어선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욱 방대한 양의 저작을 남겼고 그중 너무나 읽고 싶은 많은 책들이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게 현실이니 말이다. 90년대 중후반까지만 국내 출판사를 통해 아이작 아시모프의 SF들이 소개되었다. 그 이후 더 이상 소개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양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책을 읽지 않는 국내 환경이 가장 큰 원인이고, 다음으로 국내의 SF 독자층이 워낙 종이장처럼 얇기 때문이다. 거의 마니아층만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번역해도 팔리지 않았던 게 현실이다.
거의 15년 만에 아시모프의 초역본 <영원의 끝>이 국내에 소개되다
2000년대 후반에 재출간된 아시모프의 단편집 <골드>가 있지만 국내에 미 소개된 초역본은 여전히 들어올 기미가 없었다.(깨알 같은 자랑하나. 나의 책장에는 96년도에 출간된 <골드>가 살포시 빛을 내며 잠들어 있다. <골드>의 다양한 단편들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반짝반짝 빛난다.) 다행히도 2012년에 <영원의 끝>이 드디어 초역본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물론 이 책도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몇몇 SF 마니아들에게 '미친듯한' 환호성을 받으며 팔렸다.(물론 2014년도 초에 확인했을 때 3쇄가 마지막이었는데 이 정도면 잘 팔린 성적표라고 보인다. 국내 시장에서는 이 정도가 한계일지도 모른다.) 또한, 아시모프 팬들의 오랜 염원이던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황금가지 출판사를 통해 새롭게 출간되면서 다시 아이작 아시모프에 대한 관심이 살아났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고 있다.
<영원의 끝>은 아주 잘 만든 시간여행 이야기다. 시간 여행 자체에 대하여 논했다기보다는 인류의 삶에 대한 조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미래에 호모 사피엔스(아주 먼 미래지만 여전히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종이다)는 드디어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시간여행을 통해 그들은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는, 시간과 무관한 시공간을 만들어 내는데 그곳이 바로 '영원'이라는 곳이다. 이 영원에 사는 사람들을 영원인이라 부르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은 시간인이라 불리게 된다. '영원'인들은 과거와 미래를 조망해서 최대한 실패를 줄이고 좀 더 안정적인 형태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현실 변경'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영원인들이 호모 사피엔스의 전세대를 관조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확률을 통해 각 시대, 세대를 조정하고 조율한다. 아시모프는 '기교가', '관찰가', '계산가' 등의 새로운 영원인의 직업군을 만들어내며 책 속으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1번만 읽고선 이 책의 줄거리만 보인다. 최소한 2번은 읽어야 줄거리 이외에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아시모프의 생각과 사상이 보인다.
<로봇 시리즈> <파운데이션 시리즈> <우주 3부작>에서 언급되었던 은하 제국이 <영원의 끝>에서도 언급된다
아주 잠시지만 <영원의 끝>에서도 은하 제국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영원인이 존재하는 현실에서는 인류가 만든 은하 제국이 형성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커다란 '현실 변경'을 통해 은하 제국이 나타날 수 있는 확률이 커진다. 이 은하 제국은 결국 <로봇> <파운데이션> <우주 3부작>과 연결된다. 순서로 보면 <영원의 끝>에서 시작해 <로봇> <파운데이션> <우주 3부작> 순으로 될 것이다.(우주 3부작은 <파운데이션> 사이사이에 들어갈 수도 있다.) 물론 <영원의 끝>을 로봇 앞 부분에 넣기보다는 독립적인 작품으로 봐야 하지만 머 어떠하랴. 국내에 출간된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중편, 장편, 시리즈를 거의 다 읽은 독자의 느낌이 그렇다고 하는데 말이다.(국내 번역된 모든 작품을 읽었다고 감히 이야기하지는 못한다. 어딘가에 빠트린 단편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책에 대해선 후기를 쓸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쓰더라도 그 책에 대한 느낌을 제대로 뽑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로봇>,<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수 번을 읽었지만 여전히 그 책들에 대해 언급하기가 조심스럽다. 그만큼 뛰어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이 책을 읽으며 문득문득 떠오른 생각들이다.
1. <영원의 끝>을 읽으며 떠오른 책이 있다. 폴 앤더슨의 <타임 패트롤 시리즈>다. <타임 패트롤> 주인공인 맨스 에버라드도 떠올랐고 역사가 뒤틀려 미래가 큰 틀로 변화되면 존재하지 못할 데이넬리아인이 타임 패트롤을 컨트롤하는 장면도 그려졌다.
2. 아이작 아시모프의 시리즈에서 그 아련한 이름 '해리 셀던'이 몹시 그리워졌다. 그가 만들어낸 심리 역사학은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고 분석해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예측하는 것이었다.
3. 심리 역사학은 <파운데이션>이 나올 당시 하나의 소설 속 가정이었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세상에는 이것이 학문의 영역으로 포함될 것이다.
4. 당연히 로봇공학 3 원칙도 떠올랐다.
5. <로봇> <파운데이션> <우주 3부작> 및 수많은 단편들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감상을 적고 싶다. 과연 언제가 될지...
5. 다음에 <영원의 끝>을 읽게 된다면 공기 좋은 온천마을 같은 곳에서 햇살 비치는 식당에 머물며 읽고 싶다.
폴 앤더슨의 타임패트롤 시리즈다. <영원의 끝>과 마찬가지로 시간여행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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