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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Feb 25. 2016

책을 선물한다는 것

책 선물만큼 까다로운 작업은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의 마녀>를 선물 받았다. 이 책은 이미 구매되어 나의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곧 읽을 예정이었던 이 책을 지인이 선물해 준 것이다. <라플라스의 마녀>를 선물 받고 나서 한동안 이 책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다. 선물로 받았는데 다른 누구를 주기도 그랬다. 결론적으로 2권 중 한 권의 <라플라스의 마녀>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시 전달되었다. 나는 지나가는 말투로 슬쩍 "라플라스 읽었냐?"라고 물었고 그(그녀)는 "시간 여유가 나면 읽으려고 아직 구매하진 않았지"라는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책 선물을 4번 받았다. 이 중 2권은 소중하게 간직하며 지금도 종종 가지고 다니며 읽는다. 나머지 두 권중 한 권은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했고 한 권은 한번 읽고 책장에 쌓아두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책장에 동일한 책이 있기에 그 책을 좋아할 만한 분에게 전해드렸는데 이런 일들 때문에 책을 선물로 주는 것은 살아가며 가장 어려운 일들 중 하나로 여겨진다. 책이란 물건이 묘해서 선물했는데 이미 읽었거나 책장에  구비되어 있거나 아니면 선물 받았지만 읽지 않아 먼지만 쌓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책에 대한 취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서일 것이다. 정치적 성향이나 음식 취향은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라도 대략적 파악이 가능하다. 하지만 책에 대한 취향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어봐도 쉽사리 알기가 어렵다. 실은 본인도 자신이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소설이라면 좋아하는 작가를 파악해 그 작가의 신작을 선물하면 간단하다. 하지만 소설책을 제외한 서적을 선물할 경우 신중해야 한다. 최신 베스트셀러라도 베스트셀러이기에 이미 책을 읽었을 경우가 있고 '고작 베스트셀러'냐 라는 안목에 대한 험담에 노출될 수가 있다. 어찌 보면 베스트셀러라는 것이 판매가 잘되긴 하지만 아무런 고민 없이 책을 구매했다는,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는 그 느낌이 들 수도 있기에 말이다. 여러분들도 책 이외의 선물 받을 때에도 비슷한 감정을  한 번씩은 느끼지 않나?


책 선물과 비슷한 정도로 애매한 것이 하나 있는데 와인을 선물하는 것이다. 식사를 함께 해보지 못한 사이에 그 사람이 선호하는 와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와인은 책과 달라서 와인셀러에 보관 중인 동일한 와인을 선물 받아도 오히려 좋다. 훨씬 좋다. 와인셀러에 보관 중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의미를 부여한 와인이라는 말인데 그와 동일한 와인을 받으니 완전 취향저격인 셈이니까. 그렇지만 와인 역시 위험성이 크다. 부르고뉴와 샴페인만 즐겨하는 사람에게 보르도의 맛깔난 그랑크뤼 등급의 레드와인은 취향 저격에 실패한 경우니까 말이다. 와인을 한 번이라도 함께 하게 되면 넌지시 어떤 와인을 선호하냐고 자연스레 물어볼 수가 있기에 책을 고르는 그 과정보다는 확률이 높다. 또한 가격대를 어느 정도 높이기만 해도 성의를 보여주는 것이 된다.


어쩌면 책을 선물한다는 것은 비슷한 가격대에서 고르는 로또가 아닐까 생각된다. 책에 대한 눈을 갖추고 서점에서 책을 훑어보더라도 구매 후 성공 비율은 70퍼센트가 채 안된다. 스스로 고르는 책도 이 정도의 성공률이 최대치다. 결국 본인의 책 취향도 본인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도 책에 대한 취향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기에 상대방에게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답이 나오는 상황도 아니다. 결국 책 선물이란 눈 감고 던진 다트가 10점을 맞추는 그런 상황을 기대해야 하는 것이다.  




2년간 선물 받은 4권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책은 이명현 박사가 지은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이다. 이 책을 선물해준 분은 책 속에 '어쩌다 알게 된 책인데 읽으면 마음에 별이 쏟아지는 듯 평온하고 행복해지는 글'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혹시 이미 읽었던 책이 아니길 바라며'라고 적어주셨다. 정말 고맙게도 이 책은 이미 다른 지인 집에 방문했을 때 그 자리에서 완독 한 책이다. 하지만 곁에 두고 계속 읽고 싶었기에 다시 사려고  마음먹었던 책이기도 하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가방에 들고 다니며 틈틈이 내용을 되새긴다. 5번은 훌쩍 넘게 읽어서 이미 외울 만도 하지만 늘 새롭다. 별 볼일 없는 삶에서 별 볼일 있는 삶을 만들어 줄듯한 이런 책 선물은 그 자체로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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