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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Feb 25. 2016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호텔>

아가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이 떠오른다


호텔과 특급열차는 닮았다

호텔을 찾는 수많은 군상들은 작은 사회를 표방한다. 특급열차 역시 마찬가지다. 대륙을 횡단하는 호화로운 특급열차를 타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 코르테시아 도쿄 호텔을 찾는 투숙객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준다. 호텔의 비품을 가져가고 이를 통해 허위 절도로 보상을 요구하려는 커플부터 싱글룸을 예약하고 클레임을 통해 스위트룸을 얻으려는 자, 시각장애인인지 애매한 그녀, 불륜의 그들, 해고를 당한 것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자, 스토커 등이 나온다. 어쩌면 호텔이라는 상상 속의 마을로 가기 위해선 우리 모두 가면을 써야 출입이 된다고 저자는 생각한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호텔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다양성은 특급열차를 연상시킨다. 호텔의 다양한 군상들을 보면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이 머릿속 언저리에 계속 머무르는 것은 이러한 연관성 때문이리라.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진실은 드러난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은 너무나 다양한 사람이 한 곳에 모여들었다. 그것이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의 특징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탄생시킨 멋진 형사 포와로는 이스탄불에서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탄다. 총 13명이 탑승한 이 열차에서 한 사업가가 포와르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했고 포와르는 이를 거절하게 된다. 당연히 다음날 이 사업가는 살해된다. 추리소설에서 이런 전개는 필연적이다. 또한, 열차라는 공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에 폭설로 열차는 멈추게 된다. 폭설에 운행이 중단된 특급열차 내에서 포와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한다. 폭설이 내린 이 시간 동안 열차에 탄 손님의 가면이 하나씩 벗겨지는 것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을 처음 읽게 되면 이상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각기 다른 나라 출신의 전혀 연관성 없는 탑승객은 오히려 서로의 알리바이를 교묘히 충족시켜 준다. 그것도 너무 잘 어우러진다. 톱니바퀴처럼 말이다. 서로 다른 군집이 한 공간에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특급열차 내에서 가면을 쓴 손님들이 사슬로 연결된 듯한 그런 느낌. 어쩌면 호텔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특급호텔을 출입하는 '특급' 손님들은 전부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들을 연결해 주는 가면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밀실이라는 긴장감

추리소설에서 밀실이라는 그 느낌은 항상 긴장감을 준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밀실이라는 단어에서 집 안이라던가 산장이나 특정한 공간을 상정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 밀실을 좀 더 확대 해석한다. 호텔이라던가 기차라던가 비행기라던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스커레이드 호텔>과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은 다양한 군집의 사람이 밀실에 모이는 그 느낌이 비슷하다. 그래서 이 두 작품에 나오는 손님들의 분위기가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사건의 전개 방식은 <ABC 살인사건>의 그것과 닮았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 사건이 전개되는 주요 방식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과 비슷하다. 도쿄의 각 지역에서 일련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들의 특징은 현장에 남겨진 종이에 적힌 숫자다. 이 종이를 바탕으로 경찰은 연쇄살인임을 확신하고 4번째 연쇄살인을 막기 위해 코르테시아 도쿄 호텔에 잠입하게 된다. 호텔에 투입된 뛰어난 형사인 닛타는 호텔리어로 변신해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담당하며 범인을 색출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런 닛타를 최소한의 호텔리어로 보이게 끔 만들어 주는 나오미는 최고의 호텔리어다. <ABC 살인사건>에서도 범인은 어떤 살인을 위해 다른 살인이 진행되도록 하는데 이 방식이 <매스커레이드 호텔>과 비슷한 느낌이다. 결국 이 책은 분위기는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 전개 방식은 <ABC 살인사건>이 계속 오버랩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으며 아가사 크리스티와 포와르의 향기가 느껴졌으니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모두 읽을만한 것은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작품이 뛰어나진 않다. 하지만 10개 정도의 작품은 2-3번 읽을 만한 작품들이다. 최근에 출간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던가 기존 추리소설의 규칙을 흔든 <명탐정의 규칙> 등은 몇 번씩 읽어도 즐겁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중반까지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범인의 동기 부분이 억지스럽다. 다시 말해 범인이 1년이나 지난 시점에야 그러한 범죄를 구상했는지에 대한 개연성부터 두 명을 살인하려는 사람 치고는 살인의 정당성이 성립되지 않았기에 말이다. 하지만 중반까지 매우 흥미로웠으며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호텔이라는 가상의 공간 속으로 들어오면서 자신의 가면을 하나씩 내려놓는 그러한 장면은 인상 깊었다. 호텔이나 특급열차는 가면이 스르륵 벗겨지는 그러한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는 멋진 표현들

히가시노 게이고는 호텔이라는 공간의 속성을 아주 정확히 집어낸다. '호텔이란 하나의 건물에 지나지 않지만 그 내부는 작은 마을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복잡하다.' '호텔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손님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면무도회를 즐기기 위해 호텔에 찾아온다.'



자 그럼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어떠한 상황에서 읽는 것이 제일 재미있을까? 난 단언할 수 있다. 이 책은  해외여행을 떠나서 호텔에 머물며 읽으면 좋은 책이다. 객실에서 읽는 것보다는 호텔 로비로 내려와 커피를 한잔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읽어야 한다. 이 호텔에서는 어떠한 가면들이 돌아다니고 어떠한 가면이 벗겨질지를 상상하며 말이다.


이번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3번째 형사가 만들어졌다. 닛타 형사로 '유가와 교수'와 '가가 형사'의 뒤를 잇는 캐릭터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에 나오는 캐릭터인 '나오미 호텔리어'와 '닛타 형사'가 보고 싶으면 <매스커레이드 이브>를 읽으면 된다. 이 책은 <매스커레이드 호텔>의 이전 시절에 대한 연작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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