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은퇴한 지금,
나의 하루는 음악과 함께 호흡한다.
24시간 중 16시간 이상이 음파에 젖어 있다.
이는 취미를 넘어 생체 리듬이 되었고,
시간의 흐름을 재는 또 다른 시계가 되었다.
발바닥에 새기는 리듬
산책길엔 언제나 댄스 음악이 동행한다.
숲길에 흩뿌려진 피아노 선율보다 강렬한 비트가 발걸음을 살린다.
둥둥-쿵쿵하는 베이스 드럼이 발바닥을 통해 척추를 흔들 때,
비로소 자연과 내 몸이 하나로 통한다.
나무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스포트라이트가 되고,
바람이 일으키는 나뭇잎 소리가 박수갈채가 된다.
걸음걸음마다 심장 박동과 음악이 동기화되는 순간,
운동 효과는 덤이다.
이 리듬은 지구의 자전 속도와도 맞먹는 우주의 규칙이다.
욕실에서 피어나는 콘서트
목욕탕은 나만의 도파민 제작소다.
뜨거운 증기 속에서 스피커를 향해 목청을 돋우며
부르는 팝송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제다.
물보라가 타일을 치는 소리가 심벌즈가 되고,
메아리치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리버브(reverb)가 된다.
"Yesterday~"를 부를 땐 비누 거품이 추억의 파편처럼 공중에 뜨고,
"나 어떡해~"를 외칠 땐 샤워 헤드가 무대 분수처럼 춤춘다.
욕실 타일은 나를 에코해 주는 최고의 관객석이다.
잉크와 선율의 교향곡
글을 쓸 때는 클래식이 흐른다.
차이콥스키의 〈비창〉 2악장처럼 고요하지만
내면에 파도가 치는 곡이 좋다.
피아노 소나타의 물방울 같은 음표들이 키보드 위로 흘러내려 문장이 된다.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가 흐를 땐 글이 경쾌하게 써지고,
드뷔시의 〈달빛〉이 깔리면 문장에 은빛 안개가 낀다.
악보의 여백처럼 여운을 남기는 문장이 탄생하는 순간,
나는 작곡가이자 연주자가 된다.
소주잔에 담긴 트로트 한 잔
가끔 밤에 혼술할 때는 무조건 트로트다.
남진의 "빈잔"의 애절한 목소리가 소주잔을 채우면,
젊은 날의 추억이 알코올처럼 온몸을 휘감는다.
허리춤이 저절로 흔들리고 발장단이 나올 때면
세월이 거꾸로 간다.
쓰러진 버들 피리 같은 인생사가 후렴구에 녹아내린다.
남진의 **"인생은 빈술잔들고 취하는것~"를 따라 부르다 보면,
쓴웃음이 달콤한 감상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난다.
한 곡 끝날 때마다 마시는 한 모금이 인생의 쓴맛을 씻어낸다.
산책길의 댄스 비트는 내 발바닥에 지도를 새기고,
욕실의 팝송은 타일을 스튜디오로 바꾼다.
글 쓰는 책상 위 클래식은 잉크를 문장으로 만들고,
혼자 듣는 트로트는 소주잔에 옛날을 담아낸다.
이제 음악은 공기가 되었다.
숨을 쉴 때마다 폐를 채우고,
꿈꿀 때마다 혈관을 따라 흐른다.
헤드폰을 벗어도 귓가에 맴도는 멜로디들이 증명하듯,
나는 이미 악보 위의 한 음표다.
세월이라는 지휘자가 내리는 박자에 맞춰,
오늘도 내 인생의 교향곡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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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진의 '빈잔'과 최희준의 '하숙생'은 나의 18번 애창곡입니다. ㅎㅎ
이 노래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링크 합니다. 의미와 함께 감상해 보세요^^
- 임영웅 버전입니다.
https://youtu.be/oJtvMzzArJs?si=wUIuUvkQkP7BxvDA
- 최희준의 하숙생
https://youtu.be/46DhY9Vqurs?si=alwFEVKu4h11EzZ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