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VSF 갤러리의 임대 문의 안내문을 본 순간,
마음 한편이 무너져 내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남동 거리는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앞다투어 진출하며 활기로 넘쳤다.
쾨닉 갤러리, 원앤제이갤러리까지,
하나둘 문을 닫거나 무기한 휴업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니 씁쓸함이 밀려온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문화를 대하게 되었을까.
명품 매장 앞에는 긴 줄이 서고,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사기 위해 대기번호표를 받아 든다.
하지만 갤러리는 한산하다.
몇십만 원짜리 판화 한 점 사는 것을 망설이면서도,
같은 가격의 핸드백은 주저 없이 구매한다.
이 모순적인 소비 패턴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미술시장 침체의 적나라한 단면이다.
명품은 브랜드 가치를 몸에 걸치는 것이고,
미술품은 영혼에 새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영혼보다 겉모습을 더 중시하게 되었을까.
SNS에 올릴 사진 한 장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지갑을 열지만,
평생 곁에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작품 앞에서는 계산기를 두드린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입으로는
문화예술을 사랑한다고 외친다는 점이다.
미술관에 가서 인증샷을 찍고,
전시 리뷰를 SNS에 올리며 문화인임을 자처한다.
하지만 정작 작가와 갤러리를 실질적으로 후원하는 일에는 인색하다.
무료 전시는 북적이지만, 작품을 구매하는 컬렉터는 극소수다.
쿠사마 야요이의 7억 원대 작품도 조각투자 청약률이
50%에 못 미쳤다는 소식이 이를 증명한다.
세계적 작가의 작품조차 외면받는 현실 앞에서,
신진 작가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갤러리들이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문을 닫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프리즈 서울마저 철수 가능성이 거론되는 지금,
우리는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문화예술이 사회의 품격을 결정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문화를 지탱하는 생태계에는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가.
명품 가방 하나 사는 돈으로 신진 작가의 작품을 구매한다면,
그 작가에게는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갤러리에게는 다음 전시를 열 수 있는 자본이 된다.
결국 그것이 우리 문화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길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진정한 문화 사랑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벽에 걸린 작품 한 점이 가방 열 개보다 더 오래,
더 깊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