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그림자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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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랜만에 고교 동창 모임에 나갔다.

"오랜만에 동창회인데 나만 후달려 보이지 않아?"
옆자리에서 웃으며 묻는 말에
나는 습관적으로 던졌다.


"왜? 회사 일이 힘들어?"


그 순간 칼날 같은 목소리가 꽂혔다.


"야, 눈밑 다크서클 안 보여?
너는 은퇴하고 노니깐 모르지?"


상대방의 말에 가벼운 걱정의 마음으로 왜냐고

물어봤을 뿐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날 선 대답이었다.

‘말을 해도 꼭 저렇게 해야 되나.’ 선의의 관심이 불쾌감으로 바뀌려 했다.


그의 표정에는 악의가 없었지만,

말끝에 박힌 가시는 내 가슴을 스쳤다.

그 자리를 떠나며 생각했다.

우리가 던진 말의 파편은 상대의 영혼에 상처를 남기고도,

정작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고.



언어라는 거울


유교 경전은 ‘언위심성(言爲心聲)’이라 가르친다.

말은 마음소리의 화신이라.


“말로 망한 자는 기술의 부족이 아닌 내면의 공허 때문”


거친 언어는 분노의 화산을,

과장된 표현은 마음의 궁핍을,

끝없는 자랑은 안정감의 부재를 드러낸다.

헐뜯는 말속에는 열등감의 씨앗이 스며들고,

비판의 화살 뒤에는 아픔이 숨어 있다.

우리의 혀는 생각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오직 마음의 깊이만큼 말이 피어난다.



상처의 두 가지 길


책 『말의 품격』은 인간의 향기 ‘인향(人香)’을 말한다.


“말은 누군가에겐 꽃이 되고, 누군가에겐 창이 된다.”


모든 인간은 상처를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상처가 삶의 전부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상처로 성장의 디딤돌을 만드는 이도 있다.


한 여인의 일화가 떠오른다.

아동기 학대의 상처를 안고 30년간 주변을 찌르는 말을 뿌리던

그녀가 심리 상담실에서 처음 울음을 터뜨렸다.


“저를 다치게 한 사람들을 계속 원망하며 살아도 될까요?”

상담사의 대답은 간결했다.


“상처는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침묵의 지혜


한자 ‘言(말씀 언)’자는 두 개의 ‘二(두 이)’와 ‘口(입 구)’로 이루어졌다.

두 번 생각한 뒤 입을 열라는 현인들의 가르침이다.

말의 품격 ‘언품(言品)’은 이 침묵의 연습에서 시작된다.

격려의 말은 행복한 마음에서,

진실된 고백은 담대한 영혼에서,

부드러운 위로는 풍요로운 사랑에서 흘러나온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이는 말하기 전에 귀를 열고,

겸손한 이는 과장 없이 사실을 전한다.

그들의 입술에서는 꽃향기가 난다.



치유의 언어


그의 날선 말은 나를 향한 창이 아닌 자신의 아픔을 가리려는 방패였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상처를 마주하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이라고.

거친 언어 뒤에 숨은 비통을,

과장된 수사에 가려진 불안을,

헐뜯는 말에 담긴 외로움을 보는 것이 우리 시대의 영성(靈性)이다.

청자(聽者)의 이해는 말하는 이의 상처에 생명의 연고를 바르는 일이다.


말의 그림자가 짙을수록
마음의 빛은 더욱 절실하게 기다린다
우리의 혀가 뿜는 모든 칼날은
정작 자신의 가슴을 가르는 수술칼임을.
상처는 말이 되어 튀어나오고
말은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


카페의 커피 향기는 여전하건만,

그날의 쓴 말은 이제 깨달음의 향기로 변했다.

내 안의 분노가 말을 거칠게 할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가시 밑에 숨은 나의 상처는 무엇인가’라고.


타인의 언어에서 상처를 읽을 줄 아는 자만이

자신의 마음에 새겨진 비문(碑文)을 해석할 수 있다.

모든 거친 말은 결국 이 세상에 던져진 외침이다.


“내 아픔을 보아주세요.”


그 외침을 들을 때,

비로소 우리의 대화는 치유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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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_6YjfYTIbrQ?si=B6MhBsl7x8-jMt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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