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시험 잘 봤어? 난 완전 잘 본 듯!" 철수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난 망했어." 영희는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하지만 성적 발표 날, 결과는 정반대였다.
영희는 전교 1등, 철수는 하위권이었다.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본 이런 상황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바로 '더닝-크루거 효과'라는 심리학적 현상의 전형적인 사례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실력이 미숙한 사람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자신을 실제보다 뛰어나다고 믿는 현상이다.
반대로 숙련된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코넬 대학의 저스틴 크루거 교수와 데이비드 더닝이
진행한 실험이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들의 실험은 흥미로운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
1995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맥아더 휠러라는 남자가 은행을 털었다.
놀랍게도 그는 얼굴을 전혀 가리지 않고 범행을 저질렀다.
CCTV에 선명하게 찍혀 1시간 만에 체포된 그에게 경찰이 영상을 보여주자,
그는 "레몬주스를 발랐는데...?"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비밀 편지를 쓸 때 사용하는 레몬 잉크를 얼굴에
발라 자신이 투명해졌다고 믿었던 것이다.
연구진은 45명의 대학생에게 논리적 사고 시험을 치른 후
자신의 예상 성적을 제출하게 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자신의 순위를 높게 예상했지만,
성적이 높은 학생들은 스스로를 낮게 평가했다.
특히 하위 12%에 해당했던 학생은 자신의 능력이 상위 32% 안에 든다고 생각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학생들에게 다른 학생들의 답안을 비교 평가하게 했을 때였다.
하위 25%의 학생들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학생들의
답을 보고도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다.
마치 레몬주스를 바른 은행강도처럼,
그들은 자신의 무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희망적인 결과도 있었다. 연구진이 실험 참가자 절반에게
논리 훈련을 제공한 후,
하위 25%의 학생들은 비로소 자신의 수행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하게 되었다.
반면 훈련받지 않은 학생들은 여전히 자신의 실력이 우수하다는 확신을 유지했다.
이 현상은 우리 일상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모 정치인이 "전국 3등을 했는데 차석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굳이 순위를 정정하거나,
"전교 1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고 덧붙이는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역설적으로 진정 실력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한계를 더 정확히 인식하고 겸손해한다.
더닝-크루거 효과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속담처럼,
무지는 종종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반면 진정한 지혜는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소크라테스의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우리는 모두 어떤 영역에서는 철수가 되고,
다른 영역에서는 영희가 된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학습과 성찰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이다.
그래야만 무지의 자신감에서 벗어나 지혜의 겸손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