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회사 사무실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깨달았다.
이건 삶이 아니다. 이건 생존이다.
아침마다 목줄이 졸리는 느낌으로 눈을 뜬다.
지하철은 살아있는 지옥이다.
서로의 숨결과 체온,
짜증과 체념이 뒤엉켜 한 덩어리의 고기를 이루며 움직인다.
내 양복 안에 갇힌 몸도 그 고기 덩어리의 일부다.
회사에 도착하면 모니터가 기다린다.
그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숫자와 문자,
무의미한 보고서의 파도가 밀려온다.
눈이 파열될 것 같다.
아침 내내 화면과 눈싸움을 하다 보면,
정신은 어느새 회색빛 미아가 되어 버린다.
점심시간은 유일한 구원이다.
식당 줄은 가축 사료 배급 줄과 닮았다.
긴 줄 속에서 서서, 앞사람 머리통을 응시하며, 내 차례를 기다린다.
덜 익은 김치찌개와 푸석한 밥을 입에 쑤셔 넣을 때,
그 순간만큼은 의식이 일시 정지한다.
그게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라는 사실이 슬프다.
화장실은 또 다른 전장이다.
상사의 구두 소리가 들리면,
앉아 있던 몸이 저절로 일어난다.
급한데도 참아야 한다.
똥을 싸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감정은 사무실 금기어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가슴이 부글댈 때도,
동료의 무능에 치가 떨릴 때도,
입가엔 무표정한 미소를 걸어둔다.
비위 맞추는 기술만 '만렙' 늘었다.
진심은 썩어가고, 표정만 프로페셔널해진다.
퇴근은 살아 돌아오는 일이다.
집에 도착하면 몸은 비로소 풀어지지만,
정신은 이미 굳어버렸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벽을 응시한다.
생각할 힘조차 없다.
이 멍한 상태가 몇 시간 지속되기도 한다.
'내일도, 내일모레도, 몇 년, 몇십 년을 이렇게?'
막막함이 목을 조른다.
차라리 프린터가 되고 싶다.
종이를 먹고 잉크를 뱉는 기계가 되는 게 낫겠다.
백수 시절,
비록 가난했지만 내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지금은 돈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시간 노예일 뿐이다.
진정한 자산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진리를 알면서도,
우리는 그 시간을 돈으로 바꾼다.
이게 과연 잘 사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값비싼 월급에 팔려간 노예일 뿐인가.
그러나 아침이 오면 다시 목줄을 매게 된다.
회사 문을 들어서며 목덜미가 저릴 때면,
그 문이 우리가 스스로 만든 감옥임을 안다.
그런 감옥을 못 들어와서 안달인 청춘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래도 어쩌겠는가.
힘내자, 양복 입은 사축(社畜)들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지옥이 영원하지는 안 타는 걸!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된 책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히노 에이타로 지음·오우아 발행)는 회사와 근로자의 일방적 위계관계로 생성된 사축 문화에 적절히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는 코믹 가이드북이다.
책의 저자는 사축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1. 노예형 사축: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회사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유형. 이들은 회사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일상적으로 서비스 야근을 강요받으며 일을 한다.
2. 충견형 사축: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 싶어하는, 지나치게 충성심을 보이는 유형. 회사가 힘들어지면 그만큼 고군분투하며 자신을 희생하는데, 이들은 회사가 실망할 때 종종 실망을 겪는다.
3. 기생충형 사축: 일은 잘하지 않으면서 회사의 복지를 최대한 누리려는 유형. 이들은 업무에서 벗어나 복지 혜택만 챙기며, 때로는 이런 태도가 다른 직원들의 질타를 받는다.
4. 주머니형 사축: 상사나 선배의 비위를 맞추며 승진을 목표로 하는 유형. 이들은 사내 정치에 집중하며, 상사와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5. 좀비형 사축: 충견형 사축의 극단적인 모습으로, 다른 동료들이 퇴근하거나 휴가를 갈 때 이를 비난하고 강요하는 유형. 이들은 자칫 회사에 의존적인 상태에서 자아를 잃을 위험이 있다.
이 첵은 사축 인생을 벗어나려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며, 개인의 삶을 우선시하고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직장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것을 권장한다.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경쟁력과 성과를 위해 일하라"는 조언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