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연애와 결혼
요즘 사랑은 엑셀 시트에 정렬된 숫자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결혼정보회사의 알고리즘은
키, 연봉, 학벌을 입자 단위로 쪼개어
'적합도'를 산출한다.
남녀는 주식 차트를 분석하듯 상대의 프로필을 들여다보며,
감정 대신 통계를 말한다.
사랑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조건이 사랑을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사랑만으로 집을 살 수 없고,
설렘만으로 육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보다는
'삶이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을 선택한다.
조건이 맞는 사람과 결혼하고,
이해타산이 정리된 계약을 기반으로 가정을 이룬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결혼이 우리를 끝까지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조건이 만든 외로움
내 주변에도 조건만으로 결혼한 부부가 있었다.
서로가 원하던 조건을 거의 완벽히 충족한 결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늘 의무로 가득했고,
스킨십은 서류에 찍힌 도장처럼 무미건조했다.
결혼 3년 만에 그들은 별거를 시작했고, 곧 이혼했다.
서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건은 다 갖췄는데… 왜 이토록 외로운 걸까?"
나는 묻고 싶다. 조건을 사랑한 것인가,
사람을 사랑한 것인가?
혹은,
조건 속에 묻혀버린 감정을 사랑이라 착각한 건 아니었을까?
사랑의 정의
조건을 사랑하든, 그 외 무엇을 사랑하든,
그것이 진심이라면 분명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사랑의 정의는 다르다.
나는 '숨 막히는 설렘'이 있는 사랑을 믿는다.
리처드 기어가 출연한 영화 Breathless처럼,
단 한순간의 눈빛만으로도 모든 이성이 무너지고,
가슴이 미친 듯이 뛰는 그 감정.
어떤 말보다 눈빛 하나에 삶의 모든 답이 담겨 있는,
그 숨 막히는 사랑 말이다.
그리고 나는 ‘죽어도 좋을 만큼 뜨거운 사랑’을 사랑이라 부른다.
영화 죽어도 좋아(원제: Phaedra, 1967)의 앤서니 퍼킨스처럼,
사랑이 죄가 되어도 멈출 수 없고,
운명이 파멸을 예고해도 달려드는 감정.
몸과 마음이 동시에 불타오르며,
이 세상 모든 도덕과 이성이 무력해지는 순간.
사랑이 삶이자 죽음이 되는 순간.
나는 그런 사랑을 ‘페드라 러브’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사랑은 영원해야 한다.
영화 Endless Love(1981)에서 브룩 쉴즈가 보여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사랑처럼.
청춘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어도,
기억 속에서 한 사람만이 끝없이 되살아나는 감정.
사랑이란, 결국 시간의 무게를 이겨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뜨겁고 나중에 식는 감정은 욕망일 뿐,
사랑이라 부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조건만으로 사랑을 정의하지 않는다.
사랑은 감정이다.
그것도 이성을 이기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다.
조건이 맞아도 마음이 뛰지 않으면, 그것은 계약일뿐 사랑이 아니다.
조건은 사랑을 시작하게 할 수는 있지만,
사랑을 지속하게 하지는 못한다.
끝내는 마음이,
눈빛이,
그리고 서로를 향한 열망이 사람을 사랑하게 한다.
사랑이란,
숨 막히게 설레고,
죽어도 좋을 만큼 뜨겁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나만의 사랑의 정의이며,
아직도 나는 그런 사랑을 꿈꾼다.
그대들이여.
현실은 조건을 말하더라도,
마음은 진짜 사랑을 찾길 바란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이런 사랑을 못해보고 떠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