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스킨십

제4장 연애와 결혼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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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는 눈 덮인 가지 끝에 맺힌 새싹과 같다.

서둘러 꺾어들이면 상처만 남지만,

봄햇살이 축축한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도록 기다려주면

어느새 온몸에 꽃이 만발한다.



찬란한 빙하기


요즘 사랑은 인스턴트커피처럼 뜨거운 물만 부으면 즉시 향기가 퍼진다.

첫 만남에 손을 잡고,

두 번째 데이트에 포옹하며,

셋째 날엔 이미 입술의 온도를 측정한다.


하지만 그 속도로 녹아내린 얼음은

곧 잔잔한 물웅덩이가 되어버린다.

표면에 반짝이는 달빛은 사라지고,

바닥에 가라앉은 티끌만 드러난다.


진짜 스킨십은 빙하가 녹듯 천천히 흘러야 한다.

손끝이 스치는 순간을 한 달 동안 간직하는 연습.

어깨가 닿은 자리에 머물러 있던 체온을 일주일 동안 되새기는 여유.


기다림은 빈 병에 노을을 채우는 일이다.

서두르지 않을 때 비로소 진한 색깔이 배어난다.





두 팔로 쓰는 편지


스킨십은 언어보다 정직한 신체편지다.

글로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손금으로 전하고,

말로 다하지 못한 애틋함을 손가락 관절에 새긴다.


하지만 이 편지는 한 번에 다 읽을 것이 아니다.

매일 한 문단씩 음미하듯이.

기다릴 줄 아는 연인은 손등에 입맞춤을 할 때도 시를 쓴다.

입술이 닿기 직전 3초의 공백에 모든 계절을 담아낸다.


그 간극에서 봄바람이 시작되고,

여름 소나기가 지나가며,

가을 이슬이 맺힌다.


포옹은 두 사람의 심장이 같은 박자로 뛰기까지 시간을 재는 숙제다.

허리를 감싸는 팔이 점점 따뜻해지는 걸 느낄 때,

비로소 하나의 호흡으로 합쳐진다.



30cm의 우주


사랑의 물리법칙을 안다는 건,

30cm 떨어진 입술 사이에 온갖 별자리가 펼쳐질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급하게 좁혀버리면 그 공간은 그저 빈 틈새지만,

천천히 좁히면 그 사이에 은하수가 흐른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1cm씩 가까워지는 거리,

그 미세한 간격을 측정하는 것이 현대인에게 남은 유일한 천문학이다.


사랑은 시작되기 직전이 가장 아름답다.

손끝이 스칠 듯 말 듯한 간격,

숨결이 섞이기 일보 직전의 정적,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무수한 가능성들.

스킨십의 미학은 '직전(直前)'에 있다.


손이 맞닿기 직전 느껴지는 손떨림,

입술이 닿기 직전 번지는 얼굴 열기,

포옹을 풀기 직전 찾아오는 새벽.

이 모든 것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소중한 이유는,

기다림의 모래알이 순간을 정제하는 필터가 되기 때문이다."



여름 과일은 겨울에 심는다


진짜 스킨십은 계절을 거스르지 않는다.

첫눈에 반한 열매를 그 즉시 따먹는 게 아니라,

추운 겨울 땅속에 묻어두는 인내.

푸른 싹이 돋아나는 봄까지,


그 열매가 썩어 거름이 되는 과정을 견뎌내는 용기.

기다림은 빈손이 아니라 두 손을 마주 쥔 상태다.

서로의 체온으로 키운 종자를 조심스레 풀어헤치는 의식.

급하게 벗겨내는 옷깃보다 천천히 풀려나는 리본이 더 아름다운 이유,

그것은 스킨십이 주는 최후의 시적 선물이다.


당신의 손길이 닿기 전, 그 공기가 먼저 사랑에 젖어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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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와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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