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연애와 결혼
나는 프러포즈를 하고도 한참이나 결혼 날짜를 잡지 못했다.
그해 여동생 셋이 연이어 혼인을 선언했으니,
아버지의 허리가 휘어질 각오를 해야 했다.
"결혼식 한 번에 기둥뿌리 하나씩 뽑힌다"는
어머니의 한숨이 내 귀에 쟁반처럼 맴돌았다.
그런데 아내가 전세 보증금 통장을 내밀었고,
자신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재가공해서 결혼반지로 쓰자는 제안을 했다.
"우린 가진 걸 나누면 돼 “
라는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렇게 우리는 봄날의 파편을 주워 담아 시작했다.
그런 사랑이었는데도,
신혼 초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밥상머리에서도,
잠자리에서도 서로의 기를 죽이려고 발버둥 쳤다.
"기싸움에서 지면 평생 밀린다 “
선배들의 충고가 내 등을 떠밀었다.
아내도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두 그루 나무가 땅속에서 뿌리로
밀고 당기며 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때로는 흙이 무너지고 잎이 떨어져도,
묵묵히 흙덩이를 발로 다졌다.
35년 동안 수없이 부딪혔다.
사소한 것들
화장실 뚜껑을 올릴 것인가 내릴 것인가,
라면에 계란을 풀 것인가 말 것인가.
액션영화를 볼 것인가 멜로드라마를 볼 것인가?
이 모두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화해는 싸움보다 늘 더 어려웠다.
먼저 손 내미는 것이 패배처럼 느껴질 때면,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의 불빛들을 세곤 했다.
'저 집들마다 우리 같은 부부가 있겠지.'
생각하면 어느새 옆방에서 코를 골던 그녀의 귀밑머리가
밤새워 책상을 치던 내 어깨보다 더 익숙해져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젊은 시절 사진을 꺼내며 웃었다.
"내 머리가 하얗게 섞이니, 당신의 완고함도 하얗게 우려 난 것 같아."
그 말에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버티는 동안 시간이 우리를 갈아 넣고 있었다는 것을.
다이아몬드를 재가공했던 그 여자가
이제는 내 단점까지도 보석처럼
연마해 손바닥에 쥐여주고 있었다.
결혼이란 두 사람이 서로의 뿌리를 내리게 하는 땅이다.
때론 바람에 흔들리며 모진 말을 뿌리 밖으로 내뱉기도 하지만,
깊이 내린 그 뿌리만큼은 흙 속에서 서로를 감아올린다.
이제 창밖의 아파트 불빛을 보며 드는 생각은 다르다.
'저기서도 누군가의 뿌리가 오늘도 살금살금 땅속을 기어가고 있겠지.'
우리의 싸움과 화해는 그 뿌리에 물을 주는 비가 되어주었음을,
오늘에서야 비로소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