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울음이란 무엇일까.
고통의 증언일까,
상처의 발산일까.
혹은 살아 있다는 마지막 언어일까.
파블로 피카소의 ‘우는 여인(La Femme qui pleure)’은
울음을 하나의 형상으로,
더 나아가 인간 존재의 단면으로 거칠게 꺼내 보인다.
그 울음은 아름답지 않고,
오히려 일그러졌으며,
단호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 우리는 묘한 숭고함을 발견하게 된다.
피카소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거부한다.
그의 여인은 고운 선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눈과 입은 찢겨 나간 듯 흩어져 있고,
눈물은 얼굴 위에 균열처럼 흘러내린다.
형상은 파편처럼 부서졌고,
색은 격렬히 충돌한다.
울음은 더 이상 고요한 감정의 흐름이 아니라,
세계를 찢는 비명처럼 다가온다.
이 그림은 1937년, 스페인 내전의 참화를 그린 게르니카의 연장선상에 있다.
피카소는 전쟁의 잔혹함을 한 여인의 울부짖음으로 응축시켰다.
그녀는 단지 개인의 슬픔을 넘어,
민중의 고통과 시대의 절규를 대변한다.
그래서 그녀의 눈물은 무겁다.
감정이 아니라 역사다.
그림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왜 우리는 울 때,
진정한 얼굴을 드러내는가.
웃는 얼굴은 수없이 연습할 수 있지만,
우는 얼굴은 숨길 수 없는 진심이다.
피카소는 바로 그 진심을 잡아채고,
그것을 부서진 색과 기이한 형태로 토해낸다.
눈물은 맑지 않다. 그것은 분노의 색, 공포의 결, 절망의 조각으로 이루어진다.
이 우는 여인을 보고 있으면,
나도 내 안의 울음을 떠올리게 된다.
억눌러온 감정들,
말하지 못한 슬픔들,
속으로 삼켜야 했던 눈물들.
우리 모두는 하나쯤 '우는 얼굴'을 품고 산다.
그것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언젠가 터져 나올지도 모를 울림을 안고 있다.
피카소는 그 울음을 억누르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증폭시킨다.
보라, 여인의 얼굴은 깨어졌지만,
그 조각들은 모두 살아 있다.
그 조각들이 말한다.
이 고통은 가짜가 아니라고,
이 울음은 세상을 향한 마지막 외침이라고.
그래서 ‘우는 여인’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에 울고 있는가?
그리고 그 울음은 들려지고 있는가?
그것은 단지 회화 속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질문이며,
인간성에 대한 절박한 물음이다.
눈물은 색으로 운다.
붉은 분노, 푸른 상실, 노란 외로움. 피카소는
그 눈물들을 모아 하나의 진실을 만든다.
그리고 그 진실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여인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살고, 사랑을 잃고,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울고 있는
우리 모두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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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슈만, 피아노 독주 〈다비드 동맹 무곡〉, Op 6
https://youtu.be/SmNFRsnjTZg?si=bmPYYq5jMXJQZuc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