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마지막 잎새"의 작가 오! 헨리 아저씨 묘지에서...

DaumEditor Wygiwyg Panel

warm springs - hot springs - corvington - jordan mines - new castle - new port - bland - saltville - damascus - mountain city - butler - hampton - erwin - marshal - hot springs - asheville 까지 애팔라치안 산맥 가운데 골짜기 길로 가기로 했다.    

예쁜 벽화가 있는 마을에 들러 카메라 배터리, T본 스테이크, 음료수, 물, 버섯, 등을 구입하고 장작도 구입해서 실었다.     

다리를 건너는데 호수가 보이기에 되돌아 가서 셔터를 누른 후 다시 건너왔고 별 것 아닌 듯한 사진도 이런 수고가 있어야 만들어 진다.    

숲이 울창하고 산세가 아름다워 이곳서 야영을 할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며 보니 호수가 아름다워 되돌아 가서 캠프장을 살폈는데 마음에 들었다.    

지난 번 다닌 곳은 링컨의 이름을 팔아 먹고 사는데 이곳 노스 캐롤라이나 애팔라치안 산맥의 마을은 이들 조상들이 내쫓은 체로키 부족의 이름을 팔아서 먹고 사는 지역이다.    

몇곳의 빈자리를 확인하고 마음에 드는 장소를 두 곳을 골라 서류를 작성하고 이곳으로 왔다.    

자리를 잡고 물가로 내려가 호수의 풍경을 보는데 작은 카약이 떠있는 것도 신기하고 무엇을 먹었기에 저런 체형이 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한끼에 햄버거를 열개씩 먹거나 피자를 열개씩 먹으면 저렇게 될 것도 같은데 남자는 손을 흔들며 가지만 나는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이라서 천막은 생략하고 차에서 자기로 했으며 삼각대를 세우고 기념사진을 하나 만들고 장작불에 T본 스테이크를 구워 저녁을 먹었다. 벌레먹은 나무를 공원관리 사무소에서 쌓아놓았기에 손도끼로 쪼개어 불을 피웠고 언덕에 있는 나뭇가지도 모조리 잘라 태웠다.     

산골짜기 작은 땅에 주택이 있고 그 옆에는 방문자 용으로 만든 것인지 한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예쁜 집을 만들어 놓았다.    

통나무 집이 보이면 조금 지나쳐 셔터를 누르려다가 일을 그르쳐 사진이 별로 없는데 발견 즉시 셔터를 누르고 위치가 좋은 곳을 찾아서 셔터를 다시 눌러야 그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좁은 계곡에 묘하게 자리한 아저씨 집인데 그곳에서 작은 농장까지 경영하며 트랙터로 길가의 풀을 모조리 깎고 있었다.    

큰길로 잠시 나와서 이동하였고.........   

다시 산골짜기로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지나온 모든 길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큰길이 나오면 작은 길로 들어가 산속을 헤매며 남쪽으로 갔다.     

농장 한편에는 어김없이 조상님이 사시던 이런 작은 옛집과 창고가 있는데 주변 잔디를 모두 깎아서 단정히 한 것을 보면 이들이 버려진 건물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후손은 더 큰 집을 짓고 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사시던 집을 거의 허물지 않는다.    

농장 건너에 작은 판잣집이 있어 들어왔는데 걸터앉은 저곳이 입구이며 창고 아닌 주택으로 쓰였던 것은 창고는 입구를 저렇게 높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며 저편에는 뒷간이 있다.    

옆의 산자락에는 생나무를 베어 소 우리를 만들어 나무를 걸쳐서 입구를 막는 전형적인 옛날 방식의 축사였다.   

한참을 가니 엉성한 돼지우리가 있고 철조망으로 둘러쳐 외적의 침입을 막아 놓았으나 늑대와 이리의 퓨마의 습격을 막을 수 없는데 조금 지나치니 바로 옆 숲에 주택이 있고 그곳에서 개짖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늑대나 곰이나 개와 상극이고 침입하면 주인의 총탄에 목숨을 잃어야 하니 엉성한 우리에서 돼지들은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돼지우리 주인은 살아가는데 겨울이 되기 전에 저녀석 중 하나를 골라 훈제 햄으로 만들고 삼겹살을 발라내어 연기에 그을려 베이컨을 만들 생각을 하면.........    

잔디깎는 귀신이 붙은 주인이 사는 집이며 대략 5000 평 대지에 잔디를 심었고 이렇게 잘 다듬으려면 한달에 두번은 깎아줘야 하는데 이들은 잔디 문화에 익숙해서 전혀 귀찮아 하지 않는다.    

산골 주유소와 가게........   

계곡 건너에 폐허가 된 작은 농장이 하나 있는데 마차가 다니던 시기에 운영하다가 포장도로가 만들어 지면서 보상금을 받고 폐쇄된 농장이었고 그런 이유로 농장으로 건너다니던 통나무 다리도 이렇게 옛모습으로 남아있다.    

핫 스프링스 마을에서 마샬 마을로 가서 애쉬빌 시티로 가기로 했다.    

이곳에 왔다가 방향이 잘못되어 다시 핫스프링스로 가고 오락가락하는 길이었으나 재밋는 시간이었다.    

몇 마일을 되돌아 가도 불만도 없고 문제도 없으며 다니는 모든 길이 내가 가야했을 길이기에 즐겁기만 하다.     

하지 않던 도끼질을 너무 심하게 해서 아랫배 부위에 통증이 심하였고 뜨거운 온천욕을 하려고 왔는데 아이폰을 꺼내니 인터넷 연결이 전혀 안되고 전화도 불통인 지역이어서 우선 핫 파스를 붙였고 애쉬빌 시티로 가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세상 풍경에 간섭은 모조리 하면서 다니던 시간.........   

이번 여행에서 Asheville 을 거치기로 한 것은 3년 반 전에 (마지막 잎새) 의 작가 오 헨리 아저씨 장례식을 한 맨하탄에 있는 교회를 방문한 때 기회를 만들어 그의 무덤을 가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몇년이 흘렀지만 기억하고 있다가 이번에 방문하기로 했다.  

십대의 나이에 읽었던 마지막 잎새의 감동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으며 서양 소설 가운데 가장 감명 깊게 읽었고 한국의 소설로는 작가 이병주 (낙엽) 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그것이 가장 기억에 남으며 지금도 활동하는 얼빵이 작가들이 쓴 소설은 옛날에 하도 선전이 요란해서 구입해 서너 페이지 펼친 후 바로 쓰레기통으로 집어던진 것이 많다. 그중 하나가 2X수 이며 그의 책은 이후로 본 적이 없고 황SY 그의 글도 깊이가 없어 뭔지 하나를 보다가 던졌는데 소설은 전개 과정이 만화와 구별이 되어야 함에도 만화가 수준에 미달되는 작가가 너무도 많으며 그래서 한국 소설은 단편소설이 더욱 깊이가 있다.    

http://blog.daum.net/jamesju_usa/501 <-- 이것을 누르면 즉시  오 헨리 아저씨의 장례식을 거행한 맨하탄에 소재한 유서깊은 교회를 방문한 이야기가 있으며 소설 마지막 잎새의 이야기는 이곳을 참조하면 된다.    

오 헨리 아저씨의 딸 무덤은 그의 발치에 있다.    

옆에는 부인 사라의 묘지.........   

윌리엄 시드니 포터가 오 헨리 아저씨 본명이다.    

사무소에 들러 위치를 물으니 지도를 꺼내어 표기해 주면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묘비에 18 센트의 동전을 올려 놓는다고 해서 의아했다.  

한국에서라면 욕하는 의미겠지만 미국서 18 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는데 하여간 주머니를 뒤져 18개 페니를 찾아 그의 묘비에 올려놓고 방문기념으로 나의 한국 이름을 썼으며 부족한 것은 남의 것으로 메꾸었다.    

오른편 모자를 놓은 곳이 오 헨리 아저씨 가족의 묘지 경계이며 아저씨 묘지에 잔디가 별로 없는 것은 방문객의 발길이 많아서 그렇다. 아저씨 묘비 옆은 부인 사라의 묘비다.    

헨리 아저씨는 내가 누운 곳에 누워있으며 대략 180 cm ~ 2m 10 cm 깊이에 누워 있다.

부인 사라는 그의 곁에 같은 표션으로 누워 있다.   

모자를 놓은 저곳과 이곳 표시석 그리고 표시석 왼편까지 모두 여덟자리가 아저씨 가족 묘지이며 부인과 딸 포함해 셋이 이곳에 묻혔다.    

묘지 안 작은 길가에 아저씨 묘지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서 있다.   

나는 원래 죽은 사람과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고 소리내어 말은 안하지만 속으로는 수없이 많은 추억의 말을 되뇌이며 말을 건넨다.  이제는 한동안 머물던 아저씨 묘지를 떠나기로 하고 작별의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묘지 곳곳을 둘러보기로 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언덕 아래에 흰 대리석으로 만든 비석이 가지런히 있어 군인묘지로 직감하고 그곳으로 갔다.

첫번 째 비석은 21~22 세 나이로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대니얼 용사의 묘지였으며 그는 1994년 사망하여 이곳에 묻혔고 계급은 특무상사였다.   

일반인의 비석은 대리석을 사용하지 않지만 군인묘지는 사용할 수 있다.    

젊은 여인이 아이 여섯을 데리고 조문을 왔는데 사연은 알길이 없다.   

미국의 묘지는 대체로 이렇게 생겼으며 근래에는 비용절감을 위해 바닥에 동판을 깔아 간편하게 만드는 공동묘지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깨끗해서 보기에 좋다고 주절주절 이유를 만들어 붙이기는....

작가의 이전글 버지니아 산골의 역사를 찾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