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에 대하여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예전에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어디서든 누구와도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말이 서툴러도 괜찮았고,
서로를 잘 모른다는 사실도
오히려 가볍게 느껴졌다.
세상엔 늘 새로운 얼굴이 있었고
그 얼굴마다 또 다른 가능성이 숨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마흔을 넘은 지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딘가 체력이 많이 드는 일처럼 느껴진다.
기대도 적어지고
경계는 더 두꺼워졌다.
누구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도,
내 마음을 보여주는 일도
이상하게 조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랬다.
첫 만남을 위한 자리,
마음이 맞는지 가늠하는 대화,
서로의 말을 넘겨짚지 않으려는 억지 미소,
빈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표정들.
대화는 흘렀지만 공기는 묵직했다.
상대의 말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무뎌졌는지 확인하는 시간 같았다.
자리를 나오고 나니 밤공기가 확 밀려왔다.
낮보다 차가운 골목,
식당에서 새어 나온 연기가
도시의 불빛을 따라 얇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골목을 걸으며
조금 전의 어색한 장면들을 되짚었다.
나는 정말 지친 걸까.
아니면 오래된 방식에 고착된 걸까.
사람을 만난다는 건
결국 새로운 “나”를 만드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해야 하고
내 말투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살피게 되고
상대의 표정을 읽느라
잠시 숨의 흐름마저 어색해지는 일이다.
젊을 때는 그 모든 과정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그게 관계의 리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그 모든 과정이 과하게 번거롭다.
조금만 마음을 주어도 상처가 나고
조금만 배려를 해도 오해가 생기며
조금만 진심을 보여도
상대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걸
너무 많이 보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관계를 세우기보다
관계를 견디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산다는 건 어쩌면
만남의 넓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만남의 깊이를 선택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골목 끝에서 바람이 스쳤다.
밤공기엔 온도가 거의 없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아직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용기가 남아 있는지
내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마도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용기의 방향이 바뀐 것 같다.
이제는 누구와도 쉽게 가까워질 필요가 없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때로는 한 걸음 뒤에서 관찰하며
새로운 인연이 내 삶에 들어오는 방식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다시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낯선 이를 만나는 용기는
젊음의 특권이 아니라
마음이 부서졌던 경험을 품고도
다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보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오늘의 어색함도
그 의지의 또 다른 얼굴일 것이다.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도시의 불빛이 조금 더 부드럽게 보였다.
나는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은 사람이다.
조금 지쳤을 뿐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내일도
누군가를 만날 용기가
아주 조금은 남아 있을 것이다.